채홍정 시인
채홍정 시인

아침 밝은 햇살에 기분이 맑아지고, 사랑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면,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서 마음이 한층 밝아져 길을 걷다가 향기로운 꽃들로 우리의 눈이 반짝이여 한 줄의 글귀에 감동받는다.

우연히 듣는 음악에 지난 추억을 회상할 수 있고, 위로의 한마디에 우울한 기분 매우 가벼워진다. 보여주는 마음에, 마음도 설렐 수 있어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누리는 행복한 만족이 절로 난다.

날마다 우리가 해야만 할 일들이 곳곳에 늘비하고, 우리가 갈 곳이 있다는 것에 매우 행복하다. 하루하루의 삶의 여정에서 돌아오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우리 공간에 반겨주는 소중한 아내와 아들딸이 있다는 것에도 감동받는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건, 건강한 모습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게 오늘도 너무 고맙고 감사함을 느낀다.

뉘를 막론하고 사람은 제각각 괜찮은 척 살지만.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프지 않은 척하지만 아프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힘들지 않은 척 이겨내지만 힘들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처럼 사람들은 보이진 않지만 모두 자신만의 삶 무게를 이고 지고 살아간다.

남의 짐은 가벼워 보이고 내 짐은 무겁게 느끼면서 그렇게 살뿐이다. 모퉁이를 돌아보아야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가 있듯, 가보지 않고 아는 척해 봐야 득 되는 게 없다. 인생살이란 다 그렇고 그러니 마음의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

소년 시절엔 어서 커서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세월이 너무 빨라서 멀미가 난다. 말이 좋아 익어가는 게지, 날마다 늙어감에 그 맑은 총기는 어디로 마을을 갔는지, 눈앞에 뻔히 보이는 것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꿀 먹은 벙어리 되어 책상 앞에서, 냉장고 앞에서, 발코니에서 왜 여길 왔지? 약봉지 들고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두가 생각이 나지 않아 집 나간 총기를 원망하며 우두커니 서 있는 때가 비일비재다.

다음 날까지 생각이 돌아오지 않아 애태우는 때가 허다하다. 이렇게 세월 따라 늙어가면서 자신이 많이 변해 간다. 젊은 날에 받은 선물을 그 냥 고맙게 받아 지금은 뜨거운 가슴 껴안고 느껴 보지만….

인연이 끊어지는 소리가 온 세상이 요란하다. 부모님 돌아가시니 일가친척도 멀어지고, 다니던 직장 그만두니 그렇게 친하던 동료들도 연락이 끊어지고, 그나마 마시던 술을 줄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던 술친구마저 전화조차 드문드문하여 몸이 게을러져 밖에 나가기 싫어지고, 지갑도 얇으니 불러도 못 나가는 핑계가 허다하다.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져 인연이 멀어지고 끊어지는 소리가 겨울밤 눈보라 치는 소리보다 더욱 을씨년스럽다. 세월 따라 인연도 달라지는 것을 예전엔 몰랐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늘 함께 있을 줄 알았고, 학창 시절 친구들도 늘 영원한 친구라며 언제나 함께할 줄 알았고, 사회생활 할 적처럼 친구들과 함께 인생을 논하며 한 잔 술에 삶 얘기 서로 나누며 웃음보를 터트리며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오늘에야 조금씩 알 것 같다. 세월 따라 인연도 달라진다는 것을, 사람도 변한다는 걸,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삶이 시간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얄밉고 야속스러운 세월이 나도 모르게 성큼 가버렸다는 걸, 그러나 그 인연들은 세월 따라 사라졌어도 마음속 한 구석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얼굴을 잊히어지더라도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들은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는 걸, 그리운 옛 친구들을 한 번씩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보지만….

젊은 날엔 친구의 푸념을 소화해 내기가 부담이었으나, 지금은 가슴 절절함을 함께 깨닫고 뉘우친다. 젊은 땐 친구가 잘되는 것을 부러웠지만, 지금은 친구가 행복한 만큼 같이 행복하고 싶다.

젊은 날에 친구는 지적인 친구를 좋아했지만, 지금의 친구는 마음을 읽어주는 편안한 친구가 좋다. 그러니 세월 따라 나이가 준 인연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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