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석일 논설위원
계석일 논설위원

경북 안동시 풍산읍 산이 너무 험하고 고개가 높아서 한번 넘어본 사람은 다시는 넘지 않는 재(嶺)로 유명하다.

​영조(英祖) 때 암행어사로 이름을 날린 박문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암행어사 박문수는 임금의 어명으로 민정을 살피러 지리를 전혀 모른 채 초행 길로 경상북도 풍산 땅을 가는 길이었다. 

그는 ​험한 고개를 넘다가 그만 해가 저물어 산 중턱에서 지치고 허기져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짐승들 울음소리만 계곡에 울려 퍼졌다.주저앉은 암행어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는 배가 고프고 지치고 목은 타들어 갔다.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 기를 쓰고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았다. 칠흑같은 밤에 목은 마르고 높은 산에서 물은 찾을 수 없었다.

​오가는 사람도 없는 산중 길가에​서 그는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서 꼬박 사흘동안 미동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만 했다.

''도와주시오.'' 큰 소리로 구원을 요청하려고 생각했지만, 탈진하여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가끔 인기척이 날 때마다 ''물! 물!'' 을 외쳐 보지만 구원을 요청하는 박문수 어사의 소리는 모기 소리보다 더 작아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젠 틀렸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삶을 포기했던 것이다.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으나 징그러운 뱀을 쳐다보듯 별 관심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그는 최후의 결단을 하였다. 이제 틀렸어! 체념한 듯 지긋이 눈을 감고 삶을 포기했다.

바로 그때였다. 대여섯 명의 아낙들이 산에 나물을 캐러 왔다가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웬 사람이 여기 있지? 옷차림을 보니 거지인가 봐! 죽었나?'" 글쎄?'' 그런데 그 남자는 "물! 물! 물!'' 하고 목청껏 외쳤다. 그러나 기운이 없는 어사의 목소리는 모기보다 작아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 작은 목소리를 알아들은 한 젊은 아낙이 있었다. "딱하기도 해라!" 이 높은 산골짜기에 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여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 사람의 곁에 다가가서 퉁퉁 불은 하얂고 풍만한 젖을 꺼내 그 목말라 죽어가고 있는 그 남자에게 젖꼭지를 물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같이 갔던 아낙들은 혀를 찼다.

​"쯧" "쯧"'' 어머, 세상에!'' ''망측해라! 하며 모두들 수군거렸다.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외간 남자에게 젖을 물려!'' ​아낙들은 저마다 놀란 얼굴로 빈정댔다.

쓰러져 죽어가든 그 남자는 젖꼭지가 입에 닫자마자 갓난 아기가 어미젖을 빨듯 얼마나 세차게 빨았던지 아낙네의 젖꼭지가 아플 지경이었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빨더니, 다소 갈증이 가는 듯 어사는 ''부인,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생명의 은인인 그 아낙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표했다.

​​그 여인의 마음은 죽어가는 그 사람을 산중에서 홀로 죽어 가도록 그냥 두고 산길을 내려갈 수 없었다.

​여인은 무거운 나물 보따리를 이고, 그 남자를 부축하며, 고갯길을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갔다.

한편 앞서 내려갔던 아낙들은 동네 앞에 모여 입에 거품을 물고, 젖을 먹여준 그 아낙에 대해 입방아를 찧으며 흉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있지?'''' 그래요 ""서방 있는 년이 그따위 짓을 할 수가 있어?'' 못된 년이야!  하며 그 여인을 "몹쓸 년" "화냥년" 하며 욕을 하였다.

​​그 말은 남편에게까지 전해지고 남편은 참을 수 없이 분노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오면 죽여 버리겠다"라며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에 아내는 머리에 산나물 보따리를 이고 그 남자의 어깨를 부축하고 동네 어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삼삼오오 수군거리던 동네 사람들 사이로 돌진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남편이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달려들어''의 화냥년!''"그게 할 짓이냐?" "생전 모르는 놈에게 젖을 먹였어?" 

​남편은 흥분하여 아내를 마구 때렸습니다. 아내는 정신없이 얻어맞고 이마에는 피까지 났다.

​​"제가 잘못했어요." 아내는 애웠했다. 용서해주세요.제발!" 하며 남편 앞에 무릅을 꿇고 빌었다.

​​겨우 살아나 생명을 구하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난 박문수는 남편의 매질을 가까스로 막으며 말했다.

''잠시 참으시고, 내 말 좀 들어 보시오!''하며 말렸다. 그러자 남편은 불난데 기름을 끼얹은 듯 더욱 화를 냈다.

''뭐라고?'' 이 자식아!" 하며 다짜고짜 박문수 어사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어사는 "어이쿠!'' 하며 쓰러졌다.

​몸이 온전히 성치 못한 암행어사 박문수는 코피를 쏟으며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그런데도 남편은 더욱 화를 못 참아, ''이 새끼! 죽여 버리겠다!''고 하며 쓰러져 신음하는 박어사를 향해 사정없이 발길질을 또 했다.​

​동네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있을 뿐 아무도 그 싸움에 나서서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앗!''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입에서 놀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암, 암행어사다!''이 말에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났다.

땅에 쓰러진 암행어사 박문수가  발길질을 피하느라 몸부림치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반짝이는 암행어사 마패를 사람들이 본 것이다.

​마구 발길질을 하던 남편의 얼굴은 금세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감히 암행어사를 발길질하고 코피까지 나게 한 것이다. ​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얼빠진 모습들이었다. ''아이고!'' 남편은 암행어사 앞에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다.

​"어사님 죽을죄를 졌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암행어사 박문수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더니 무릎 꿇고 있는 남편을 쳐다 보았다.

​​이 순간 암행어사 박문수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 백성들이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이 귀하고 소중할진대 어찌하여 풀밭에 개구리 보듯 아무 관심 없다가 이까짓 어사 마패에는 왜? 저렇게 관심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어사 마패만 무서워하는구나!,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소중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이 암행어사 마패야.

​혼자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근엄하게 그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당신의 아내가 아니었으면 저 산속에서 죽고 없었을 것이오!

​​난 오늘 당신의 아내 덕분에 목숨을 건졌소."'' 당신의 아내는 실로 아녀자로서 행하기 어려운 자비를 베풀어 나의 목숨을 구해 주었소.'' 당신의 아내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오! '그러나 오늘 당신의 행패가 너무 극심하여 용서할 수 없소. 전, 후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사람을 그렇게 때리는 법이 있소?''

"무고한 사람을 때린 죄가 매우 크오 당장 벌을 줄 수 있으나 당신 아내의 은혜 때문에 오늘은 이만 가겠소. 그동안 집에서 근신하고 기다리시오''라고 하고는 마을을 떠났다.

​'아이고! 이제 죽었구나'' 암행어사를 때리고 발길질까지 한 남편은 부르르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큰 죄를 받을 운명에 처해 지옥문 앞에라도 서 있는 심정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관가에서 그에게 출두 명령이 내렸다. 동헌 관가에 나아가 부부가 나란히 앉아 벌벌 떨고 있는데 암행어사가 앉았다. ​부부는 납작 엎드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그때 암행어사가 그가 남편에게 말했다. ​"부디,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오. 사양 말고 받아 주시오.

​두 분을 위하여 얼마간의 전답을 준비하였으니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 주시오.''

​이건 어찌 된 일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큰 죄를 받을 줄 알았던 남편은 아내 덕에 죄를 면하게 되어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말은 후에 전설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부부는 행복하게 일생을 잘 살았다고 한다.

​​암행어사가 죽을뻔한 그 고개를 사람들은 오늘날 금비령(禁備嶺)''이라 부른다고 한다.

​금비령(禁備嶺)의 뜻은 준비 없이는 그 고개를 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저작권자 © 미래세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