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옥 소설가 (소설집 쉼, 카페 출간 /유튜브 책먹는즐거움 정기옥작가 채널운영)
정기옥 소설가 (소설집 쉼, 카페 출간 /유튜브 책먹는즐거움 정기옥작가 채널운영)

                          두 그림자

 

늦은 밤 가게 일을 끝내고 거실에 들어선 아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 옷 건드린 사람 누구야? 누구냐고?”

종일 카페에서 글을 쓰다 지친 나는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를 보며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화면 속 초원을 거닐던 사자가 하이에나에게 슬금슬금 다가가고 있었다. 하이에나는 땅속에 얼굴을 박고 배를 채우며 방심했다. 순간을 포착한 사자는 전속력으로 달려 하이에나의 목을 콱 물었다. 하이에나의 목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빨래를 개고 있던 나는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내에게 대꾸했다.

“왜 그래. 당신 옷을 누가 건드렸다고.”

아내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아내는 리모컨을 쥐고 있는 내 손을 탁 쳤다.

“옷들이 지금 흐트러져 있잖아. 내 거에 손댄 흔적 자체가 소름 끼치도록 싫단 말이야.”

어느 새 사자가 하이에나의 몸뚱이를 다 먹어치웠는지 붉은 피가 묻어있는 하이에나의 갈비뼈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일어서서 아내에게 다가갔다.

“옷 옆에 몇 가지 엉켜있는 다른 물건들만 살짝 빼서 치웠는데 뭐가 문제야. 당신 옷들 그대로잖아.”

흥분한 아내의 목소리가 온 집안을 집어 삼킬 듯했다. 딸애가 방문을 열고 겁먹은 얼굴로 내다보다가 제 방문을 다시 닫았다. 아내의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온종일 서서 일하고 들어왔어. 죽을 거 같이 피곤해 쓰러질 지경이라고. 내 거에 손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했지.”

“당신 옷들 거실에 뭉텅이로 쌓여 산을 이루기 시작한지 벌써 두 달째야. 도대체가 사람이 사는 건지 물건이 사는 건지. 집구석이 썩어나가는 것 같아.”

“내가 조만간 정리한다 했지? 당신도 당해봐.”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아내는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아내는 늘 그랬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던 아내가 옷 방으로 뛰어갔다. 옷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린 문틈 으로 아내가 내 옷을 뭉텅이로 꺼내 방바닥에 패대기쳤다. 이내 아내는 식탁 쪽으로 달려갔다. 식탁 위에 놓여있던 가위를 잡아드는 아내의 손등 위 파란 힘줄이 도드라졌다. 아내는 한손으로 가위를 단단히 쥐고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아내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내가 내 쪽으로 가위를 치켜들었다. 나는 흠칫 뒤로 물러섰다. 아내는 내 앞에 떨어져 있는 양복바지 하나를 집어 들고 갈기갈기 난도질 했다. 어느 새 나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호흡이 가빠졌다.

“뭐하는 짓이야?”

“내 물건에 손대는 순간 내가 부서지는 느낌이라고 몇 번을 말해?”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내쉬고 흥분한 아내를 가만히 보았다. 이내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같이 미쳐가는 건가? 수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굴러들어와 나를 묶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알 수 없는 깊은 절망감이 온몸을 칭칭 휘어 감았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두 손을 꽉 잡았다. 나는 불 꺼진 내 방으로 들어와 잠시 서성였다. 컴컴한 방에서 밤의 창문으로 바깥 풍경을 내다보았다. 도시의 밤 풍경은 휘황찬란했다. 수많은 불빛이 작은 별처럼 점점이 빛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침대 모서리에 쓰러지듯 걸터앉았다. 아내는 나를 버리고 싶었으나 어쩌지 못하여 스스로의 올무에 빠져 절규하는 듯했다. 언제부터 아내가 변하기 시작 한 건지 가만히 생각했다.

처음엔 아내도 기쁜 마음으로 작가의 길을 응원했다. 아내가 동네에서 작은 편의점을 운영한 지 십년 동안 나는 동그란 안경테 너머로 눈만 껌뻑거리는 글쟁이 백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먹어가는 나이만큼 나도 아내에게 값어치를 하는 남편이 되고 싶었다. 생활에 찌들어가는 아내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기에 나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아내의 히스테리를 견딜 수밖에 없었다.

양복바지 사건 후로 아내와 말을 섞지 않았다. 밤마다 비슷한 꿈을 꾸다 한밤중에 깨어났다. 베개 머리맡 두 마리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뱀 한 마리가 아내의 머리카락에 달라붙었다. 아내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금세 수십 마리의 실뱀으로 변했다. 뱀들은 점점 몸을 불리더니 날카로운 이빨로 내 살점을 물고 뜯었다. 아내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나를 향해 불타올랐다. 아내의 눈과 마주친 순간 나는 돌로 굳어버렸다. 나는 밤중에 깨면 뜬 눈으로 날을 새웠다. 그렇게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꿈과 현실의 구분이 어려운 날들이 지속되자 머릿속은 뿌연 안개에 갇혀버렸다. 나는 쓰던 방송 원고들을 한쪽 구석에 밀어 놓았다. 집안에 흐르는 냉기를 견디며 아내의 안색을 살펴보는 게 하루 일과가 되었다. 내가 알았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어쩌다 아내의 시선과 마주치면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았다. 음지를 기어 다니는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듯 나를 째려보는 아내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작전을 바꿔보기로 결심을 했다.

“여기 계란 프라이랑 토마토샐러드 먹어. 당신 좋아하잖아.”

“됐어.”

“성의를 봐서라도 먹지.”

출근하는 아내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시선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나 피곤하니까 빨래 해 놔.”

아내는 쌩하고 몸을 돌렸다. 대충 집안을 정돈하고 스터디카페로 향했다. 그날은 종일 그곳에 앉아 글을 썼다. 방송 원고를 A의 메일에 전송했다. A에게 보냈음을 알리는 문자 한 통 남겼다. 몇 시간이 지난 후 A에게서 검토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는 답신이 왔다.

어스름 해질 무렵 귀가한 나는 등짝과 아픈 허리를 매만지다 침대에 쓰러져 깜빡 잠이 들었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아내가 내 머리 맡에 서 있었다.

“빨래 해 놓으라 했잖아.”

나는 잠이 덜 깬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왔어? 일찍 왔네.”

“집에서 허구한 날 하는 일도 없이 글만 쓴다고?”

“.......”

“희망이 있을 거 같아?”

아내는 이내 돌아서서 부엌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글에 집중하느라 먹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담가놓고 치우지 않았다. 그릇들이 싱크대에서 요란하게 뒤엎어지고 있었다. 아내의 날 선 목소리가 내 방 침대를 울렸다.

“지긋지긋 해.”

화산 폭발하듯 갑자기 발광하는 아내의 히스테리는 날이 갈수록 잦아졌다. 내 앞에서 아내의 얼굴이 독사의 머리로 변했다. 아내가 말할 때마다 독사의 갈라진 혓바닥 두 개가 쉭쉭 거렸다. 그런 아내를 보는 건 공포였다. 아내가 발작적으로 고함을 지르고 악다구니를 쓸 때마다 나는 아내의 목소리를 몰래 녹음했다. 분명 내가 처음 좋아서 결혼했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능력만 있으면 너 같은 여자랑 안 살아. 안 산다고.’ 목구멍에서 맴도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다. 눈만 감으면 온통 검은 사막이 휘장처럼 나를 에워쌌다.

A에게서 답신이 왔는지 궁금했다. 불안한 마음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메일을 열어보았으나 읽지 않음 표시가 떠있었다. 나는 A에게 문자한통을 더 보내려다가 지웠다. 나는 어디만큼 온 걸까? 내 몸을 눕히는 싱글침대가 있는 이 작은 공간마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무엇이 상처인지도 분간이 안가는 그런 날들 속에서 토막잠을 청하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

집을 나가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나는 손바닥 크기의 넓적한 돌을 들고 조각가를 찾아갔다.

“이 돌에 메두사의 얼굴을 새겨 주세요.”

얼마 후 택배가 왔다. 택배를 뜯었다. 아침에 아내가 출근하자마자 아내가 기거하는 안방 침대 머리맡에 메두사의 얼굴이 새겨진 돌을 올려놓았다. 뱀의 머리로 둘러싸인 메두사의 얼굴은 기이했다.

-이 시간 이후로 날 잊어줘.

메모장에 한 줄 써내려가는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아내에게서 내 흔적을 지우고 싶었다. 그렇게 잊히고 싶었다.

나는 일어섰다. 문득 방 한가운데 벽에 걸려있는 액자에 눈길이 갔다. 사진 속 아내는 젊었고 생기가 넘쳤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았다. 아내는 내 어깨에 기대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아내 얼굴 위로 내 얼굴이 아련히 겹쳐 보였다.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경멸과 환멸로 썩어가는 내 육신에 깊이 신음하는 아내의 영혼을 느꼈지만 더 이상 간극을 좁히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내 방을 지나 내 방으로 건너갔다. 나는 가방을 꺼내 노트북을 집어넣었다.

집을 나섰다. 두 블록을 걸어가면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이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유리문 너머 아내의 등이 보였다. 아내는 물건을 차례로 정렬하고 있었다. 아내가 고개를 모로 돌렸다. 피곤에 절은 아내의 지친 얼굴이 보였다. 아내는 상품을 정리하는데 정신을 쏟느라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몰랐다. 아내의 등 뒤로 아내의 그림자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아내의 그림자가 유령 같았다. 편의점을 지나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밑바닥까지 요동쳤던 상처 난 감정의 편린들이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되어 나를 뒤따르고 있었다. 나는 수많은 그림자들 속으로 내 그림자를 갈아입으며 그냥 앞만 보며 걸었다.

작은 골목을 가로질러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지하철역에서 전철로 갈아타고 시내 외곽으로 향했다. 엄마는 도시 외곽의 작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전철역에서 나와 버스를 탔다. 시골 버스 정류장은 한산하다 못해 적막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기운 없는 다리를 끌며 어르신보행기를 쓰러질 듯 힘겹게 밀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 집을 향해 올라가는 길, 양옆으로 연한 베이지색 목 수국이 풍성하게 피어있었다. 모퉁이를 돌자 붉은 벽돌로 지어진 파란 대문의 이층집이 보였다. 엄마는 마당 한쪽 화단에서 다양한 색들을 뽐내며 늘어서있는 작은 화초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엄마는 물을 주다 말고 돌아섰고 오랜만에 말없이 나타난 나를 덤덤히 바라보았다.

“처마 밑에 제비가 짹짹 거리더니 네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 제비가 집 지으려는지 처마 밑에 진흙을 하도 발라놓아서 빗자루로 부수면 또 진흙을 발라놓고. 하여튼 제비고집 못 당하겠더라.”

어서 와. 엄마는 표정이 언제나 그랬다. 반가운 표정도 기쁜 표정도 없었다. 엄마는 항상 그날이 그날이었다. 엄마의 겉모습은 평정심이라고 표현하기엔 지나치게 이성적이었다. 어른이 된 후로 엄마를 대하는 것이 왠지 어색했다. 그것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분리되고 싶은 욕구와 무관하지 않았다.

“밥 먹었니?”

나는 검은 봉지를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가 봉지를 열어보며 말했다. 참외네? 무슨 돈이 있다고, 그냥 오지. 몇 달 만에 본 엄마의 등허리가 지난 번 보다 굽어있었다. 엄마가 다시 물었다.

“배고프지?”

엄마는 다리를 절뚝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쌀을 씻어 강낭콩을 넣은 밥을 했고 고등어를 구웠고 시래기를 넣고 된장국을 끓였다. 나는 어정쩡하게 엄마 곁으로 다가가 도울 일 없냐고 물었다. 엄마는 상위에 숟가락이나 놓으라고 했다. 이내 밥상이 차려졌다. 엄마가 끓인 된장국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내입에 딱 맞았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집 밥인가? 나는 살짝 데친 호박잎에 밥을 올리고 된장국을 떠서 쓱쓱 비벼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했다. 엄마는 퇴행성관절염이 요즘 부쩍 더하다며 가끔 무릎주변만 주무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한없이 무디고 고요한 바다 같았다. 내가 밥 한 그릇을 다 비우자 엄마가 물을 떠다 주었다.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이혼할까 봐요.”

“왜.”

“나 땜에 힘든 거 같아서요.”

침묵하던 엄마가 딴청 하듯 말을 꺼냈다.

“요 며칠 장대비가 쏟아졌어. 집안에 있던 화분을 밖으로 내 놓았더니 빗물에 푸릇푸릇 생기가 돌더구나. 비 그치고 나서도 화분을 며칠 바깥에 그대로 두었거든. 한낮의 열기가 얼마나 더웠던지 그새 잎사귀가 타버리고 시커멓게 화상을 입었지 뭐냐.”

“그랬군요.”

“밖에 내어 놓은 다육인 빗물을 많이 먹어서 다 물러버렸고. 잠시 관심을 안두면 화초도 그렇다니까. 뭐든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줘야해. 지나쳐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되고.”

“맞아요. 그렇죠 뭐.”

거실 TV 장식장 옆 낯선 돌 판이 보였다.

“저게 뭐예요?”

“뭐긴. 십계명 두 돌판 이지.”

“못 보던 건데요?”

“조각가에게 새겨 달라고 했어. 하나님과의 언약. 사람과의 언약 까먹고 싶지 않아서.”

“아.”

나는 식탁 위에 빈 그릇들을 모았다.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섰을 때 엄마가 내 팔을 잡아 당겼다.

“넌 조용하고 사색적인 아이였어. 어릴 때부터 그렇게 책을 좋아하더라.”

옛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처음 받아쓰기를 했다. 10문제였는데 100점 맞는 아이들을 선생님이 업어준다고 했다. 선생님은 100점 맞은 아이들을 교단 앞으로 나오라 했고 3-4명의 아이가 선생님 앞에 섰다. 선생님은 차례대로 아이들을 업어주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선생님은 40대 초반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엄마 등에도 업혀 본 기억이 없었다. 선생님은 내 앞으로 와서 등을 내 주었다. 선생님의 등에 어색하게 가슴을 기댔다. 선생님의 체취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선생님 등에 업혀있던 그 1분의 순간이 온 우주를 다 가진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일주일에 한번은 받아쓰기 할 거예요. 그때마다 100점 맞는 친구는 업어줄 거예요. 모두 열심히 공부해 봅시다.

그 사건 이후 우연 같게도 엄마는 동네 길모퉁이를 돌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번 나를 업어준 적이 있었다. 병약하던 내가 1학년에 입학한 것이 대견했는지, 받아쓰기를 100점 맞아 와서 든든했는지 하여튼 나에게 내밀어준 엄마 등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 두 기억은 강렬하여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주었다. 밥을 먹으며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처음으로 털어 놓았다. 엄마가 뜬금없이 말했다.

“넌 어렸을 적부터 개미 한 마리 못 죽이더라. 불쌍하다고.”

나는 엄마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아내와 대화가 중단된 지는 오래 전이었다. 아내는 어느 순간부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한 공간에 있었으나 아내와의 사이에 어떠한 감정의 연결고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약하게나마 억지로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했던 애정이란 끈이 어느새 삭아 뚝 끊어져버렸다.

엄마 집에서 그사이 몇 주가 흘렀다. 나는 시골의 밤 풍경이 좋았다. 작은 별들이 총총히 떠있는 밤하늘과 희미하게 빛나는 달빛아래 고즈넉한 시골길을 걸으며 밤 산책을 했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엄마는 새벽이면 일어나 입속으로 중얼중얼 기도를 했다. 가끔 실눈을 뜨고 바라본 엄마의 그늘진 얼굴에 주름이 더 선명해진 듯해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는 텃밭에서 아침마다 붉게 익은 토마토 두개를 따서 믹서에 갈았다. 꿀을 두 스푼 섞어 토마토주스가 남자에게 좋다더라 하며 유리컵에 따라 건네주었다. 엄마가 갈아준 토마토주스는 적당한 당분의 맛이 입맛에 딱 맞았다. 나는 급하게 한 번에 마시다 매번 손등에 흘렸다.

여름장마가 끝날 무렵 아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빗물 묻은 손을 바지에 재빨리 닦고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으나 번호가 맞지 않았다. 초인종을 세 번 길게 눌렀을 때 인터폰 소리가 났고 아내가 나왔다. 나는 짐을 가지러 왔노라고 말했다. 내방에서 짐을 빼는 동안 아내가 말없이 서서 지켜보았다. 나는 트렁크 두 개 분량의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아내가 나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말했다.

“후회 없지?”

“응.”

“정말이지?”

“응.”

아내가 현관에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내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아내와 처음 만난 날 헤어질 때 풋풋한 미소 지으며 손 흔들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나는 아내의 눈을 처음으로 가만히 응시했다.

“고마웠고 미안했어.”

나는 그렇게 아내에게 작별을 고했다. 나는 마음이 더 추워지기 전에 담담한 척 돌아섰다. 몇 발자국 걸어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수치심이 몰려왔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물밀듯 몰려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내에게서 내 그림자가 빠져 나가고 있었다. 카카오티 앱으로 근처의 택시를 호출했다. 택시가 저쪽에서 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계단 턱을 넘다가 그만 발을 헛디뎠다. 양손에 들려있는 트렁크 두 개의 무게에 앞으로 고꾸라질 뻔 했으나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마음이 시려왔다. 눈앞이 흐려졌다. 나는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내게서 아내의 그림자가 빠져나가는 것을 확연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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