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옥 소설가
정기옥 소설가

버스에서 내려 마포대교를 향해 걸었다. 검푸르게 일렁이는 한강의 물결이 수많은 사연을 감춘 채 묵묵하게 흐르고 있었다. 깊은 밤의 차가운 기운이 뺨을 스치고 지났다.

나는 이미 취한 상태였는지라 정신이 몽롱했다. 드문드문 차들이 지나갔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서서 가지고 온 소주를 물마시듯 벌컥 들이켰다. 강물 아래를 빤히 응시했다. 허리를 꺾어 회색지대를 뛰어 넘었다. 그렇게 나는 캄캄한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찰나 누군가 내 목덜미를 낚아챘다.

남자의 우악스런 손이 느껴졌고 곧이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리다 사라졌다. 눈을 떠보니 경찰서였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나를 구한 사람은 지나가던 차에서 뛰어온 남자라고 했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내 눈앞에 서있었다.

“도대체 또 술을 얼마나 퍼 마신거야?”

대학을 졸업한지도 수년 째였다. 졸업 후 여러 군데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면접을 보는 족족 떨어졌다. 스카이 대학을 나온 친구들도 백수가 수두룩한 처지에 나 같은 지방 대학 인문계출신은 취업의 문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작은 회사에 턱걸이로 입사해서 겨우 계약직으로 6개월 근무하고 잘렸다. 마음에 보이지 않는 흉터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 이후로도 이력서를 수십 장 썼다. 나는 지치지 않고 가속페달을 밟으려 애썼고 멈추지 않고 달리려 했다. 그때마다 온 몸에 식은땀이 축축하게 흘러내렸다. 어느 날부터 더 이상 이력서를 쓰지 않았다.

무직자로 집에만 틀어박혀있으니 엄마 눈치가 보였다. 매번 구직 사이트를 뒤졌다. 나는 집 근처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면접에서 몇 번 더 고배를 마신 후 처음 찾아간 곳은 PC방이었다. PC방에서 제법 적응해서 일하던 어느 날이었다. 손님으로 온 내 또래 게임에 빠진 놈들이 게임한 자리를 과자부스러기로 어지럽혀놓고 치우지도 않고 일어섰다.

어떤 놈은 라면 국물을 엎지르고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치우라고 말한다. 그 자식들과 대판 싸운 후 나는 PC방 알바자리에서 바로 잘렸다. 그다음 간곳은 물류창고 알바였다. 거대한 컨테이너 창고 안은 햇빛 한 줌 들지 않았다. 쉬는 시간은 단 두 번 10분씩 교대로 쉬었다. 잠시도 앉을 수 없었다. 나는 5달을 일하고 허리 디스크에 걸렸다.

그 후로 나는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는 중이다. 세상 나가기가 점점 더 싫어진다. 나는 밖으로 난 창문마다 꼭꼭 걸어 잠갔다.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사람 만나는 게 두렵다. 눈뜨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막막한 현실, 매사 의욕이 사라진지 오래다. 지겨운 엄마 잔소리가 문틈너머 들려온다.

“범준아. 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뭐라도 해봐야지.”

외부와 차단된 세계, 네 평 남짓한 방. 컴퓨터 앞과 침대가 유일한 내 공간이다.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아.’ 나는 귀를 틀어막고 속으로 외치며 비로소 자유를 느낀다.

여덟 시간이 넘게 게임을 했더니 배가 고프다. 나는 배달음식을 시킨다. 종일 게임을 하면서 치킨, 피자, 콜라, 햄버거와 중국집 음식을 컴퓨터 앞에서 먹는다. 먹고 또 먹어도 배가 고프다. 백수가 되고 점점 체중이 불었다. 먹는 대로 살이 찌다보니 심장도 불규칙적으로 뛴다. 어느 땐 박동이 멎는 듯하다. 그러다 다시 용솟음치듯 펄떡 거린다. 이러다 심장이 영영 멈추는 건 아닐까? 견딜 수 없는 불안감이 극도에 달해 공포증에 휩싸인다.

엄마도 잠을 자는지 어느 새 거실에 텔레비전 소리가 잦아들었고 사방이 고요하다. 창밖을 보니 캄캄하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으니 좀비가 된 기분이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섰다. 어지러웠다. 간신히 벽을 짚고 섰다. 발밑에 뭔가가 툭 걸린다. 지난 번 엄마가 책상위에 올려놓고 간 파일을 문 쪽으로 냅다 집어 던졌던 생각이 난다. 볼일을 본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어를 써 넣는다.

자살....... 조금씩 투자하던 주식과 암호화폐도 바닥을 치고 있다. 빵 한 쪼가리 먹기 위해 살아내야 하는 인생. 내 등 뒤로 보이지 않는 손가락질, 가족들의 차가운 시선. 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이야. 나는 살 가치가 없다. 가장 고통 없이 갈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골몰하여 자살계획을 세우다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면 묵직한 어둠이 나를 짓누른다. 캄캄한 무중력 진공상태 내 몸이 붕 떠 있다. 천정이 머리위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육중한 시멘트 더미가 끝도 없이 내 어깨위로 쏟아진다. 나는 신의 저주를 받은 것일까? 귓가에선 알 수 없는 소리의 파열음이 들린다. 희미하게 속삭이는 울림이 환청 같기도 하고 메아리 같기도 하다. 매일 반복되는 검은 아침이 싫다. 이대로 영원히 눈을 감았으면.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쏟아져 들어온 강렬한 빛에 눈이 부셔 고개를 돌렸다. 주섬주섬 핸드폰 시계를 들여다보니 낮 1시.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몸을 일으켜 세우는 순간 머리맡에 놓여있던 파일 철이 내 팔에 툭하고 걸린다. 어머니 글씨로 포스트 잇 메모지가 붙어있다. ‘이 파일 열어봐.’ 꼭 들춰보라는 짤막한 문장이다. 내가 잠자는 사이 들어와 어느 새 올려놓고 갔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확 밀려온다. 매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할아버지의 인생역전 이야기. 그 옛날이야기이다. 신문에 났었던 우리 집 가보인 듯 파일 철에 곱게 스크랩된 할아버지의 신문기사이다.

그 시절 젊은 청년이었던 할아버지 얼굴이 큼지막하게 낡은 신문 속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다. 어머니의 성화에 짜증이 나면서도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들춰본 파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00 일보 조간신문 1978년 0월 0일.

어린 나이에 중국집 사환을 거쳐 엿장수 일을 한 젊은 청년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서 5년 동안 일하고 돌아왔다. 그는 귀국하여 국내에서 제법 큰 엿 공장을 인수하여 전통식품 엿 사업에 성공했다.

특히 그가 만드는 수제 쌀엿은 전통의 맛을 그대로 살려 고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통식품 명인인 그는 매해 연말이 되면 대학교 열 군데에 장학금을 보낸다. 한편 매달 한 번씩 각설이 품바 복장으로 변신하여 엿 수레를 끌고 명동거리로 직접 엿을 팔러 다닌다.

정말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구닥다리 신화 같은 이야기다. 나는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알람이 울렸다.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얼마나 잠이 들었던 거지?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넘겼다. 어스름한 저녁 오랜만에 집밖으로 나왔다. 지하철을 탔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급행으로 달려가는 속도감에 멀미가 났다. 나는 손잡이에 매달려 흔들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했다. 시내 중심가 포장마차에서 대학시절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던 터였다. 친구들은 이미 도착해있었다.

“너 왜 이리 살쪘냐?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네.”

대학 내내 원룸에서 함께 자취했던 준우가 내게 술잔을 건네며 먼저 입을 열었다.

“야, 얼마만이냐?”

“학교 졸업하고 4년 만인가? 우리 친하긴 한 거냐?”

나는 술잔을 기울이며 주거니 받거니 했다. 준우가 친구들을 휙 둘러보더니 밑도 끝도 없이 내뱉는다.

“우린 언제 육각형 남자가 될 거 같니?”

“다짜고짜 웬 육각형? 육각형 남자?”

“이런 무식쟁이들. 요즘 육각형 남자가 대세인거 몰라? 육각형 남자가 아니면 결혼도 포기해야 할 시대가 왔어. 카카오톡 대화 방에 띄워 줄 테니 다들 읽어봐.”

< 육각형 남자의 조건 >

1. 키 : 180이상, 최소 176이상. 뚱뚱하거나 마르지 않은 체격.

2. 외모 : 적당히 훈훈하며 데리고 다니기 부끄럽지 않아야함. 잘생기진 않아도 호감 형 외모.

3. 직업 :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등 안정적 직장에 연봉 6천 이상.

4. 성격 : 술. 담배 안하고 모나지 않고 자상하고 둥글둥글한 집 돌이 성격.

5. 자산 : 결혼자금 일정이상 마련가능 (전세 집 정도는 가능해야함.)

부모지원 포함 2억-3억 대 자산.

6. 부모님: 부모님 노후대비 문제없고 화목한 가정.

7. 학력 : 인 서울, 지방거점국립대 이상.

8. 기타 : 종교 일치

친구 현수가 큰 목소리로 읽었다.

“야. 재수 없어. 술맛 떨어진다.”

현수는 청년 실신시대라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

“난 좋은 직장에 취업할 거란 꿈도 기대도 버린 지 오래다. 군대를 다녀와도 좀 괜찮은 직장에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너희들 인구론이라고 들어 보았냐?”

준우가 되물었다.

“그건 또 무슨 신조어냐? 인구론? 인구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냐?”

“인문계 구십 프로가 논다는 뜻이야. 청년 실신시대는 알고 인구론은 몰랐구나? 청년 실업자, 청년 신용불량자를 줄여서 청년 실신시대라며?”

친구 용준이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게. 우린 참으로 불행한 세대야! 요즘은 이태백이 늘어난다더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이다. 이 태백. 우리 모두 이태백이 되었구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필시 시대를 잘못 타고난 탓이다.

“선배들은 오포세대를 겪었는데 우리들은 칠포세대를 살고 있으니 젊은 청춘이 참 한심하다. 한심해.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꿈, 희망포기.”

나도 한마디 더 거들었다.

“이젠 구포세대야. 건강과 외모도 포기. 나처럼 방구석에만 있어봐라.”

시계가 밤 1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술이 거하게 취한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꾸벅꾸벅 졸면서 집에 와 내방 침대에 바로 쓰러졌다. 아버지가 방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오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자식. 밤 인간이냐. 낮 인간이냐.”

혀가 꼬부라져서 발음이 새어 나온다.

“나도 몰라요. 밤 인간. 낮 인간. 인조인간인가?”

“젊은 놈이 패기도 찾아볼 수 없고 맨 날 방구석에 쳐 박혀 게임이나 하고 술이나 쳐 먹고 다니고 사람새끼 맞아?”

내 눈앞에 서 있는 저 인간이 아버지인지 괴물인지 벌레인지 도통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나는 벽에 이마를 박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 나는 벌레다. 식충이다. 어쩔래.”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눈앞에서 불이 번쩍했다. 뺨이 얼얼했다.

“이런 후레자식이 있나. 당장 나가.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친척들 창피해서 원.”

어느새 엄마가 와서 아버지를 뜯어 말리고 있었다.

“여보. 그만해. 술 취한 애를 하필. 왜 건드려. 정신 말짱할 때 얘기 해.”

“그래. 내가 없어지면 그만이지. 나도 내가 싫다고.”

아버지의 멍한 표정이 보인다. 이것은 가상세계일까? 현실세계일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나는 폐허가 된 세상을 탈출하고 싶다. 그 길로 다시 집을 박차고 나와서 휴대폰으로 버스도착 정보를 확인한 후 마포대교로 향했다.

그날 마포대교 사건이후 가족 누구도 더 이상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뺨을 때렸던 아버지의 손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나는 들쥐처럼 숨어서 내 방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비계 덩어리 같은 존재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은 끔찍한 슬픔이었다.

“뭐하니. 범준아. 얼른 나와 봐!”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창밖엔 비가 오고 있다.

“얼른 나와. 할아버지 오셨어!”

나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현관 쪽으로 향했다. 할아버지가 문 입구에 서서 젖은 우산을 털어 비스듬히 세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들른 걸 보니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나보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갈치구이와 된장찌개로 저녁밥을 준비했다. 저녁을 먹는 동안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잦아드는 것 같더니 이내 굵어졌다.

“범준아 너 이리 좀 앉아봐라. 오늘은 할아비가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네”

“네 엄마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더구나.”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저녁상을 물린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14살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듬 해, 석구는 서울로 전학 간 친구 칠봉이를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다. 한 동네에서 같은 해 태어나 단짝 친구였던 칠봉이가 몇 년 전 서울로 이사 가면서 편지를 몇 차례 주고받던 차였다.

‘어머니, 아버지처럼 촌구석에 박혀 평생 남의 집 허드렛일이나 거들며 살고 싶지 않아.’

처음 타보는 완행 기차는 너무도 신기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석구의 마음에 한줄기 빛처럼 들어왔다. 설렘 반, 두려움 반 석구의 마음처럼 차창 밖 스쳐가는 들판 위 날씨는 햇살이 쨍쨍하다가 이름 모를 시골 동네를 지날 때는 어느새 축축이 내리는 부슬비로 바뀌어 있었다.

드디어 서울 역이다. 생전 처음 보는 즐비하게 늘어선 크고 높은 건물과 도로에 꽉 찬 차량들, 바삐 움직이며 거리를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리가 보였다. 흰 셔츠에 검은바지를 입고 걸어가는 남자들, 뾰족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늘씬한 종아리의 여자들을 바라보며 석구는 넋이 나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이른 아침 급하게 올라왔기에 뱃속에선 허기가 몰려온다. 석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중국집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기요. 자장면 한 그릇 주세요.”

사장인지 종업원인지 금세 석구 코앞에 자장면 한 그릇 가져다 놓는다. 나무젓가락으로 휘휘저어 입 안 가득 쑤셔 넣었다. ‘와. 역시, 최고의 맛이다.’ 석구는 게 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곱빼기를 시킬 걸.’ 아쉬움을 뒤로하고 석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 이상하다. 분명 여기에 넣어두었는데.”

가방을 뒤지고 아무리 주머니를 털어도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석구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석구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 되었다. 어쩌지? 가슴은 두방망이질 친다. 식은땀이 나면서 손은 축축이 젖어 들어간다. 아까부터 주인 사내가 석구를 곁눈질하며 쳐다보고 있다. 차림새가 꾀죄죄한 조그마한 녀석이 혼자 들어올 때부터 주시하고 있던 터였다. 허둥대던 석구가 주인 사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저어 아저씨.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석구는 머리를 조아렸다.

“뭐야! 쥐방울만한 놈이 겁도 없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돈도 없이 자장면을 시켜먹어!”

주인 사내는 석구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정말 지갑이 없어졌어요. 분명히 여기에 넣어두었는데 없네? 친구 칠봉이 주소도 지갑에 들어있는데 어째.”

“너 이노무새끼! 경찰서로 가자. 음식 장사하면서 너 같은 놈을 내가 한두 번 겪어본 줄 알아? 너 같은 놈은 콩밥 먹어야 정신 차리지.”

사내는 씩씩 거리며 석구의 목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석구는 싹싹 빌었다.

“정말 이예요. 아저씨. 지갑이 없어졌어요. 저 뭐든 할게요. 밥값 대신요.”

석구의 애원에 주인 사내는 한걸음 물러섰다.

“그래? 그럼 저기 저 쌓인 그릇 몽땅 설거지 해.”

석구는 그날부터 중국집에서 허드렛일을 하게 되었다. 석구의 성실함을 알아본 식당 주인이 주방장에게 말했다.

“이놈에게 틈틈이 중식 만드는 법 알려줘. 자네한텐 내가 월급 더 올려 줄 테니 잘 가르쳐봐.”

“한번 해보죠.”

“석구 너. 횡재한 줄 알아. 아무한테나 요리 비법 전수하는 주방장 아니니까.”

몸집이 거대한 주방장이 뒤뚱거리며 그날부터 자장면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무엇보다 중국집에서 가장 맛이 좋아야 하는 게 자장면이야. 자장면만 맛있게 만들어도 손님이 줄을 서니까.”

순간 석구의 눈이 반짝 빛난다. 주방장의 말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그의 곁에 바짝 다가갔다.

“네. 주방장님.”

주방장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잘 들어. 자장면 맛내기는 춘장을 어떻게 잘 볶느냐에 달려 있어. 식용유에 춘장을 볶을 때 사이사이 잘 저어주고 춘장이 부드러워지면 잘 볶아진 거야. 춘장이 다 볶아지면 볶은 기름을 잘 따라내고. 알았어?”

“네. 알겠어요.”

“임마! 주둥이로만 나불거리지 말고. 손으로 익히고 감으로 익혀.”

“주방장님만의 비법 있잖아요. 그거 배우고 싶어요. 불 맛이요.”

“이자식이? 여태 누구한테 알려준 적 없는 나만의 비법이야. 네깟 놈한테 공짜로 알려 주라고? 허, 참.”

“은혜 잊지 않을게요.”

“나중에 뒤통수나 치지 마. 자식아.”

“절대 그럴 일 없어요.”

“잘 봐. 먼저 파 기름을 만들어야 해.”

주방장의 손이 석구의 눈에 마술사의 손처럼 보인다. 주방장은 파를 한 손에 쥐더니 프라이팬에 멋지게 뿌렸다. 파는 기름과 튀겨지며 노릇하게 구워졌다. 주방장의 손이 빨라졌다. 파를 다 볶아낸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더니 이번엔 설탕을 볶는 것이었다. 설탕이 노릇 해지자 주방장은 돼지고기를 넣었다. 뒤집개를 쥔 손목을 요리조리 돌리며 고기 속이 다 익을 때까지 잘 저어 주었다. 주방장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마지막이 제일 중요해. 양파를 볶아주고. 양배추가 숨죽을 때까지 잘 볶아야해. 맨 마지막에 춘장을 조금 섞어. 모든 재료를 잘 볶으면서 불을 줄여 나가란 말이야.”

석구는 주방장의 능숙하고 현란한 솜씨를 넋을 빼고 바라보았다.

“사람 인분 수는 양배추가 조절하는 거야. 명심해. 정말 빠지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 물과 전분 일대일로 섞어주라고. 알았어?”

“주방장님. 간 짜장 이랑 일반 짜장은 뭐가 달라요?”

“야. 넌 대가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녀? 너도 이쯤 됐으면 생각 좀 해봐야 될 거 아냐? 당연히 물 조절이지. 뭘 물어? 나처럼 손님 입맛에 딱 맞추려면 하루아침에 될 거 같아?”

석구는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나면 매일 홀로 자장면 맛있게 만드는 비율을 연습했다. 어느 날부터 중국집을 드나드는 손님들에게 석구가 주방장보다 요리 맛을 더 잘 낸다고 소문이 났다. 그날부터 주방장은 시도 때도 없이 석구를 달달 볶았다. 주방장의 낯빛이 요동친다. 마치 조울증 환자 같다. 잔뜩 주눅이 든 석구는 매일 주방장 얼굴 낯빛부터 살폈다. 언제 또 기분이 나빠질지 모를 일이다.

“야. 이 빠가새끼야. 너 이따위로 일할거야! 제대로 못해?”

주방장은 코끼리처럼 커다란 몸을 흔들며 석구를 향해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주방을 넘어 손님식탁 위까지 주방장 목소리가 쩌렁 쩌렁하다.

“어제 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이자식이 또 속 썩이네. 똑바로 안 해? 계속 이따위로 할 거야? 두 번 다시 주방에 얼씬도 하지 마.”

주방장의 시기와 질투를 감히 이겨낼 재간이 없다. 특히 손님이 많은 시간에 일부러 더 한다.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석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화장실 가는 척하며 중식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짙은 먹구름이 석구의 마음에 가득한데 청명한 하늘은 속절없이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다.

‘그냥 확! 지가 주방장이면 다야?’

석구는 속으로 되 뇌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한다.

‘재수 없는 새끼. 똥이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 피하지‘

석구는 침을 땅에 탁 뱉고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버티자. 여기서 내가 물러날 줄 알아? 얼굴에 철판 깔지 뭐.’

석구는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던 듯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장님. 앞으로 조심할게요. 죄송해요.”

주방장이 석구를 잡아먹을 듯 째려보며 말했다.

“어딜 쏘다녀. 한가해? 아가리 닥치고 저 양파 다 까놔. 오늘 예약 손님 받아야 하니까.”

“네 알겠어요. 양파 볶는 건 제가 잘 하는데......”

“야. 양파 까랬지. 언제 주제넘게 너더러 양파 볶으랬어? 시키는 거나 잘 해.”

주방장이 째진 눈을 부라리며 우악스레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리고 마늘 보이지? 저것도 다 까놔.”

일을 하느라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있던 터라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은 다리는 마치 쇠뭉치 달아놓은 듯 무겁다. 일어서는 순간 다리가 저릿저릿하다. 양파와 마늘 까느라 손톱 끝이 얼얼하다. 석구는 바가지에 물을 퍼서 아린 손가락을 담그고 한참을 있었다. 주인 사장은 지켜만 볼 뿐 단 한 번도 둘 사이에 중재 나서는 법이 없다. 참는 것도 한 두 번이다. 오늘은 사장에게 이 억울함을 반드시 말해보리라. 석구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사장님. 정말 힘들어요. 뭘 해도 저렇게 생트집으로 나오니 배겨 날 수가 없네요.”

사장은 석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남의 기술 배운다는 게 쉬울 줄 알았니? 주방장이 성격은 까칠해도 음식 하나는 잘하기로 소문이 났으니 참고 배워봐.”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처럼 석구는 기댈 곳이 없었다. 그래 한번만 더 참자. 석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다음날 석구는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주방 곳곳을 깨끗이 치웠다.

바닥도 수세미로 문질렀다. 싱크대도 윤이 나게 닦았다. 주방장이 좋아하는 꿀물을 타서 작은 보온병에 담아 주방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석구의 그런 태도에 더는 할 말이 없어진 주방장이 덜 괴롭히자 석구는 한숨을 돌렸다.

어느 야심한 밤이었다. 식당 안으로 도둑이 들어와 금고를 통째로 들고 나갔다. 금고 안에는 다음 날 장사하려고 바꾸어 놓은 지폐가 수북이 있었다. 중식당 한 귀퉁이 거미줄이 쳐지고 쥐똥이 굴러다니는 지저분한 세평 쪽방이 석구의 거처였다. 석구는 정신없이 골아 떨어져 잠을 자느라 들고 나는 기척을 몰랐다.

“사장님. 개도 집을 지키는데 저놈은 여기서 자빠져 자면서 인기척도 몰랐다니 이게 말이 되요? 세상에 저렇게 둔한 놈이 또 있어요? 아이고 천불 나. 야. 너 도둑놈이랑 짜고 친 거 아냐?”

주방장의 일격이었다. 주인이 석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석구. 너 인기척도 못 느꼈어?”

석구가 대답하기도 전에 주방장이 다시 끼어든다.

“저 자식이 분명 거짓말 하는 거예요. 돈 훔쳐가고 도둑이 들었다고 하는지 알게 뭐예요.”

석구는 기가 막혔다.

“뭐가 어째요?”

주방장이 질세라 한마디 더 한다.

“너. 이 자식. 맨 날 일하다 말고 바람 쐬고 온다고 밖으로 나돌 때부터 내가 알아봤어. 어떤 새끼랑 작당하고 돈 빼돌린 거 아니야! 사장님. 나는 도둑놈 하곤 같이 일 못해요. 저 자식이 나가던지 내가 나가던지.”

보다 못한 주인이 석구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석구 너. 당장 짐 싸.”

석구는 쫓겨나 듯 중식 집을 나왔다. 억울함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게다가 앞날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왔다. 벌레만도 못한 주방장에게 어떻게 하면 복수할 수 있을까? 바퀴벌레로 변한다면 밟아죽이면 되는데. 석구는 며칠 째 여관방에서 꼼짝 않고 얼빠진 얼굴로 천장만 보고 누워 있었다.

할아버지는 여기까지 이야기 하고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해주겠다며 말을 끊었다. 어느 새 나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할아버지. 나 같았으면 그 주방장 새끼 두들겨 패버렸을 텐데요. 완전 음해잖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성실만 가지고 안 되는 일들이 많았지.”

“낙담하셨겠네요. 마저 이야기 해주세요.”

내 성화에 할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고 옛일을 다시 회상했다.

석구는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어느 아침 겨우 잠을 청하려 누워 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엿 사시오. 엿을 사! 달고 맛있는 엿이오!”

석구는 저도 모르게 일어나 밖으로 내달렸다. 멀어지는 그 소리를 쫓아갔다. 어릴 적 어머니는 엿장수가 오면 못 쓰는 쇠붙이를 가지고 나가 한웅 큼 엿을 사가지고 왔다. 행여 어린 석구가 엿 먹다가 목에 걸릴까 어머니는 가위로 두꺼운 엿을 살살 두드려서 조각낸 뒤 입속에 넣어주곤 했다. 석구는 달달한 침을 흘리면서 냉큼 받아먹었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었지. 엄마가 보고 싶다.

“그 엿 몽땅 다 얼마예요?”

“뭐라고? 이걸 다 사려고?”

“리어카는 얼마예요? 저도 엿 좀 팔아보게요. 좀 가르쳐 주세요. 어떡하면 되요?”

“진짜 배우고 싶어?”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일 해야 먹고 살지요.”

“허 참. 어린놈이 말하는 폼 새 하고는. 정 그렇다면 오늘부터 나를 따라 다니던지.”

엿장수는 허리춤에 비닐봉지를 끼고 한손에는 엿가위를 연신 철커덕 거리며 골목길로 들어선다. 골목길 한 귀퉁이 조무래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골목길은 왁자지껄 아이들 소리와 엿가위 질 소리로 갑자기 부산스러워진다. 뽀얀 가루가 묻은 엿가락이 아이들 입속으로 들어간다.

“아저씨. 엿 한가락 더 주세요.”

“이놈아. 더 먹고 싶으면 집에 가서 찌그러진 양은 냄비 하나 더 가져와야지.”

“아저씨! 여기 할아버지 고무신 가져왔어요. 엿 많이 주세요.”

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할아버지 새 고무신 한 짝을 내보인다. 엿장수는 모르는 척 날름 고무신을 받아들고 엿가락 반을 톡 잘라 아이 손에 쥐어준다.

“아저씨. 이거요.”

양 갈래로 예쁘게 머리를 땋아 내린 계집애 하나가 자기 몸통만한 도자기를 들고 서있다.

“엄마한테 허락받고 가져 온 거야? 공연히 아저씨가 도둑누명 쓰면 큰일이거든.”

“네에. 엄마가 엿 바꿔 먹으랬어요.”

“그래. 그럼 엿 많이 주마. 맛나게 먹어.”

그 길로 엿장수는 뒤도 안돌아 보고 줄행랑을 친다. 석구도 정신없이 엿장수 뒤를 달음박질하여 쫓아간다.

“자고로 엿장수는 고물과 바꾸어도 보물이 되어 돌아오는 법. 세상만사 이치가 그런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휴우.”

“그러니 이놈 자식아. 잘 쫓아다니면서 배우라고. 재빨리 줄행랑치는 법을 말이야.”

이 동네 저 동네로 온 종일 엿 장수를 따라다니다 보니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는다.

“어 이놈 보게. 어디서 대낮부터 졸고 있어? 장사 배우겠다는 자식이. 야! 이놈아. 정신 바짝 차려. 오늘부터 쌍 가위질 하는 법 알려 줄 테니. 엿장수 가위질은 장단 맞춰 요령껏 흔들어 줘야 해. 쌍 가위질 잘 하는 사람 이 세상에서 나 하나 뿐이야.”

엿장수의 허풍어린 말에 졸고 있던 석구가 눈을 번쩍 뜬다.

“어. 이렇게 찰칵 거리면 되나요?”

“이놈아. 무조건 찰칵 거리면 어째. 자고로 엿가위 소리는 챙챙 소리가 이 골목 저 골목 끝까지 퍼져 나가야 되는 법. 손목의 힘부터 빼고 가볍게 잘 흔들어 주라고. 이리 내. 내가 하는 거 잘 봐.”

석구는 엿장수 손끝만 뚫어져라 보았다. 석구는 엿 장수 밑에서 장사 수완을 하나씩 터득해 나갔다. 몇 해가 흘렀다.

“내 밑에서 배운지 꽤 되었으니 이제 네 장사를 해봐.”

“돈 많이 벌어서 은혜 갚을 게요.”

“네 앞가림이나 잘해.”

석구는 리어카에 엿을 실었다. 손에는 쌍 가위를 들고 동네 어귀로 들어선다. 얼기설기 엮은 초가지붕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눈에 보아도 가난한 동네다. 조무래기들이 저만치서 석구를 보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온다.

“와! 엿이다.”

사내아이는 엿이 가득 실려 있는 리어카를 힐끔 보더니 손에 들고 나온 양은 냄비를 발로 밟아 찌그러뜨린다.

“이놈아. 멀쩡한 냄비를 왜 찌그러뜨리니? 엄마한테 혼나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요. 우리 집에 냄비 많아요.”

“난 모른다. 찌그러진 냄비 받았으니 엿 두 가락 받아라. 옜다. 엿!”

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뛰어 올라온다. 아이들 손에는 각종 쇠붙이가 들려있다. 집안 살림 다 들고 나올 기세다.

“아저씨. 쇠 국자랑 엿 바꿔 주세요.”

“아저씨. 제거가 더 많아요. 엿 많이 주시라고요.”

석구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철부지 아이들을 상대로 집안 가재도구를 받아들고 바삐 이 마을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엿을 자르는 가위 손이 자꾸만 빨라진다. 아이들은 입 한가득 엿을 물고 세상 부러울 게 없는 표정이다.

석구는 동네 녀석들을 뒤로 하고 허공을 향하여 엿 가위를 한번 휘휘 젓더니 리어카를 부리나케 끌고 달아난다. 햇살이 적당히 비추는 봄날, 지나가는 바람이 석구의 얼굴에 흘린 땀을 식혀준다.

이웃 동네는 기와집이 많은 걸 보니 어느 정도 사는 동네인가 보다. 오늘은 이곳에서 하루 일당을 벌어보리라 다짐했다. 동네 정자나무 시원한 그늘 밑에 엿이 가득 실린 리어카를 세워놓고 석구는 양손에 쌍 가위를 들고 챙, 챙, 챙, 가위질을 시작했다.

“엿 사시오. 엿. 엿이 왔어요. 달고 맛있는 엿이 왔어요. 영감, 할마니 싸우다가 담배 꼭지 부러진 거, 큰 애기 오줌 살에 방짜 요강 구멍 난 거, 신랑각시 싸우다가 비녀 꼭지 부러진 거 가지고 나오세요. 나오세요! 못 쓰는 가위, 고무신, 찌그러진 냄비, 아무거나 좋아요. 엿 바꾸어 줄 테니 가지고 나오시오!”

석구의 챙, 챙, 거리는 쌍 가위질 장단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동네 사방으로 울러 퍼진다. 하나 둘 동네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온다. 철 빗장 같이 답답하게 갇혀 있던 석구의 마음도 점차 경쾌해진다.

엿장수를 시작 한지도 벌써 구년 째. 석구의 나이 열여덟 살부터 했으니 이제 스물일곱 노총각이 되었다. 장인이 된 엿장수가 석구에게 말했다.

“석구 널 처음 보았을 때 이상하게 뭉클했어. 어릴 적 내 모습 보는 것 같더군. 없어진 줄 알았던 사람에 대한 정이 내게 남아있다는 걸 그때 알았지.”

“다 덕분이지요.”

석구는 이듬해 엿장수의 딸과 결혼을 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어서 너한테 내 딸 맡기는 거니까 둘이 잘 살아야 한다.”

“걱정 마세요. 장인어른. 처자식 굶기진 않을 테니까요.”

신혼에 엿을 팔러 나갈 때마다 따뜻한 꿀물을 타주던 아내가 첫 딸을 낳았다. 아비 된 마음에 석구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으리라. 석구는 각오를 새롭게 했다.

한동안 중동 건설현장에 우리나라 근로자가 많이 파견되어 나간다는 뉴스가 텔레비전을 통해 심심찮게 흘러 나왔다. 석구는 신혼의 아내를 설득했다. 어릴 적 집 떠나왔던 시절도 다시 떠올랐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 내 5년만 사막 모래바람 견디고 올게. 그러면 우리 세 식구 앞으로 편히 살 수 있어.”

사우디로 떠나기 전 날 석구의 팔을 베고 누운 아내의 가녀린 어깨가 떨렸다. 앞으로 몇 년 간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석구도 마음이 무거웠다. 석구는 아내의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

“우리 5년만 견디자.”

김포공항에서 석구는 연신 눈물 훔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막 돌이 지난 딸아이도 가슴깊이 끌어안았다. 석구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애써 밝은 미소를 보이며 비행기에 올랐다.

첫 발을 디딘 사우디의 풍경은 석구의 곤고한 마음처럼 삭막한 사막 모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벌써부터 아내와 딸아이가 그리워진다. 석구는 자꾸만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우디의 건설 현장에서 석구는 사막 한가운데 수로를 놓는 일을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다. 건조한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 옆의 유난히 가늘고 긴, 바늘 같은 잎사귀를 가진 초록나무 한그루가 석구의 눈에 들어왔다.

“과장님. 저건 무슨 나무예요?”

사우디에 오래 체류하고 있던 과장이 대답했다.

“에셀 나무라고 하지. 황무한 땅 사막 한가운데 4미터에서 10미터까지 큰 나무로 잘 자란다네.”

“신기하군요. 물도 없는 사막에서 어떻게 자라지요?”

“에셀 나무는 땅속 30미터까지 뿌리를 뻗어나가서 지하수를 흡수하기 때문이야. 수많은 가느다란 가지, 비늘과 같은 잎에서 염분을 분비해서 수분 증발을 예방하거든.”

“아 그렇군요. 처음 알았네요.”

“에셀 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른 나무야. 가늘고 긴 가지에 분홍색을 띤 작은 흰 꽃이 피는데 이삭처럼 보이지. 광야를 걷는 사람들에게 사막 한가운데 나무 그늘을 크게 드리우고 쉼과 안식을 주는 나무라네.”

사막에서 깊게 뿌리 내리는 에셀 나무처럼 인생의 고비마다 살아남으려 얼마나 몸부림쳤던가?

“과장님. 저 에셀나무 아래에서 사진 한 장 찍어 주세요.”

사우디에서의 시간, 아내와 아들이 보고 싶을 때면 석구는 목걸이 펜던트로 만들어 온 가족사진을 보며 길고도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냈다. 달력에 귀국 날짜를 체크하며 하루가 천년 같았는데 어느 덧 5년이 흘렀다.

“과장님. 내일 드디어 귀국하는 날이네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국길,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하늘은 더 할 나위 없이 청명했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는 석구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가로새겨져 있었다. 석구는 하늘 상공에서 에셀 나무 아래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보았다. 공항에는 몰라보게 자란 딸이 공주처럼 옷을 입고 아내와 함께 마중 나와 있었다. 석구는 딸을 한손으로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내 아내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석구는 사우디에서 모은 돈으로 엿 공장을 인수했다. 장인에게서 전수받은 석구만의 엿 만드는 비법으로 만든 수제 쌀엿은 도매상에서 소매상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석구는 엿 만드는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쌀엿, 무 엿, 생강엿, 호박엿 등 다양한 엿을 개발해 전통 엿의 명인으로 소문이 나게 되면서 엿 사업은 온라인 매장까지 확장되어 갔다.

할아버지는 살아온 뒤안길을 나에게 찬찬히 들려주고는 깊이 주름진 눈가의 눈물을 훔친다.

“범준아. 세상엔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많아. 중국집에서 일할 때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 그런데 말이지. 노력하는 사람을 하늘은 결코 외면하지 않더라. 엿장수인 장인어른을 만나서 그때부터 인생이 조금씩 풀렸지. 할아버지 일평생 신조는 선한 끝은 있다는 거야.”

“할아버지. 저라면 못 버텼을 거 같아요.”

“나도 살다 살다 힘이 들 땐 사우디에서 만났던 과장님도 떠올려 보고 사막 한가운데 뿌리 내린 에셀 나무도 생각했단다. 그때마다 불끈 다시 힘이 생겼지.”

나는 할아버지의 고단한 삶의 궤적이 묻어 있는 얼굴을 가만히 올려 다 보았다.

“대학까지 졸업했는데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좌절감이 컸어요. 다 포기하고 싶었고요. 나도 내 인생의 금을 캘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가 안쓰러운 듯 나를 바라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청년들의 삶은 쉽지 않았다는 게 할아버지가 해주고픈 말이다. 범준아. 험한 세상이지만 미친 듯 살려고 정말 애쓰다 보면 너를 도와주려는 사람도 어딘가에 있다는 거 명심해.”

네 평 남짓한 방 침대를 정리하고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섰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불끈 쥐어진다. 나를 괴롭히던 귓가의 소음들이 서서히 잦아들더니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코끝에 살살 스며든다. 기분 좋은 향기다. 혹시 에셀 나무에 핀 꽃향기 냄새가 아닐까?

저작권자 © 미래세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