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교사
장주영/교사

1. 입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대한민국 헌정회(회장 김일윤)는 나라를 이끌 정치 인재 양성을 위한 중책감을 가지고 자체 교육을 개설했다. ‘대한민국 헌정회 정치 아카데미’(원장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가 바로 그것이다. 그간 강단에 초청된 명사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용희 전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이택수 리얼미터 여론조사기관 대표, 김기현 국회의원, 전상수 전 법제사법위원회 입법차장, 김성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다.

전 국회부의장 이병석 원장은 교육생들을 향한 외침에서 “스스로 삶의 원칙을 정하라. 스스로 갈 길을 선택하고 결정하라. 스스로 실천하고 행동하라.”라고 올바른 책임과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개인에게 던지는 이 주문이 바로 국가의 입헌주의와 민주주의의 시작인 것이다.

김성호 교수님과 이병석 원장님을 모시고
김성호 교수님과 이병석 원장님을 모시고

지난 10월 19일, 세계적인 정치철학 권위자 김성호 교수의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라는 강연이 있었다. 미국 역사는 짧지만 1789년 헌법 제정 이래 민주주의 역사는 가장 긴, 민주주의 선진국이었다. 이에 미국 정치 철학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헌법과 현실을 살폈다.

김성호 교수님은 도입에서 의미심장한 사진을 보여주셨다. 헌법을 만드는 미연방 대법원 건물 앞에서 대규모 농성이 공존하는 현장의 사진이었다. 그것은 원칙과 이성을 제도화한 법치주의와 신념과 욕망의 분출인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헌정질서와 광장정치의 조화와 양립을 설명하고,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모순적 정합성(무모순성)이라는 논문을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했다.

간추려보면,

표면적으로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성질에는 구속과 자유라는 상반된 모순성이 있다. 헌법은 최종 심급의 인식 규준으로서 탈정치화, 초(超) 정치화되어야 한다. 헌법을 맹목적으로 우상화해서도 안 된다. 법의 구속은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고 논리적으로 절대적이어야 하며, 궁극의 자유를 꾀하는 것이어야 한다.

헌법에 대한 불신은 정치문제 해결 도구로 전락하여 헌법이 방편으로 쓰일 때 생긴다. 헌법은 해결 방책이 아니라 해결의 ‘결실’이다. 헌법은 당대의 시대정신을 존중하고 찰나의 여론을 관리해 나가야 '살아있는 헌법'이 된다.

그러나 악마로 변한 국민이 다수결 정치(민주주의)로서 헌법(입헌주의)을 흔들어서는 안된다. 차원이 낮은 입헌주의는 반민주주의 기제로서 작동하지만, 궁극의 입헌주의는 헌정질서, 즉 '구속'을 통해 민주적 다수 의지를 효율적으로 실천 가능하게 하여 결국 '자유'를 신장한다. 거시적으로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는 구속을 통한 자유 실현이라는 정합성(무모순성)이 있다. 입헌주의의 역할은 공적 영역을 안정적으로 보호, 유지시켜주는 데 있다. 결국 입헌이란, 미래를 대비한 것이며, 과거에 대한 입법을 금한다.

이상적 상태에서 법치(法治)가 민치(民治)보다 위이다. 헌법은 민주주의를 위해 ‘건강한 재갈’을 사전에 물리는 것이다. 헌법은 최상위 규범이다. 즉 이상적 상태의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는 상호보완적 관계다. 따라서 양날의 검과 같은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정치적 역학관계를 초월하여 상생 발전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헌정회 아카데미에서 배운 지식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잣대가 되곤 한다. 또 법안을 만드는 숙제도 있어, 주제를 정하기 위해 사회를 관찰해야 했다. 이번 주 필자의 머릿속에서 함께한 명제는 이렇다. ‘법은 자유분방한 삶을 가로막는 구속성이 있지만, 궁극의 자유를 가져다준다.’ 김성호 교수의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강의를 통해 얻은 이 명제를 바탕으로, 아직 사회적 합의가 없는 여성의무군사교육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2. 여성의무군사교육의 당위성

여성의무군사교육은 개인의 목숨과 국가의 안위에 관련된 것이다. 본질적인 취지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의무군사교육을 찬성하는 것을 전쟁을 바라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소화기’를 배치하는 것이지, 119를 못 믿거나 화재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또 의무군사교육은 응급처치를 위해 집에 두는 ‘상비약’과 같다. 상비약을 준비함이 환자가 생기기를 바라거나 병원을 불신해서가 아닌 것은 다 알 것이다. 이런 예를 드는 이유는 여성의무군사교육에 대한 반론으로 ‘전쟁을 바라느냐’, ‘동맹국을 못 믿느냐’는 등 논리에 어긋난 궤변을 늘어놓는 토론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1948년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하던 시절, 남녀평등 의무초등교육 헌법이 제정되었다. 국민적 인식이나 사회적 합의보다 정치와 제도가 앞선 것이다. 초등교육의 의무화는 당시 교육 예산의 80%를 쏟아부어야 실현할 수 있는 엄청난 도전이었는데, 기본소양교육으로 문맹탈출이 이뤄졌고, 후진국을 벗어났다. 사회적 합의보다 앞선 이 헌법은, 다수결의 민주주의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독재적 입헌주의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소신 있는 정책은 초 정치적이었다. 개인에게 무지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주고, 여성의 위치가 신장되었으며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의무라는 단어에 함의된 '구속'은, 자유의 반대 상태가 아니라 자유의 능력이 가동되는 출발선이 되었으며 국민의 '특권'이 되었다. 국민과 나라를 살린 것이다. 의무군사교육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유비무환 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은 임진왜란 때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것처럼 대한민국 1000만 양병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난 IMF 때나 2002 월드컵 때 보여준 한국의 저력은 세계가 놀랐다.

전 국민이 단합되어 여성까지 군사교육을 받는다고 치자. 북한을 비롯하여 한국이 망하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국가들은 두려움을 가질 것이며, 국제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동맹국들도 될성부른 나무인 한국의 가망성, 나아가 군사 강국으로 변신할 한국과의 조약을 배신하지 않고 더 잘 지킬 것이다.

한국의 여성이 모두 군인이 되어, 인간 병기라고 생각해보라. 이미 뛰어난 두뇌로 소문난 한국인이, 체력까지 좋다면 누가 감히 시비를 걸겠는가? 힘이 약해 보호하고 싶은 가녀린 여성, 물컹물컹 지방이 통통하게 오른 한국 여인의 몸도 사랑스럽지만, 군사기술을 갖춘 한국 여성의 정신력과 근육질 몸에 대해서 세계인들은 경외심을 가질 것이다.

여성들도 용기를 가져라. 군사교육은 개인과 국가를 살리고자 함이지, 여성을 죽이고자 함이 아니다. 애인, 경찰, 군인에게 나의 목숨을 의지하는가? 부국강병의 길에 대의도 이루고, 개인에게도 발전적인 기회다. 무에 두려운가? 의무교육이라는 구속이,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것이다. 게다가 무기도 자동화 첨단화 됐기때문에 섬세한 여성들이 사용법도 더 잘 익힐 수 있다. 이런 의무를 구속이라 여기지 말라. '진정한 자유'인 것이다.

여성군사교육은 여성이 남성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에 더 필요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의병을 다룬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여주인공 애신은 나라를 위해 저격수 훈련을 받는데, 결국 그 실력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게 된다.

셜록홈스의 여동생 에놀라의 모험담을 담은 영화 에놀라홈즈에서도 탐정인 여주인공의 생존을 위한 무술 교육 장면이 나온다. 우주괴물 에일리언과 싸워 끝까지 살아남는 여주인공 시고니 위버도 특수 전투훈련을 받았다. 물리면 괴물로 변하는 영화 스위트홈에서 주인공 이시영의 근육질 몸은 괴물과의 전쟁에서도 여자를 살아남게 했다.

훈련과정은 힘들었겠지만 얼마나 다행이고 멋있는가? 필자는 대학시절 체육교육과 교수로부터 ‘호신술’이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는데, 매우 열심히 한 기억이 있다. 호신술은 방심한 상태에 있는 적을 순간적 행동으로 가격 (加擊)하거나 자빠뜨리는 기술로서 남성보다 힘이 약한 여성에게 적합한 무술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몸짱이 되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호신술, 각종 무술, 체력훈련 등을 배우기도 해왔다. 극단적 예로 의지가 약한 이는 비싼 스파르타 기숙학원에 자의로 몸을 속박하기도 하는데, 강제 교육으로 성적을 올려 명문대에 가는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다. 이렇듯 도약의 틀은 우리를 변신하게 한다. 기름진 식습관과 자동화 생활문화의 변화로 다이어트, 체력단련 시장이 커지는 추세에, 의무군사교육은 균형잡힌 육체와 군사기술체득으로 한국여성의 건강과 호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적인 여성군사의무교육으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모두 섭렵할 수 있다. 소화기나 상비약은 예방 차원이지만, 여성군사의무교육은 국가방위에 대한 예방뿐만 아니라 당장 현실적으로도 효과를 본다. 이런 과감한 준비 태세만으로도 전쟁 발발 확률을 낮추게 된다. 설령 국가 간 전쟁이 나지 않더라도 경제적, 교육적 손실이 없다. 군사교육이 삶에 당장 활용되어 일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이나 가족을 지켜 수신제가(修身齊家)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국방과 개인 생명 보호라는 본연의 목표에 단계적으로 이르도록, 안전한 계단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국가 존폐와 국민 안위를 놓고 당쟁에 악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에게 필요한 교육과정을 만들고 이해시키면 되는 것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에게도 군사교육을 받을 평등한 기회를 주고, 여성의 특수성을 고려한 배려가 정책에 반영되면 되는 것이다. 여인을 아끼고 보호하는 기사도(騎士道) 정신은 틈새마다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다소 무리스럽더라도 시작해보자. 여성군사의무교육으로 10년 안에 대한민국 여성의 체력과 군사기술을 세계 어느 나라도 감히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불멸의 투자'다. 시쳇말로 ‘넘사벽’이라 한다고?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뜻으로, 매우 뛰어나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거나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음을 이르는 말.) 국민의 힘을 길러주어 결실이 맺어지는 영역에 나랏돈을 써야 가치있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여성군사의무교육 헌법을 만들 시점이 되었다. 지금 학생들은 남녀차별 의식이 없는 세대이니 어른들보다 이 제도에 대한 포용력이 더 클 것이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군사의무교육이라는 전례없던 도약의 틀에서 힘이 평균상향할 것이다. 핵 무장을 서로 감시하는 최첨단 방위의 시대에, 우리는 지금 믿기지 않는 재래식 전쟁이 터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다수결 원칙과 민주주의 운운하며, 여성군사교육을 맹목적으로 반대하다가 우리에게도 이런 불행이 터질 수 있다. 저질 체력 여성들이 속절없이 무너진다면, 얼마나 무책임하고 창피한 일인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칠 것인가? 미래에 가장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 '건강한 재갈'을 현재 물리는 것이 '헌법'이라고 배웠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국가가 먼저 나설 때이다. 힘이 강하면 적도 친구로 바뀌는 세상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파괴하려는 전쟁 앞에 죽느냐 사느냐 운명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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