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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학자 백파(白坡) 윤대현이 보는 세종시의 미래

미래세종일보 창간 1주년 기념 특별기획 3부작 제2부

미래세종일보가 창사 1주년을 맞아 박정희 대통령 당시 책사를 역임하면서 세종시로 행정수도 이전을 최초 설계했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행정수도 이전을 준비할 때 풍수지리 및 역리학의 대가이며 수경학의 창시자 백파 윤대현 선생의 특별한 세종시 사랑과 함께 세종시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담소와 발전방향을 진단하는 두 번째 시간을 준비했다.<편집자 주>

 

수경학자 '백파' 윤대현의 박정희 대통령 만난 배경

 

천광노 논설고문(이하‘천’) : 백파 원장님을 모신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일제 강점기 출생으로부터(호적은 78세이나, 1935년생 83세임) 한국현대사에 이르까지 80여년 인생의 여정에서 만난 분들을 여쭤 보겠습니다.
백파 윤대현(이하 ‘백파’)  감사합니다.
천 : 과연 현대사의 유명인사들과 밀접한 인간관계로 오늘에 이르렀는데요, 우선 누구누구입니까?
백파 : 한국인이면 누구나 잘 아시는 분들입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財界(재계)에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회장, 정주영 현대그룹회장, 김우중 대우그룹회장, 최순영 신동아그룹회장, 양정모 국제그룹회장, 강석진 동명목재회장, 한보 정태수 회장, 럭키 구본은 회장, 두산 박용성 회장... 하여간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아 100명도 넘습니다.
천 : 네, 그런데 이런 분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였다는 것입니까?
백파 : 친밀 정도 그 이상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 경제계 뿐 아니라 국회의원들까지 치면 거의 면이 두터운 분들을 다 짚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천 : 그렇습니까? 보통 우리들은 평생에 한두 번도 만나기도 어려운데 친숙한 정도 이상이라면 어떻게 그런 인간관계가 형성되었습니까?
백파 : 그 밑바탕이 바로 제가 하는 수경학입니다. 뭔가 나를 만날 이유가 그분들 쪽에 있고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제가 원한다고 만난 게 아니라 그분들이 저를 보자고 하니까 만났던 거지요.
천 : 그렇게 높은 분들이 왜 백파 원장님 만나기를 그쪽에서 그렇게 원했을까요?
백파 : (웃음...) 거의 돌아가신 분들이니 그분들에게 물어보라 할 수는 없겠군요. 답은 하나입니다. 저를 만나면 제가 배운 수경학이나 풍수지리나 역리학 자들 보다 적중한다고 인정했기 때문일 건데요 사실 저는...
천 : 사실 뭡니까?
백파 : 만나보면 天氣(천기)라고 할지 척 보면 이게 맞다 아니다, 또는 될 일인지 안 될 일인지, 아니면 그럴게 아니라 이러는 게 좋겠다고 하는 소위 영어로 필이 옵니다. 감각적으로 오는 느낌 그대로를 말하면 늘 맞아 왔어요.
천 : 놀라운 일이군요. 예를 들자면 무엇입니까?
백파 :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를 들자면 유신이 1972년이지요? 그즈음 3선 개헌 유신헌법을 하신다고 당시 쟁쟁한 분들이 각하의 뜻을 전해 왔습니다. 중앙정보부장 시절부터 잘 아는 이후락 실장이니 차지철 박종규 경호실장 이런 분들도 제가 잘 알고 각하도 자주 보자고 불렀는데 저는 그 3선 개헌을 하면 안 된다고 적극 말렸습니다. 훗날이 보이지만 차마 말은 못하고 안 된다, 나쁘다고만 하니까., 그럴 수밖에 더 있습니까? 암살당할 거라고는 못하잖아요? 그랬더니 그후 저를 무 자르듯 자르고 개헌해 김재규의 흉탄에 서거하셨습니다. 난 알았습니다. 고속도로를 낼 때나 포항제철 울산 현대 이런 것 전부 자리만 봐드리고 조금씩만 각도를 틀어드리면  좋다고 했는데 그때와는 달리 유신 때는 정말 서운 하셨던 겁니다. 바른 말이 그만  15년여 인간관계를 끊더라고요. 가슴 아픈 일입니다.
천 : 그럼 과연 대통령의 정말 미래를 아셨습니까? 맞추신 거예요.
백파 : 그럼요. 측근이 암살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천 : 그럼에도 박정희 대통령이 관계까지 끊었다면 혹 그 이전에 뭔가 엇나간 게 있어 쌓였던 것은 아니겠습니까?
백파 : 아닙니다. 5.16혁명도 처음 1월 1일로 하려다 2월 9일로 다시 잡은 후 5월 16일로 확정 되는 과정 등 알았던 일이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부지기수지요.
천 : 그 참 어떻게 그런 분들과 만나고 함께하고 또 떠나게 되니 많은 사연이 있겠군요.
백파 : 맞습니다. 현대사를 쥐락펴락 한 분들과의 인연을 말하면 끝이 없을 거예요.
천 : 그럼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결별은 대충 들었으니까 이번에는 만나게 된 사연이 듣고 싶네요,
백파 : 이야기를 하자면 깁니다. 그러니까 일제 때 태어나 낳자마자 양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뜨셨습니다. 삼촌이 나를 잠시 돌보시다가 저를 절간으로 보냈어요. 두 번째 간 절이 해인사인데 그게 세 살 적이니까 가던 당시의 기억은 없습니다. 절에서 스승님 두 분을 만났어요. 그중 송만 스님이 어린 나를 한문과 수경학을 가르쳐 주시다 열 세 살적에 103세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그런데 열세 살 어린 내가 총기가 있다면서 그때 수경학을 풀어쓰신 한문책 5권도 물려주셨지요
천 : 아 그러면 수경학의 스승님이 송만 스님이시다 그거네요.
백파 :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후 그 책을 이사 다니다 그랬는지 누가 훔쳐갔는지 그 소중한 유산을 잃었습니다.
천 : 아무튼, 그래서요. 송만 스님이 별세한 다음에도 계속 절에 머문 겁니까?
백파 : 아닙니다. 제가 스님 안 계신 절이 싫어져 불전에서 돈을 훔쳐 무작정 부산으로 탈출했습니다 그때가 바로 열세 살, 부산에 와 자주 해인사에 오셨던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을 만나니 저를 위해 현재 부산 남포동 미화당백화점 앞에 일본 적산가옥 2층집을 마련해 줘 그곳에서 용한 동자승으로 소문도 나고 처음 집이라는 것도 갖게 되어 많은 손님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천 :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떻게 만난거지요?
백파 : 네 그 무렵 박정희 대통령은 부산 군수기지 사령관으로 와 근무 중이었습니다. 이에 고 육영수 여사께서 저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상담을 하셨고, 자주 저를 찾다보니 다음은 친정 충북 옥천에 가서 육 여사의 부친 육종관씨도 만나 산소를 보아 주며 인연이 두터워지게 됐습니다. 그 후에도 제 주위에 아는 분들이 저를 도왔는데 그 사실이 박정희씨에게 전달되어 제 주위에는 누구 하나 얼씬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점점 대단한 수경학 역술가로 정평이 나게 된 것입니다.
천 : 자세하게 들으면 재미도 있을 것 같은데요, 요는 원장님께는 어떤 재주가 있어서 한 번 사람을 만나면 지위고하 관계를 계속한 것입니까?
천 : 간단합니다. 가령 저는 사람을 척 보면 순간 그분의 장래가 보여요. 심지어는 죽은 사람의 무덤만 봐도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물론하고 시신이 틀어졌거나 움직인 것 까지 묘지 속이 보입니다. 그래서 移葬(이장)을 해야 한다거나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바로 압니다. 예를 들자면...
천 : 뭐죠?
백파 : 이건 현직 유명 정치인이라 實名(실명)을 말할 수는 없는데요, 대통령 지지도가 아주 높은 그 국회의원이... 왜 그 대통령이 되려는 분들은 조상 묘를 옮기잖습니까? 그분도 묘를 옮긴다는 거예요. 저를 불러 여긴데 이 자리가 어떤가 하길래 보았습니다. 보니 이장하면 될 것도 안 되겠더라고요. 누가 여기라 하더냐, 아니다, 하지마라, 내가 말렸더니 듣는 듯 하다 결국 꼬드김에 옮겼습니다. 최근 얘기예요. 결국 죽도 밥도 안 되고 지지도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그분은 결국 대통령 후보도 안 되자 처음 묫자리로 도로 이장했습니다. 할지 말지 망설일 때 저를 믿은 분은 됐고 믿지 않은 분은 절단 난 경우 등등 말고도 많은데 더 이상 말 안 해도 되겠네요.
천 : 그게 뭔가요?
백파 : 아 아닙니다. 그 얘긴 빼고요, 제가 박근혜 대통령도 당선되자마 조심하지 않으면 임기를 못 채운다고는 여러 사람들에게 수도 없이 말했습니다. 아버지와의 정을 봐서라도 만나서 꼭 들려주고는 싶은데 결국 제가 말한 그 조심하지 않은 것이 지금 저렇게 되었습니다.
천 : 직접 말하지 못했습니까?
백파 : 모시는 분들이 막아요. 그러니 이상하게 만나지를 못해 내 말이 전해질만한 분들에게만 했습니다.
천 : 아하...
백파 : 이런 경우가 너무 많아요. 가령 다음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경우인데요. 춘부장 이병철 회장님은 저를 자주 부르셨습니다. 직원들 중에서 理事(이사)나 幹部(간부)를 뽑으려 할 때는 꼭 저를 불러 앉혔습니다. 그들의 서류를 다 보여주고 죽 불러 면담 심사를 하면서도 저를 곁에 앉혀놓고 했어요. 그런 다음에 백파가 보니까 어떠냐 하였고, 제가 예스다 노다 하면 그걸 참조했습니다. 에버랜드도 그렇게 만들었지요. 그런데도 아들 이건희 회장에게는 자주 할 말이 있어 기를 쓰고 보자고 하면 중간이 막혀 독대를 못했습니다. 결국 볼 수가 없으니 도와드리면 좋겠는데 아버지와의 인연을 가볍게 본 경우가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천 : 會者定離(회자정리)라 하더니만 후대에 와서는 그렇게 좋은 사이에도 금이 가고 결별의 날이 왔군요.
백파 : 그렇습니다. 참 맘 아픈 분 중에 또 한 분이 바로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입니다. 정 회장님과는 단양 매포 시멘트 공장 있지요? 그게 한국근대화 건설 건축의 마중물이라 할 건데요. 당시 저는 비서실장처럼... 하여간 하나에서 열까지 저를 믿고 부지매입부터 공장건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묻고 수족처럼 부리셨기 때문에 정 회장님과의 관계는 오래오래, 참 여간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또 금이 가더라니까요. 몇 해 전 정 회장님의 부인 변 여사가 돌아가시어 문상을 가보니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천 : 정주영 회장님은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분으로 모두가 인자한 큰 아버지 같이 느끼시는데 왜 그러셨어요?
백파 : 들어보세요. 그러니까 저와 정 회장님과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 것이 있습니다. 하루는 정 회장님께서 저에게 자신이 대통령으로 출마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저는 정 회장님께 대답하기 전에 한 번 더 확실히 보고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정 회장님께서 만나자 하여, 대치동에 있는 음식점 박모모 박사가 하는 일식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김동길 교수와 같이 항상 정 회장님을 섬기던 이병규씨와 다른 몇 분을 함께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그 자리에서 정 회장님에게 출마를 안 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정 회장님은 묵묵히 들으시는데 옆에 있던 분들이 저를 보고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며 화를 내고 소리를 치기에 잘들 해보라 하고 저는 그길로 그곳에서 나온 다음 그 후 정 회장님과 멀어졌습니다. 人(인)의 장막이 무섭습니다. 드디어 선거가 시작되자 저는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선거 사무실로 쓰는 광화문 앞 현대 빌딩을 찾아갔습니다. 그 곳에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정회장님을 만나고 문화일보 사장으로 계시는 이병규씨를 만난 다음 그 후 영영 저와 정 회장은 멀어져 아예 보지 못할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천 : 낙선해서 그렇지요?
백파 : 낙선도 낙선이지만 그후 현대그룹이 얼마나 힘들어졌습니까? 정몽헌 회장 자살이라든가 금강산 개발 등 모두 대통령 출마와 관련 있지 않나요? 이런말 조심스럽지만 수경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닌데도 그 길을 가는 것은 유무식이나 지위고하 막론 인간은 누구나 멈출 때 멈추고 달릴 땐 달려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악세레이더와 같거든요.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그때 저를 아산병원 종신 무료로 해 주라고 하셔서 지금도 그 덕을 보니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천 : 그런데요, 끝으로 독자들이 젤 궁금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 그렇게 산 80여년의 세월에서 과연 돈은 또 얼마나 벌었는지요? 억수로 벌지 않았나요?
백파 : 아닙니다. 돈을 벌자고 맘 먹으면 학문이 안 되는 거라고는 조금 전 차  한 잔 하며 천 작가님도 말했지요? 저는 평생 돈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오로지 나를 찾고 부르는 분에게 내가 무엇을 도와드릴까만 생각했지 그게 돈으로 댓가를 바란 역사가 없습니다. 천 작가님도 어린 초등학생들 데리고 인성학당하면서 돈 생각 안 한다 했지요? 돈을 알면 靈(영)이 부패하고 흐려져 세속화되는 순간 수경학도 맥을 잃어 망가집니다.
천 : 아니 그렇게 큰일도 하고 또 재벌들 뒤를 그렇게 오랜 세월 엄청난 뒤를 봐 줬는 누가 봐도 부자라고 보지 않겠어요?
백파 : 만일 제가 돈을 벌자는 마음을 먹었다면 재벌 회장쯤 되었을 것입니다만 그런 미련은 없고 그저 그동안 잘 먹고 잘 살고 지금도 늘 누굴 뭘 도와드릴까만 생각하는 터 라서요.
천 : 그렇다고 무료봉사 자선사업을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백파 : 저요? 돈은 계산 할 줄도 요구할 줄도 모르고 그냥 흐르는 대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오직 누굴 도우면 도왔지 피해나 주고 신세지지는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왔는데, 물론 지금 돈 걱정 안 해도 잘 삽니다. 하하하.
천 : 서울에도 상담실이 있고 청주에도 있고 사무실도 널찍하고 신수도 훤하시고 하여간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파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던가요?
천 : 네 그럼 다음 제3부에서 뵙기로 하고요. 건강하십시오.

 

박승철 기자  baks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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