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균 수필가
염재균 수필가

6월도 어느덧 중순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화 한지도 1년이 넘었다. 코로나 예방을 위한 1차 백신접종을 2주 전에 맞았는데 별다른 증상 없이 잘 지내고 있음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새벽을 여는 아침과 한낮의 기온 차이는 심해 건강이 염려되는 여름의 날씨에 다소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데, 적당한 긴장감은 있어야 유비무환의 정신을 기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24절기 중 낮이 가장 긴 시기인 하지를 하루 앞둔 6월 20일(일요일) 오전 9시에 동학사 주변을 감싸고 있는 남매탑과 삼불봉, 관음봉을 거쳐 은선폭포 쪽으로 하산하는 여름 산행을 하자는 갈마동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안 00로부터 토요일 전화가 와 가겠다고 승낙을 했다.

오전 8시경 최소한의 물품만 챙긴 배낭을 둘러매고 서민의 발인 103번 시내버스를 타고 갈마 네거리에서 내려 동학사로 가는 107번 버스로 환승하여 설레이는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동학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8시 40분인데, 벌써부터 기온이 많이 오르고 따가운 햇살에 힘든 산행이 되겠구나 생각하며 같이 산행할 두 친구들을 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다렸다.

그늘이 되어준 나무는 해마다 봄이 되어 꽃이 피면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을 하러 구름처럼 몰려오게 하는 벚나무로 벚꽃이 지고 나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푸른 잎만 무성하고 결실의 열매는 오고가는 사람들의 신발만 더럽히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 같다.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살이와 비슷한 것 같아 쓸쓸한 여운을 남기게 한다.

오전 9시경 동학사 주차장으로 시내버스가 들어오더니 사람들을 토해낸다. 같이 산행할 친구 두 사람이 필자가 기다리고 있는 나무 그늘로 다가왔다. 갈마동 아파트에 사는 공로연수 중인 친구는 대학시절 동기동창으로 공주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며 사회경험이 풍부한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다리 오른쪽으로 해서 남매탑을 향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비가 내렸지만 골짜기의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산행하는 길의 대부분이 물을 저장할 수 있는 흙은 별로 없고 뾰쪽하고 울퉁불퉁한 돌들로 이루어진 산이어서 나무그늘로 이어지는데도 무덥기만 하였다. 먹을 것이 없어서였을까 산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속에 거친 산행객의 숨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돌바닥으로 이어진 구간을 지나니 계단으로 이어진 곳이 나타났다. 벌써 얼굴을 비롯한 온몸 구석구석에서 땀방울이 흘러나와 산행을 하는 우리들을 힘들게 한다. 중간에 잠깐의 수분보충을 하며 바람이 불어오는 그늘에서 몸을 맡겨본다.

우리 일행과 같이 산행하게 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중학교 동창생들의 웃음 가득한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옛 생각에 젖어본다. 가끔씩 불어대는 시원한 바람은 산행으로 지친 우리들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 같다.

힘을 얻어 한참을 가다보니 첫 번째 목적지인 남매탑에 다다랐다. 하나는 외로운지 두 개의 남매탑이 다정하게 보였다. 국립공원공단 표지판의 설명에 의하면 남매탑(男妹塔)은 동학사와 갑사의 중간 지점인 삼불봉 밑의 청량사 터에 탑 2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5층(보물 제1284호) 다른 하나는 7층(보물 제 1285호)로 청량사지 쌍탑(淸凉寺止雙塔)이라고도 불리며, 남매탑이란 이름에 걸맞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하는데, 신라시대 때 상원조사가 이곳에서 토굴을 만들어 수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 스님이 입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큰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 있어 뽑아주었더니 며칠 뒤에 호랑이는 은공을 보답하는 뜻으로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 와서 내려놓고 갔다고 한다. 처녀는 경상북도 상주사람으로 혼인을 치른 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스님에게 말하였다.

그때는 산에 눈이 쌓이고 날씨도 추운 겨울이라서 돌려보낼 수 없어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자 스님은 처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 처녀의 부모는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보낼 수도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부부의 예를 갖추어 주기를 바랐다고 한다.

이에 스님은 고심 끝에 처녀와 의남매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서 불도에 힘쓰다가 한날 한시에 입적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의남매의 연을 맺어 수행자로서 열심히 정진한 두 분을 기리기 위해 스님의 제자인 회의화상이 화장 후 사리를 수습하여 탑을 건립하게 되었는데 이 탑을 ‘남매탑’ 또는 ‘오누이탑’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남매탑에 대한 유래와 탑 주변을 감상한 후 급경사에다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500m 거리에 있는 두 번째 목적지인 ‘삼불봉’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삼불봉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지만 땀을 가장 많이 흘린 구간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도 그때뿐 무더위로 인한 열기로 산행의 피로는 가중되어가고 있었다.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니 오전 11시 21분경 삼불봉의 표지석이 놓여있는 정상에 도착했다.

삼불봉의 높이는 775m로 표지석 주변에는 울퉁불퉁한 바위가 대부분으로 산행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발걸음을 잘못했다가는 다치기 쉬운 환경이었다. 산행을 같이한 셋이서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을 찍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삼불봉의 설화에 눈길이 간다. 천황봉이나 동학사에서 멀리 올려다보면 마치 세 부처님의 모습을 닮아 ‘삼불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삼불봉에서 동학사와 동학계곡, 갑사계곡이 내려다보이며 1.4km 지점에 있는 산의 모습이 후덕하고 자비로운 관세음보살님 같다 하여 불리는 관음봉과 봉우리의 형상이 네 자루의 붓을 세워 놓은 형상과 같다 하여 문필봉, 봉우리가 하늘에 이어진 모습의 연천봉과 산의 형상이 디딜방아의 받침대 닮은 쌀개봉, 계룡산의 최고봉의 상징인 천황봉이 솟아올라 산세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향하는 길은 산등성이로 길 양쪽은 수십 길의 낭떠러지에다가 경사가 급하고 끝없이 계속되는 철제계단으로 인해 땀방울이 온몸에서 쏟아지며 체력이 한계점에 다다랐는지 쉬기를 반복했다.

암벽으로 이어진 철제계단을 오르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름 모를 노란 꽃이 바위틈에서 피어나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넬 때였다.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마셔가며 걸어가다 보니 드디어 세 번째 목적지인 766m의 관음봉에 도착하였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상에 쉼터를 제공하고 조망을 할 수 있는 정자가 있는데,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띠가 둘러쳐서 있어 아쉬움이 컸다. 할 수 없이 인근에 있는 그늘이 있는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며 흘린 땀을 식혔다.

잠깐동안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험한 산길을 따라 바위와 뾰족한 돌들로 이루어진 좁은 길의 산행은 계속되었다. 산행하면서 계곡을 바라보니 봄에 피었던 벚꽃은 사라지고 대신에 여러 마리의 흰나비가 내려앉아 있는 듯 무리를 지어 피어난 층층나무가 초록으로 물든 산야에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네 번째 목적지인 ‘은선폭포’로 내려가는 길은 지금까지 산행했던 것보다도 경사가 심하고 돌계단과 바닥에 위험한 곳들이 많아 다리가 후들거려도 더욱더 조심하고 조심하여야겠다고 다짐하면서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하산하기 시작했다.

40대 초반에 유성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갑사로 가서 금잔디 고개를 넘어 동학사로 넘어가던 시절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산행을 즐겼지만, 정년퇴직을 하고 삼 년이 지난 필자에게는 몸이 예전과는 다름을 몸소 느껴야 했다. 힘들어 하는 다리의 고통을 참아가며 걷다보니 우측으로 보이는 높이 46m 경사 60도의 ‘은선폭포’(隱仙瀑布)가 많은 양의 물은 아니지만 물줄기를 아래로 쏟아내고 있었다.

‘비 오는 날에 왔더라면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의 순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옛날에 신선들이 숨어서 놀았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은선폭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유수량이 적어 갈수기에는 폭포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은선폭포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금 더 내려가니 계룡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다다랐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1시가 지나고 있었다. 아직도 동학사 있는 곳까지 가려면 1km 정도를 더 가야만 한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산행이 4시간 이상의 강행군이 되었다. 산행을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할 수 있어서 힘들어도 참아가며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이 무사히 계룡산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오전에 시내버스를 타고 오면서 월평삼거리 부근에서 교통사고가 크게 나 여러 대의 차량이 반파되는 모습이 눈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는데 마음이 놓인다. 날이 더운 여름이라고 하여 할 일 없이 집에서 소일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를 착용하면서도 적당한 운동과 산행으로 건강을 유지하여야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가정이 행복해질 때 웃음꽃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4시간 이상의 힘들었던 산행을 마치며 마시는 한 잔의 동동주가 산행의 피로를 가시게 하는 청량제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또 다른 산행을 기대해 본다. (2021. 6. 21.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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