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친구

▲ 김석회/ 카톨릭대학교 전 부총장

세상에서 친구라는 말보다 정겹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말이 어디 있으랴. 부모 형제나 가까운 친척들 빼고는 더없이 가까운 게 친구들이겠기에 하는 말이다. 송아지도 어지간히 성장하면 어미 곁을 떠나고 어린이들도 초등학교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것을 보면 친구야 말로 정말로 세상에 없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특히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내며 함께 자랄 수 있었던 고향친구들이야말로 향수에 젖어 살아가기 마련인 우리들에게는 세상에 없는 귀한 존재들인 것이다.

우리가 한평생 살아가다보면 우리 모두는 사회적 존재이겠기에, 사회적 동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때로는 스치고 또 때로는 만남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어려서는 어린대로, 성년에는 성년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과 접하기 마련인데, 그들 중에서도 가장 만남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게 되는 것은 곧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 그 자체로서 만나고 서로 부딪치면서 지내온 어릴 적의 친구들이리라. 그들 친구들 간에는 고향이라는 든든한 끈이 우리들을 꽁꽁 붙들어 매고 있겠기에 더욱 그렇다.

그것은 그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경험일 테고, 그럼으로써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누구보다도 그리운 친구들을 손꼽아 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대체적으로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함께 만났던 친구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친구들과의 추억에 담긴 얘기꺼리의 대부분은 소꿉장난 때부터 특히 초,중,고등학교를 함께 거치면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얘기들이 주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그 옛친구들이야말로 보석보다도 소중한 하늘이 선물로 준 보석중의 보석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의 친구들을 만나서 그 옛날 얘기들을 하고 듣다보면, 그 숱한 얘기들이 줄줄이 시탕으로 끊어질 줄 모르고 이어지기 마련이다.쳔진난만 했던 어릴 적 얘기들이니 그 얼마나 흥미진진할 것인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사회적 존재로써 서로 상호작용 하며 각자의 삶에서 겪을 수 있었던 얘기 보따리들이 터져 나오니 그 어찌 재미가 있지 않을 손가. 그 얘기 보따리 속에는 우리들 인간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그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으니, 그것들은 곧 우리들 인생의 역정사이기도 하고 삶의 애환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얘기하는 친구도, 듣고만 있는 친구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남의 즐거움을 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만남의 회포를 풀곤 할 수 있으니 그 얼마나 보람된 일이란 말인가. 동년의 동시대를 살아온 친구들 이겠기에 친구들 간에는 시사문제가 제기 되어도 이심전심으로 뜻을 함께할 수 있으니 그 얼마나 보람된 일이며, 설혹 가치관과 의견의 차이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묻어둘 수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래서 고향친구들의 소중함은 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고향 그리고 고향 친구들, 말만 둘어도 가슴 뿌듯함이 몰려오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생사고락을 같이할 수 있다든지, 자신의 모든 것을 사심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있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 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만큼 세상에 살면서 참된 친구를 사귀기는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그렇다. 출생과 성장배경 그리고 모든 생활 여건이 다른 가운데에서 살아온 인간이 의기투합 하여 생사를 함께할 수 있는 친구로 사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내 주위에서 나는 그런 우정을 가지고 있었던 감동어린 두 분 친구들의 우정을 볼 수 있었기에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의 내용인즉, 그 옛날 나의 직장에서 있었던 눈물겨운 사연이다. 그 당시 나의 직장은 가톨릭 계통의 대학교였기에 내 주위에는 많은 수녀님들이 계셨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가깝게 우정을 나누는 두 분의 수녀님이 계셨는데 그 두 분 수녀 중 한 수녀님이 간에 문제가 생겨서 사경을 헤매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자 친구 되시는 수녀님이 자신의 간을 편찮으신 수녀님께 이식시켜 드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런 일은 부모자식 간에서나 볼 수 있는 흔치않은 일일 터인데 수녀님께서는 친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그같이 어려운 일을 하신 것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간 이식을 받은 수녀님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시고 그만 세상을 뜨시고 말았으니, 그 얼마나 허망하고 슬픈 일인가. 그런데 다행이도 간을 이식해드린 수녀님은 지금도 건강 하시니, 그것은 하느님께서 돌보신 덕택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훈훈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그 같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냥 만나서 반갑고 즐거우며 보기만 해도 이심전심으로 마음의 교류를 할 수 있는 친구면 그것으로 만족해 할 일이다. 우리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고독과 외로움에 시달리기 마련인데, 그런 와중에 그 옛날 학창시절을 함께했던 고향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일렁이는 그 소중하기만 한 고향친구들이 오래오래 건강할 수 있기를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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