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사유시(萬事有時)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술은 반취(半醉), 꽃은 반개(半開), 복은 반복(半福) 이라고 한다. 술을 마시되 만취하면 꼴사납고, 꽃도 활짝 만개했을 때보다 반쯤 피었을 때가 더 아름답다. 사람 사는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충분한 만족이란 있기도 어렵거니와, 혹 그렇다면 인생이 위태로워진다. 옛말에 “구합(九合)은 모자라고, 십합(十合)은 넘친다” 하였다. 반 정도의 복에 만족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모자란 듯 적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라 뜻이겠지. 소욕지족(小慾知足) 적은 것으로 넉넉할 줄 알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은 없다. 성한 것은 오래가지 않고 언젠가는 쇠해진다. 그러니 꽃이 진다고 그리 서글퍼할 일도 아니다. 꽃이 빨리 진다고 더 애달파할 것도 없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히니까?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지 않는다 한들, 그 또한 무슨 대수이랴. 꽃이 필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듯이, 만사유시(萬事有時) 세상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그때는 언젠가 오고, 또 그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걸 아낀다. 왠 일까? 인사할 때 허리를 조금만 더 숙이면 더 정중해
한덕수 전 총리가 어제 1심 선고에서 징역 23년을 선고 받고 구속되었다. 그는 고령, 징역 23년징역이라면 2048년 출소, 나이는 100살이 넘는 초고령까지다. 필자 보다 1년 연하로 그나 나나 그때까지 안 죽고 살기는 할까? 2022년 4월. 윤석열 정부 국무총리로 지명되어 국회인사 청문회가 있었다. 그 때 필자는 기억나지 않는 모 언론사에 보낸 정치칼럼에서 한 총리 지명자의 재산이 80억원 대고 자식이 없다는 보도를 보면서 김&장 보수 등등 그 맗은 재산형성 과정 이야기를 하는 청문위원들의 부적격 발언을 보고 말하기를, 그 재산문제 답변으로 권하여 말하기를, 지금 재산이 문제라면 死後 가칭 <덕수교육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기부하겠다 약속하면 좋겠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살아 생전 양자를 들이지 못한다면 총리직 수행 잘 하고, 아내 최 여사와 안 보이는 <그림자천사>로 사회봉사도 열심히 하면서 총리직을 수행하다 일생 쓰고도 남는 재산은 사회에 기부하고 간다 하면 청문위원들의 심기를 풀릴 것 같고, 또 기왕 무자식이면 누구에게 주느냐에서 자식보다 <미래인재양성재단>에 주고 가면 부족해도 그림참 좋을 것이다 라는 세평
◈ 숙려단행熟廬斷行 숙려단행은 어떤 일이든 실행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해도 괜찮겠다고 결정을 내린 뒤에는 주저하지 말고 과감하게 실행하라는 뜻이다. 전거(典據)가 되는 고사(故事)는 확실치 않으나, 《송사(宋史)》의 〈하주열전(何鑄列傳)〉편에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일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말고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그 지당함을 구한 뒤에 실행하도록 하십시오(願陛下事無大小, 精思熟慮, 求其至當而行)"라는 구절이 있다. 가훈(家訓)이나 좌우명(座右銘)으로 많이 사용된다. ◈ 유모 한마당 -장님의 눈 부부가 해변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그 앞을 예쁜 아가씨가 지나갔다.남편은 지체 않고"저 아가씨 코가 참 예쁘네.당신 코와 바꾸었으면 좋겠어."조금 후 또 예쁜 아가씨가 지나가니"저 아가씨 입이 참 예쁘다.당신 입하고 바꾸었으면 좋겠다."이번에는 장님이 지나가니까기회를 놓칠세라 아내가 말하길"저 장님 눈 좀 봐요.당신 눈하고 바꾸었으면 좋겠어요." ◈ 익은말 나들이 살(이) 깊다 : 몸의 어떤 부분에 살이 많이 붙어 있어서 살이 두껍다. 예) 창에 찔렸지만 다행히도 살이 깊어 크게 다치지
◈ 자승자강(自勝者强) ‘자기를 이기는 자가 강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외적 힘이나 권력이 아닌,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다스리는 내적 강인함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는 철학적 가르침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제압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망, 분노, 게으름, 나약함 등을 이겨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노자는 인간의 참된 강함을 외부적인 승부나 지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내적인 힘에서 찾았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로운 자요(知人者智), 자기를 아는 자는 밝은 자이며(自知者明), 남을 이기는 자는 힘 있는 자요(勝人者有力),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는 강한 자다(自勝者强). 이 사상은 도가(道家) 철학의 핵심으로, 인간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기수양을 통해 진정한 성숙과 힘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노자는 남과 경쟁해서 이긴다는 것은 힘이 세다는 것이지 결코 강하다는 뜻은 아니라 했다. 내 자신과 싸워 이기는 자가 진정 강한 자다. 즉, 자신의 불신, 탐욕, 나태, 우치(愚癡)와 싸워서 이기는 자가 진정 강한 자이다. 노자께서 다투지 말라 하였다. 하늘이나 도(道)는 절대 다투지 않는다.
◈ 천로역정(天路歷程Pilgrim's Progress) 영국의 작가 버니언(Bunyan, J.)이 지은 종교적 우의소설(寓意小說). 어느 신자(信者)의 신앙 과정을 고난에 가득찬 순례 여행에 비유하여 묘사한 것으로, 제1부는 1678년에, 제2부는 1684년에 간행되었다. 선자의 인생역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한때 성서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한 그리스도교도가 파멸의 도시에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제1부(1678)는 꿈으로 나타난다. 구원에 이르기 위한 그의 몸부림이 제1부의 거의 모든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와 상반되는 속성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수하면서도 위엄 있는 성서문체로 쓰여 진 이 작품은 몇 가지 측면에서 민담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세상물정에 밝은 이(Wiseman), 신앙심이 깊은 이(Faithful), 전도유망한 젊은이(Hopeful), 고분고분한 이(Pliant), 고집이 센 이(Obstinate)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유머는 18세기의 소설을 예견하게 한다. 그리스도교도인 아내와 아들들이 그와 합류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그린 제2부(1684)는 심리적인 긴장감은 제1부만
◈수수방관袖手傍觀 소매에 손을 넣고 곁에서 보기만 한다는 뜻으로 관여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해야 할 일에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것으로,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뜻의 오불관언吾不關焉과 비슷한 말이다. 옛날에는 옷에 주머니가 거의 없었으므로 소매가 의복의 주머니 역할하였다.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가만히 있을 때나 날씨가 추운 날에는 주머니 대신에 소매에 손을 넣기도 하였다. "수수방관"은 소매에 손을 넣는다는 뜻의 수수袖手와 곁에서 바라보기만 한다는 방관傍觀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가까운 곳에서 큰 일이 일어났으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관심 없이 팔짱을 끼고 바라보기만 한다는 뜻이다. 속담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와 같은 뜻으로,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없는 태도를 보일 때 쓰인다. 해야 할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말이다. ◈ 유모 한마당 밤일과 낮일을 다 잘하는 남자와 싸우는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 그래, 니 잘 났다.” 낮일은 잘하는데 밤일을 못하는 남자와 싸우는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ld
◈ 철장석심(鐵腸石心) 굳센 의지나 지조가 있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로 일편단심을 나타내고 있다. 돌 심장과 쇠 창자라는 뜻으로 단단한 돌 같은 마음과 쇠 같은 창자처럼 지조가 굳음을 비유해서 석심철창이라고도 한다. 하다못해 말 못하는 짐승도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판국에 시시비비를 떠나 소위 조직의 리더라고 자처했던 자들의 조변석개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며 측은함을 넘어 처참해지는 작금의 시국에서 조선 세조를 향해 '나으리' 라 불렀던 만고의 충신 성삼문과 낙락장송이 떠오른다. 북풍한설에도 끄떡없는 낙락장송 소나무는 늘 푸른 모습을 띠는 것에서 굳은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사람의 됨됨이를 표현하고 있다만 우리 한민족은 소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해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은 낙락장송의 '절의가'를 읆었다. 또한 나무 중 단연 으뜸으로 흔히 송수천년(松壽千年)·송백불로(松栢不老) 장수의 상징으로 불리며, 두 개의 잎은 낙엽이 되어 떨어질 때도 서로 하나가 되어 부부애의 상징으로 비유되곤 한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생을 마감한 성삼문은 충청도 홍주 출신으로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실로 다양한데도
어느 철학자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 다음과 같다 했다.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약간 부족한 외모,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절반 밖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 이 다섯 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부족함에 있다. 옛날 주(周)의 제후국인 노(魯) 나라 환공은 의기(欹器)라는 그릇을 늘 가까이 두고 자신을 경계하였다고 한다. 공자께서도 이 그릇을 의자[座]의 오른쪽에 두고 반성의 자료로 삼았다 하여 '좌우명(座右銘)'의 유래가 된 그릇이다. 이 그릇은 텅 비면 기울어지고 가득 채우면 엎어지고 중간 정도 채우면 반듯해지는 그릇이다. 공자께서 이 의기가 의미하는 것을 다음과 같다고 했다. 총명하고 예지가 뛰어나도 스스로 어리석다 여기며 살아가고, 聰明睿智 守之以愚 공적이 온 세상을 다 덮어도 사양으로써 이를 지키고, 功被天下 守之以讓 용맹함이 세상을 뒤흔들어도 항상 겁을 내며 조심하고, 勇力振世 守之以怯 부유함이 천하에 가득해도 겸손으로서 이를 지켜라, 富有四海 守之以
기독교와 돈 흔히 기독교는 도회지에 땅과 건물이 있어 부자고 불교는 산속이라 땅 값도 싸다면서 기독교보다는 돈이 적다는데 지금 부동산이나 헌금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용되는 운영자금 측면의 돈을 말한다면 불교와 기독교 어느 쪽 돈이 얼마나 많고 적으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교회와 사찰은 개교회나 종단소속 개별 사찰 암자에 따라 각각 연간 예산금액규모의 차이는 대단하다고 본다. 큰 교회와 개척교회는 열배 백 배 차이가 날 것이고 종단 교구와 암자와의 예산액 규모도 그럴 것이다. 갓 개척한 미자립 교회는 담임목사 사례비도 상(노)회나 큰 교회의 지원이 없으면 못 줄 정도로 어렵지만 대형교회는 돈에 묻히다시피 큰돈이 헌금으로 들어오는데 이게 성직자 갑근세도 면제되어 세금도 안 낸다는 뉴스도 보게 되는 등등. 작가는 지금 교회예산에서 출산지원금 지출항목을 신설해 기업들도 하고 개인도 많이 하는 출산장려금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쓰고 있다. 일률적 자를 수는 없다. 예산이 많은 큰 교회는 목회자가 많고 운영비도 많고 기관도 여럿이라 기관마다 예산을 나눠줘야 성가대도 운영되는 등 교회 지출항목 역시 국가 예산처럼 복잡하여 돈이 펑펑 남아돌지 않는다. 이때 알아
소득과 불교 작가가 좋아하는 스님은 법륜 스님이다. 한 번은 워싱턴광장을 거닐던 중 한문으로 법륜(法輪)이라 써 세운 배너를 보고 아~ 내가 좋아하는 법륜스님을 여기서 보겠구나 하고 가보니 그때 광장에서 본 법륜은 그 법륜이 아니고 중국불제자인 다른 법륜이 광장에서 불교 가르침을 전하는 것에 실망한 일이 있다. 정토회(종) 법륜 스님은 즉문즉답으로 유튜브 조회수가 100만 명이 넘은 영상도 있다. 유튜브로 보는 즉문즉답 몇 편인지는 모르지만 편편 백만 십만대의 조회수를 보면서 저 정도면 구글에서 돈을 얼마나 많이 주는지, 검색할 일이 아니라 말았지만, 국내 목사님들의 설교 조회수는 어림없는 숫자라는 생각만 했다. 작가는 한때 법륜스님 즉문즉답 열팬이었다. 우선 차분하면서도 질문에 막힘이 없는 즉답은 말의 천재수준 그 이상이라 부럽기도 했다. 그러던 작가가 요즘은 잘 보지 않는데 식상한 건 아니고 작가가 믿는 기독교와 충돌하는 답변을 여러 번 듣다보니 이제는 무어라 할지 이미 즉답 내용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법륜스님에게 질문하는 내용들은 우리들 누구라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기독교에서 상담학이나 상담심리학과 비슷하여 질문자체가 직설적이고 누구나 물어볼만한 일
제3자가 보는 돈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이 났다더냐~?” 이런 유행가는 돈이 사람보다 높지 않고 사람이 더 귀하고 높다는 말인데도 국민들은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여 사람 위에 돈, 돈 아래 사람으로 보는, 지금은 돈이 정이고 사랑이고 부부고 부모이자 남편 아내보다 앞자리로 보여 이게 못 고칠 병이 되어 크게 우려하며 쓴다. 돈... 돈이 곧 출산이라 하기도 한다. 벌어야 살고 벌어야 결혼도 한다. 다 맞는 말로 들리지만 진실은 바로 이게 잘 못 아는 것이다. 결혼은 돈끼리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끼리 하는 것이다. 물론 월급을 많이 타는 사람이면 결혼이 쉽기는 하다. 그러나 돈 없어도 결혼 한 사람이 있고 돈이 있어도 결혼을 못하거나 안 한 사람도 있어 뭐든 돈과 연결시키면 될 일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돈이란 무엇일까. 돈이란 버는 돈과 쓰는 돈으로 수입 돈 지출 돈이다. 많이 들어와도 쓰는 돈이 더 많으면 부족한 게 돈이고, 적게 들어와도 쓰는 돈이 더 적으면 남기도 하여 돈이란 균형이다. 이건 국가도 마찬가지다. 가령 연간 세입예산은 650조 원인데 연간 쓰려고 세운 세출(지출)예산은 700조 원이라면 적
당사자 입장 결혼문제에 ‘쟨 아무 생각도 없는 녀석’인 줄 잘못 알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 자식이다. 아직 혼전이지만 땀땀 떠보기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 이상으로 초미의 관심이 갖는 것이 자기 자신의 결혼문제다. 다만 애를 태우지만 않을 뿐이다. 그게 보기 싫을 것 뻔하니까 침묵이다. 여기에도 돈이 내비게이션이다. 사귀어질 듯한 이성이 있기는 있는데 전화를 하려해도 주머니가 비었다. 만나서 커피나 한잔하자 하고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고 돌아가자? 이게 꿀꿀한 것이 돈이 필요하다. 정부는 요란하게 저출산 인구감소를 외치지만 그림의 떡이다. 집을 산 사람에게 대출을 해 준다는 식, 결혼에 앞서는 연애도 못하는 중이니까. 지원금 종류가 많지만 데이트자금지원금은 없다. 그런다고 데이트비 월 50만원 지원 어떠냐고 한다면 엉덩이 터질 말이고 웃기는 소리로들 듣는다. 작가는 이 대목도 연구 과제라고 본다. 혼기 나이 또래 남녀는 지금 이런 잔돈푼이 신경을 거스른다. 만나자!, 차 하자~, 밥 먹자, 어디가자, 전부 돈이다. 큰돈은 아니지만 인생이 평생 하는 돈 적정은 대개가 자잠바리 잔돈푼 들이다. 이처럼 출산과 양육 소득에는 그에 앞서는 이성
출산-양육(조건) 소득문제 드러난 현상 반려견이 1000만을 넘어 1300만 시대라 한다. 그대로 인구와 출산에 접목하면 대한민국 인구는 5000만이 아니라 반려견까지 먹는 인구는 6300만이 사는 나라와 같다고 보이기도 한다. 오래 전 작가는 세종인성학당 말하기 교육에서 연합뉴스가 보도한 남한의 개 한마리가 먹는 돈과 북한 어린이가 먹는 돈을 비교해 보니 1년 간 한국 애완견 한 마리는 북한 어린이 24명이 1년 먹는 돈과 같다는 뉴스를 읽히며 말하기 교육을 시켜 지금도 유튜브에 찾으면 어딘가 있다. 고급차에 애완견이 앉아 있는 것을 자주 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자들이 좋아서 개 고양이를 아빠다 엄마다 하면서 정성을 다해 기르는 것을 보면 절반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독신 가정이 더 많다고 보인다. 도대체 강아지 한 마리를 기르는데 쓰는 돈은 얼마나 될까? 돈이 썩어나가 개를 기르는 것은 아닐 것이고 분명하다 싶은 것은 그런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은 정 때문일 것이다. 그런 집의 대부분은 비혼 미혼 출산포기 가정이 상당하다고 보여 여기서 잠깐... 사람이 사는 집은 사람을 낳고 사람을 키우는 곳이지 개를 사들여 개를 키우라는 공간은 아니라는 사실, 이건 잔소
발제/ 돈 병든 세상 온통 돈병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낳고 기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낳으면 어떻게 기를 것이며, 과연 짝짓기까지는 돈이 또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고 하는 현실 문제 말이다. 발제문도 길 것 같아 줄여야겠다. 만만치 않아 광범위한 문제여서다. 이제 결혼은 했다고 쳐보자. 출산은 임신부터다. 임신을 할까 말까의 문제부터다. 임신...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싫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결혼이 어려운 거지 그에 대면 임신은 쉬워 곧 임신 아니면 임신이 안 되는 경우 둘 중 하나다. 전자는 50%는 넘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럼 임신은 누가 하게 하는 걸까.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정확한 표현은 내가 ‘된’것이지 ‘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삼신 할머니가 점지해 준다는 게 우리민족의 믿음이었으나 임신하게끔 태어난 창조의 법칙이라 저절로, 또는 자연히, 당연히, 결혼했으니까, 둘이 동침했으니까... 이렇게들 말하며 더 이상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고 젖쳐 두는데 진실은 신(神)만이 아는 일이다. 작가의 주장은 단순하다. 임신은 내가 하지만 임신하도록 창조한 태초 그때 창조자
작가의 분석결론 고난은 고생이라는 방패로만 이긴다~~하고, 먼저 이번 논설은 독자를 화나게 할까 걱정이라는 말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쓴 소리가 약이라는 말도 있으니 과하다 싶으면 스쳐 읽고 마음에 담지 않아도 좋다는 말도 한다. 작가는 해방 3년 후 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 생 77살이라 어려서 보고 듣고 배운 거라고는 고생이 성장의 밑천이라는 구세대 사람, 요즘 엄마나 아빠 손자손녀들에게는 맞지 않는 꼰대 같은 글 일지도 모르겠기 때문에 걱정이기는 하다. 출생 2년 만에 한국전쟁이 났다. 기억은 4~5살 되던 해, 북한 인민군과의 전투에서 총알이 많이 쏟아진 산에서 탄알과 탄피를 주어와 화롯불로 탄알에 남은 납에 열을 가해 철사를 꽂아 굳으면 고리에 꿰어 장난감으로 놀던 것이 한국전쟁 희미한 기억이고, 다음은 전후 폐허가 된 농지를 새로 일궈 짓는 농산물을 몰래몰래 훔쳐 먹는 콩설이 밀설이 참외설이 오이설이 등, ‘설이’란 도둑질로 보릿고개 때 아동기를 보낸 터라 가장 행복한 것은 배부르게 먹는 것 이상의 관심은 없었다. 굶주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이 구시대 사람이라 보고 들은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는 점 인정하고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