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을 잘하려는 의욕이 지나치면 오히려 더 큰 폐단을 낳을 수 있다. 복잡한 사회 구조를 충분히 살피지 않은 채 눈앞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들면, 문제를 지탱해 온 기반까지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의 명분이 옳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저절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식산업이 그렇다. 지식은 연구와 창작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출판과 유통을 거쳐 독자에게 전달될 때 비로소 사회적 자산이 된다. 생산·유통·소비가 연결돼야 지식의 재생산도 가능하다.
얼마 전 출판사를 운영하는 후배를 만났다. 좋은 원고를 확보하고도 출판을 망설일 만큼 경영 여건이 어렵다고 했다. 제작비와 인건비는 오르고 유통·배송비 부담도 커졌다는 것이다. 300쪽 안팎의 책 1,000부를 제작해도 손익을 맞추기 어렵고, 인문·사회과학 전문서는 수백 부를 판매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분야까지 시장 논리만으로 판단한다면 사회의 지식 생태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출판 지원도 모든 출판사를 세금으로 연명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충분히 보상받기 어려운 학술서와 지역문화 자료, 기초연구 성과를 사회적 자산으로 보존하자는 데 의미가 있다.
산업은 개별 기업의 집합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유통망, 위험을 부담하는 중간 사업자, 오랜 거래에서 쌓인 관행과 신뢰가 함께 작동한다. 겉으로 드러난 비용이나 가격만 보고 어느 한 부분을 잘라내면 전체 구조에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줄 수 있다.
나무도 그렇다. 뿌리와 줄기가 골격이라고 해서 잎과 꽃, 열매를 지엽적인 것으로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잎은 생명을 유지하고 꽃은 번식을 준비하며 열매는 다음 세대를 잇는다. 지엽은 근본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요소다.
농업정책도 마찬가지다. 농지 투기를 막고 생산 기반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투기 억제를 이유로 농지의 취득·이용·임대·매매를 지나치게 일률적으로 통제한다면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어떤 부담이 돌아가는지 따져봐야 한다.
농업은 땅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종자와 비료, 농기계와 노동력, 저장·운송·유통이 서로 연결돼 있다. 투기를 막는 정책이 정상적인 농지 거래와 임대, 영농 규모 조정까지 위축시킨다면 정책의 목표와 수단이 어긋날 수 있다.
대학 행정을 맡았을 때의 경험도 떠오른다. 교내 식당 부식 납품을 살펴보니 여러 업체가 경쟁하는 것처럼 보여도 기존 거래관계와 정보의 비대칭, 가격 조율이 작동하면 형식적인 입찰만으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시장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개입 이후의 구조를 제대로 감독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교통정책이나 신산업 보급, 태양광 사업도 같은 원칙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정 정책 때문에 특정 산업이나 수입품의 수요가 늘었다고 주장하려면 실제 수입 통계와 계약·조달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태양광 사업 역시 설치 규모만 볼 것이 아니라 설치비와 유지관리비, 발전량, 사업자 선정과 계약 방식, 사업 종료 뒤의 관리 책임까지 따져야 한다.
자료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기업이나 정부의 비리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책으로 만들어진 시장에서 누가 공급 기회를 얻는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 계약과 입찰이 공정했는지 묻는 것은 의혹 제기가 아니라 공공행정의 기본적인 검증 절차다.
개혁과 혁신은 필요하다. 낡은 제도와 관행이 부패와 독점의 온상이 됐다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개혁의 대상이 잘못됐다는 사실과 개혁의 방법이 정당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독점을 없애려다 새로운 독점을 만들고, 효율성을 높이려다 관리비용을 키우며, 투기를 막으려다 정상적인 거래까지 위축시킬 수도 있다.
더구나 5년 임기의 정부가 모든 문제를 임기 안에 해결하려 한다면 정책의 속도가 검증과 숙의를 앞지를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의 기본 구조를 크게 흔들면 기업과 국민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국가 운영은 거대한 실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혁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바꾸었느냐로만 평가할 수 없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켰는가, 그리고 그 변화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나무의 뿌리와 줄기만 남기고 가지와 잎을 잘라낸다고 해서 더 건강한 나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작은 사업자와 중간 유통망, 지역 공동체와 오랜 거래관계 같은 ‘지엽’이 때로는 국가경제의 근본을 지탱한다.
개혁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기술이 아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면서도 사회가 작동하는 기반을 지키는 지혜다. 진정한 개혁은 많이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은 바꾸되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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