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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본이 자랑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누구인가?

일본 나고야 시에서는 지난 9월 19일에 개막한 제20회 여름 아시아경기대회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주최 측이 제작해서 상영한 개막식 홍보영상에 임진왜란의 주장(主將) 풍신수길(豐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98)이 일본을 빛낸 위인으로 소개되었다.

 

일본에는, 일본 한 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 공헌한 훌륭한 지도자, 학자, 종교인이 부지기수인데, 그들을 제쳐놓고, 하필이면 평화로운 조선 땅에 침공해서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온갖 만행을 다 저지른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전범급 인물을 자랑스럽게 내세운 저의가 의심스럽다.

 

“조선인들, 잘난척하고 으스대면 또 이렇게 될 수 있어.”하는 경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그렇다면 과연 올림픽 같은 신성한 경기장에서 일본이 자랑한 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떤 인물이며 무엇을 남기고 죽었는지, 역사적 사실을 찾아내어 동시대에 공유할 필요를 느꼈다.

 

도요토미는 일본의 무장으로서 592년(선조 25년) 임진년에 조선을 침공해서 1598년(선조 31년) 까지 마음껏 한반도를 짓밟고 전쟁과는 상관 없는 평민을 무차별 학살한 인물이다. 그는 1537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남다른 지략으로 권력을 잡고 막부(幕府)를 통합해서 일본을 통일한 인물이다.

 

조선은 그의 침공으로 시작된 7년 동안의 전쟁으로 경복궁과 창덕궁이 소실되고, 100만 명이 넘는 병사와 민간인이 죽었으며, 경작지의 2/3 이상이 초토화되는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오랜 전쟁으로 일본 역시 국력이 쇠하고, 결정적으로는 도요토미의 수군이 1598년 12월에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과의 결전에서 완패하고 그는 패장이 되었다.

 

그는 전쟁에 지고서도, 전쟁 중에 그의 부하들이 조선에서 학살한 조선인의 코와 귀를 소금에 절여서 수레에 싣고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승전을 자축하다가 노량 해전에서 참패한 1598년에 62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그의 사후에는, 임진왜란 중에 몸을 낮추고 조용히 때를 기다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여러 막부를 장악하고 권력을 잡아서 소위 “에도시대(江戶時代, 603-1868)”를 열었다. 도쿠가와는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도요토미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 당일에 시신을 매장해 버렸다.

 

그뿐 아니라, 조선과의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도요토미의 무덤까지 파헤쳐버렸다.

 

도요토미는 죽기 전에 심복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에게 아들 히데요리(豊臣秀頼)의 후사를 부탁했으나, 그는 1615년에 오사카성에서 도쿠가와 가문의 습격을 받아 어머니와 함께 자결을 강요받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죽었으며, 작은아들 구니마쓰는 가신들과 함께 도주하다가 잡혀서 효수당했고, 그의 딸은 승려가 되었으나 30세에 요절했다.

 

이로써 도요토미 가문은 대가 끊어지고 말았다.

 

도요토미가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東山 區)에는 그를 기념하는 도요쿠니신사(豊國神社)가 있고, 건너편에는 왜란 중에 그가 죽인 조선인의 코와 귀를 묻은 귀무덤(耳塚)이 있다. ‘귀무덤’이라 하지만 그 무덤에는 귀가 아닌 목이 잘린 조선인의 머리와 귀가 묻혀 있다.

 

도요토미는 조선에서 전쟁 중인 왜군에게 조선 백성을 보는 대로 죽여서 그 수급(首級)을 모아오라고 명령했는데, 머리가 크고 무거워서 운송이 어려워지자 코를 베어오게 했다.

 

일본군 장수들이 코를 베어 일본에 보내면 도요토미는 일일이 그 숫자를 세어서 ‘코 접수 영수증’을 발급하고, 코를 모아 보낸 장수들에게는 직접 손 편지를 써 보내며 격려했다. 도요토미는 코를 소금에 절여 수레에 싣고 온 나라를 순회하면서 죽을 때까지 승리를 자축했다고 한다. 죄 없이 희생당한 조선인의 원한이 두렵지도 않은가?

 

‘귀무덤’에는 원래 ‘코무덤’이라는 비목이 세워져 있었으나 도쿠가와 초기의 유학자 하야시라 산(林羅山)이, 명칭이 너무 야만스럽다며 '귀무덤'이라고 비명을 바꾼 이후로 지금까지 귀무덤으로 불린다.

 

현재 교토시가 세운 관광 안내 팻말에는 '귀무덤'이라 쓰고 괄호 안에 '코무덤'을 덧붙여 놓았다. 이 무덤에는 자그마치 조선인 12만 6천 명의 수급과 코가 묻혀 있다. 일본의 잔혹성이 한눈에 보이는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이다.

 

일본이 이번 아시아올림픽에서 자랑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런 인물이었다.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무엇을 보이려고 그를 자랑하는가? 자랑할수록 부끄러운 그 역사를 말이다. 화합과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에서만이라도 수치와 자랑쯤은 구분해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