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를 설립한 분은 이병철 회장으로서 사돈기업 금성사(현 엘지전자)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원에 43만평 대지를 구입하고 1969년 1월 13일 삼성전자를 설립했다.
1983년에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삼성전자는 10년만에 세계1위 반도체 회사로 성공하며 세계 톱수준의 전자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며 일본에서 초등학교와 대학교(와세다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이건희 회장의 꿈은 삼성전자 제품의 일본시장 진출이었다.
1991년경 이건희 회장은 소니와 마쓰시다, 미쓰비시 등 세계적인 회사들이 일본 가전시장은 물론 전세계 전자제품시장을 휩쓸던 시점에 해외사업담당 사장을 회장실로 호출하여 이제는 삼성전자도 세계적인 전자회사 반열에 올라섰으니 삼성전자가 직접 개발하고 생산한 전자제품에 대해 일본시장 개척을 하라고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임원은 고민 끝에 일본 주재원을 지내 일본통으로 알려진 해외영업담당 P부장을 직접 집무실로 호출하여 "자네가 일본시장을 개척해 보라"고 적극적으로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P부장은 현재로서는 일본시장 진출은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듯 불가능하다고 반문하였으나, 수차례 불러서 자네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총괄임원이 읍소하자 마지못해 지시를 운명적으로 받아 들였다.
왜냐하면 불가능을 가능토록 만드는 것이 삼성전자맨의 기본 소명으로 이를 거부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아 조직에서 퇴출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P부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본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긍정적인 판단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P부장은 한가지 조건을 내 걸고 1년 동안 실적이 제로가 나와도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말라는 약속을 받고서야 일본 시장 개척업무에 나섰다. 하지만 그당시 아무도 일본시장개척 업무에 도움을 주지 않았으나 P부장은 수차례 서러움과 실패을 거듭하면서도 끈기 있게 본인이 세운 전략을 정면 돌파로 뚫고 나갔고, 마침내 10여 개월의 천신만고 끝에 계약을 성공시킨다.
이런 고난속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일본의 대기업 M사로부터 삼성전자가 제공한 제품의 샘플테스트가 통과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달받은 P부장은 지난 10여 개월간 사즉생의 각오로 일본 전자시장 개척에 전력을 다한 결과가 마침내 좋은 결과로 수출의 첫단추를 열었다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본인이 믿는 종교인 대한예수교 명성교회 소속 안수집사로서 교회강단 앞에 업드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그주에 열린 주일예배에 참석해서 감사의 보답으로 푸짐한 감사헌금도 드리고 마무리도 잘 되게 해 달라고 다시한번 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또한 샘플테스트를 통과시킨 일본 구매 책임자와 품질관리 책임자에 대한 개인 성품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P부장은 그들의 선호에 맞는 선물을 구매하고져 삼성계열사인 신세계백화점에 가서 고급티셔츠와 넥타이를 골라서 예쁘게 포장도 한다.
준비를 마친 P부장이 일본 M사와 약속한 날짜에 출장 가기 전날 해외총괄임원에게 보고를 하고 출장길에 오를 때 총괄임원이 지시하신 말씀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적자가 나더라도 회장님 지시 사항이므로 반드시 수출계약을 성사시키고 오라고 한마디했다.
다음날 일본 동경행 비행기에 탑승할 시기에 우기인 여름 대한민국 수도 서울도 비가 억수로 내려서 비행기가 이륙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의문이 들었으나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일본 동경행 대한항공 비행기는 어려운 조건속에도 불구하고도 마침내 장대 빗속을 뚫고 항공기가 이륙하여 일본 동경 하네다 공항에 착륙시까지 비가 억수로 세차게 내렸음에도 노련한 기장은 무사히 항공기를 하네다 공항에 착륙을 시켰다.
당시 탑승한 승객들은 무사하게 안전한 착륙을 성공시킨 항공기 기장에게 보답의 박수소리를 크게 치게 되었고 기장도 항공기 내 방송으로 감사의 목소리로 멘트하였다.
그날 일본 동경의 예약된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객실에 들어갔지만 빗소리는 밤새도록 호텔 창문을 심하게 때리면서 그치질 않자 새벽일찍 선잠에서 깨어난 P부장은 객실내 설치된 TV로 날씨 관련 긴급 뉴스를 들으니 동경시에 100여 년만에 하루밤 500미리 비가 내려서 배수시설이 세계적으로 완벽한 일본도 지하철에 플렛폼까지 물에 잠기고 일반 대중교통도 거의 마비된 상황이었다.
일본기업체로 첫 수출 계약을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 한 시간 이상 일본 호텔을 나선 P부장은 비가 억수로 내려서 호텔앞까지 물이 들어와 우산이 필요 없을 정도로 P부장의 몸이 흠뻑 비를 맞고 서 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택시를 세우고 M사로 가자고 하니 교통상황이 지옥 같아서 갈수가 없다는 거부 의사만 수차례 들어야만 하였다.
여러 번 택시로부터 거절을 당한 끝에 운 좋게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운전기사에게 삼성전자 명함을 보여주며 택시비는 따블로 드릴 수 있으니 오늘 제가 못가면 수출계약이 실패되므로 제발 가 달라고 통사정을 하니 운전기사분은 과거 자신이 M사에서 근무하다 퇴직을 하고 택시기사로 일한다고 하면서 약속시간이 지체되더라도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빨리 승차하라고 한다.
교통지리를 잘 아시는 운전기사는 다행으로 100키로를 돌고 돌아가면서도 M사로 운전하던 도로의 길이 막히면 당시 통신기술인 TRS(Trank Radio System)가 택시마다 장착돼서인지 택시기사들끼리 무선통신을 교신하면서 상호간에 도움을 주어서 길이 끊기고 도로가 차단되어도 우회도로로 돌아서 마침내 M사에 도착했다.
M사 경비실에서는 경비원이 P부장을 쳐다보면서 어떻게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동경에서 100여키로 떨어진 이곳까지 왔냐고 하면서 사내전화로 구매부 부장하고 통화하고 허락이 떨어졌는지 미팅사무실까지 직접 안내를 해 주었다.
하지만 당시 P부장의 옷은 물에 빠졌다가 나온 생쥐같이 모습으로 옴몸이 흠뻑 젔어있었다.
그리고 P부장은 최초 구두 약속대로 택시요금을 두배로 지불하려고 하니 운전기사분은 계측기에 나운 요금만 계산하는게 일본택시의 기본이라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계약성사를 기원한다고 화답을 했다.
눈치가 빠른 P부장은 택시기사 성명, 전화번호, 회사명을 재빠르게 메모하고 수출이 성사되면 동경에서 식사나 같이 하자고 약속했다.
M사 구매부에서 P부장은 구매계약을 하는 단계에서도 대만제 가격에 맞추라는 구매부장을 설득시키고 일본제품과 대만제시 견적서의 중간 가격으로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최초의 일본 수출계약을 성공시킨다.
-공학박사,카이스트자문위원,전 삼성전자근무(일본,미국주재원),태평양대표이사,국회초빙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포럼 발표자 및 좌장, 중소기업 컨설턴트, 천지일보, 경남매일, 새한일보 주필 및 논설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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