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례식

 

내 죽은 후에는 아무도 눈물 보이지 말라
나는 현숙한 아내와 총명한 아이들과
착한 제자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거니.
변화무쌍한 자연의 신비를 마음껏 즐겼고
좋은 벗들과 두터운 교분도 가졌으며
학문과 실천의 즐거움도 누렸도다.
문학은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었고
철학은 삶의 의미를 궁구하게 했으며
신학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였다

행여, 내 죽은 몸을 씻기거나
수의를 입히지 말고
교회로 가져가지도 말라
쓸만한 장기가 남았거든
필요한 사람에게 주게 하고
나머지는 불태워 수목장을 해주기 바라노라
내 무덤으로 인해 나무 한 뿌리
풀 한 포기도 다치기 원치 않노라

나의 장례식에는 슬픈 찬송 대신
기쁜 노래를 부르고
내 시 몇 편을 읽어주기 바라노라
설교는 짧게 하고 약력은 내가 남긴 것을 
각자 읽어보는 것으로 끝내고, 대신
나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를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말하게 해다오

늦게 만난 참 벗들과의 아쉬운 교제는
오는 세상으로 미루고, 게을러
이루지 못한 학문은 후학들이 이으리라
다만, 사욕을 버리고 약한 자의 편에
서라는 말 하나 남기고 싶을 뿐
내 장례식은 잔치처럼 치러주기 바란다
나는 행복하게 산 사람이므로

 

『찬물에 대하여』 도한호 시집 中 

 

▲ 도한호 침례신학대학교 총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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