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행복한 이별

어린이라고 하기엔 아직 어리고, 애기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서진이(4살)와 윤진이(3살).

지난 3년간 서진이와 윤진이는 우리 부부의 희망이고 기다림의 전부였다. 서진이와 윤진이는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서 서로 마주보며 사는 이웃이다. 이들은 매일 아침마다 어린이집을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면, 엄마와 함께 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 재조잘거리며 우리 부부 나오기를 기다린다. 우리 부부는 밖에서 이들 자매의 목소리가들릴 양이면 서로를 불러가지고 현관문을 열고 이들과 웃음으로 인사를 나눈다.

“서진아, 윤진아 안녕!”

언니 서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아내의 품에 안기고, 윤진이는 처음엔 쑥스러워 외면을 하더니 날이 가고 정이 들고부터는 저도 달려와 안긴다. 그러는 동안 승강기는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들의 행복한 정 나눔을 기다려준다.

서진이와 윤진이가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은 우리부부에게 빨리 나오라고 보내는 신호인 것이다. 이들은 품에 안겨 있을 때라야 더욱 예쁘게 보인다. 갓 나온듯한 윗니가 보얗고 부드럽게 보여서 예쁘고, 이들 눈동자에 우리 부부의 모습이 비취고, 우리 부부의 눈동자엔 이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이 비취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며 서로 웃는 모습이 예쁘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승강기를 기다리는 불과 몇 초 동안의 즐거움  때문에 온종일 행복감에 젖어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내가 사는 아파트 앞집에 신혼부부가 입주해 왔다. 모두 표정들이 밝았다. 아내는 청주 시립합창단 단원이라 했고, 남편은 회사원이라 했다. 처음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 서로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났을까 했는데 현관문에

“아기가 있어요, 초인종 누르지 마시고 노크해 주세요”라는 메모가 붙어있는 게 아닌가!

반가웠다. 오랜만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는 반가움에서였고, 신생아 출산 절벽 시대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신이 내린 축복인 것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문에 붙인 쪽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서울 성북구(구청장 김영배)에서는 지난해부터 신혼부부와 출생신고 부모들에게 혼인·출생 축하카드를 만들어 구청장이 직접

‘새 생명의 탄생은 가족에게 소중한 큰 축복이고 우리 성북의 밝은 미래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첫 걸음을 내딛는 두 분의 앞날에 큰 축복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드리며 함께 행복한 동행(同幸)의 발걸음이 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라는 문구를 써서 전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모두가 축하하는 새 생명의 탄생이 바로 우리집 앞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그 신비의 새 생명을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둘째 윤진이가 태어난 것이다. 우리 내외가 첫 대면을 하게 된 것은 이 새싹들이 어린이집엘 가기 위해 승강기를 탔을 때였다. 쌍둥이처럼 너무나 꼭 닮았다. 서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고, 윤진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서 우리 내외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로부터 행복하게 기다리는 세월이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이 행복이 언제나 계속 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2018년 4월 4일

엄마가 서진이와 윤진이를 데리고 우리집엘 찾아왔다. 예감이 불길했지만 반가이 맞았다. 떠난다는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내일 떠난다고. 생각지도 못한 이별이 온 것이다. 두 귀염둥이의 모습이 갑자기 클로즈업 되었다. 이들이야 헤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내일부터는 우리 두 부부의 모습을 못 보게 된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해맑게 웃으며 우리의 품에 안겼다. 이별의 슬픔이 이렇게 클 수가 없다. 이 두 귀염둥이들은 스스럼없이 우리 부부의 품에 안겼다.

이들과의 이별은 어쩌면 행복한 이별일 것이다. 희망이 있는 이별이기 때문이고, 이들이 어려서부터 좋은 이웃에 대한 첫정을 가지고 헤어지는 이별이기 때문이다. 서진이와 윤진이는 우리 늙은 부부에게 새순 같은 귀여운 사랑을 안겨주었고 우리 부부는 이들에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따뜻한 이웃으로의 사랑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했다. 이들이 떠나고 나면 언제 만날지 기약이 없는 것이고 몇 년 지난 후에는 거리에서 우연히 스쳐도 알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쉬움을 글로 남겨 영원을 약속했다.

서진아, 윤진아 안녕!

아침마다 보며 웃어주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야.

우리 이렇게 헤어지면 언제 만날지 모르거든.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너희들이 장성했을 때의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남겨주려 해. 몇 년 후 이 글이 담긴 책자를 엄마로부터 받게 될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려 보렴.

우리 서진이와 윤진이도 조금 더 크면 인공 지능을 가진 알파고에 대하여 알게 될 거야.

알파고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인데 요즘은 인공지능도 더 발달해서 배우고 익힌 것을 스스로 학습해 판단도 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단다. 앞으로는 사람들이 두뇌를 써서 해야 할 모든 일들을 이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하게 돼 있거든. 자동차 운전, 기차 운전, 의사, 재판관, 경찰, 대학교수, 선생님 등. 그래서 우리 선진이ㅘ 윤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갖게 되는 20여 년 후에는 현재 있던 직업의 60%이상이 없어지게 돼 있어.

그런데 말이야, 인공지능 로봇에는 우리 서진이와 윤진이가 가지고 있는 해맑은 웃음과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안겨 웃어주던 사랑스런 마음은 갖고 있질 않거든. 우리 귀염둥이들이 갖고 있는 이 사랑스런 마음, 이것은 인문학을 통해서만이 가질 수 있는 거야. 로봇이 할 수 없는 따뜻한 사랑 나눔. 우리 서진이와 윤진이는 이 마음을 변치 말고 갖고 있으면 해. 사실 너희들이 아침마다 보여줬던 이 사랑스런 웃음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모를 거야. 앞으로 20여 년이 지난 뒤에는 이 사랑스런 마음과 관계된 직업들이 많이 나올 거야.

서진아, 윤진아! 

앞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오게 될 거야. 지금은 엄마 아빠가 모두 해결해 주지만 앞으론 우리 서진이와 윤진이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해결하는 일들이 생길 수도 있거든. 그때 그것을 피하려 하지 말고 내 앞에 놓여 있는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며 살아가도록 해.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나거나 힘든 일 생기면 전화 해. 달려갈게.

010-ooo-oooo 할아버지 전화번호야. 이 번호 안 바꾸고 계속 사용할 테니 전화해. 

서진아 윤진아 안녕. 잘 있어.

▲ 할머나 품에 안긴 서진이와 필자의 무릎에 앉은 윤진이.

2018년 4월 5일.

서진이와 윤진이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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