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광노 / 본사고문, 세종인성학당장

자연의 하모니는 새소리 바람소리 비소리가 어우러진 교향악에 비유된다. 참새는 짹짹하고 까치는 깍깍하지만 호랑이는 으르렁하는데 그런다고 호랑이가 참새를 욕하면 옳지 않다.
‘비사이로세종일보’ 창간에 따라 걸맞는 나이도 아닌데 세종시청과 세종교육청 등 인사차 방문하였다. 70대가 세종일보 고문이라는 소개에 친절히 맞아는 주지만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했어도, 그래도 우리 신문사가 잘 되고 세종시민에게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어 드리는 일이라는 생각에 개의치 않고 소통담당자들을 만나면서, 들고간 창간호가 누구를 위한 건가 라든가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던 중 의당 나올법한 주제가 화두로 떠 오른 적도 있었다.

직설하면 신문사가 어째서 그런 칼럼을 싣느냐는 노골적인 질문도 받았다. 쉽게 우편향 좌편향 칼럼과 논설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알자. 신문은 시장이나 시청을 위해 만들지 않고 교육청을 감싸고 편들기 위해 만들지 않는다는 말부터 앞세우고, 거꾸로 꼴타리나 잡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 하면서 말을 이어간다. 신문은 오로지 세종시민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유익을 도모하는 사명을 위해 제작된다는 뜻이다.
신문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즉 신문은 더 살기 좋은 세종시와 대한민국을 위해 창간하고 제작된단 뜻이다.  즉, 우리네 아들딸 손자손녀들이 살기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신문이 해야 할 역할을 위해 만든단 뜻이다.

문제는 생각들이 다른 것이다. 가령 동서남북 각 방향에서 어떤 정책 어떤 사고 어떤 주장 어떤 칼럼과 논설을 쓰고 사설을 쓰느냐는 것에서 딱 자를 정답이 없다는 것이 어려운 문제고, 어려워도 이게 곧 신문이 안고 갈 문제라고 하는 것이 더더욱 어려운 문제다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를 신문사 사장이나 편집국장이 자로 재고 가를 수 없는 것이다. 이게 아니라 저것이라는 독자가 실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정교과서를 적극 지지하는 주장이 있고 절대 반대하는 주장이 있다.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민심이 있고 탄핵을 반대하는 맞불집회가 있다.

둘이 양립해 싸운다면 신문이 50대50으로 재단 반반으로 자를 수도 없고 2대8로 누르고 추겨줄 수도 없으니 신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사실대로 알리면서 “외부필진의 원고는 본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라고 하는 당연한 가이드자세다.

시장이나 의장 교육감 등 선출직 공직자의 말이나 정책을 인격적으로 예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의 칼럼이거나, 과도하게 비하한다고 보이는 칼럼이거나, 신문사는 양쪽 두 사람의 주장을 다 실어야 언론일 뿐 그게 신문사의 철학이나 이념은 아니다.

본지 고문으로서 창간 3호를 맞아 확실하게 할 말은 김씨는 김씨의 주장을 하고 박씨는 박씨의 말을 하면 그게 모두 신문에 올릴 칼럼도 되고 기사도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보나 기관지지 그것은 신문이 아니다.

이에 내 생각과 다르다 분개하고 배척하면 도량이 적다. 꾀꼬리는 꾀꼴하고 돼지는 꿀꿀하는 건데 돼지의 꿀꿀도 노래로 들어주어야 한다. 신문사의 공식 메시지나 철학은 사설 뿐, 보도는 개나 걸이나 다 있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실으면 독자가 판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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