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칼럼이다 보니 오늘은 좀 생뚱한 주제를 펴려 한다. 하나님이 동물에게는 주지 않고 오직 인간에게만 준 특별한 선물 중에 선물은 섹스의 상시행위다.
동물의 교미는 발정이 날 때만 하는 행위인데 비해 인간은 임신이 될 날만 하지 않아, 동물은 때가 돼야 하는데 비해 인간은 상시적 섹스가 가능해 그때만 짝(부부)이 되지 않고 일생 한 몸으로 살 근거가 되어 행위가 확연하게 다른 특별한 예라 할 수있다.
이상하다. 동물은 그때를 어떻게 알까. 시각, 청각, 후각을 통하여? 글쎄다, 그러나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발정기에만 아무하고나 짝을 짓는다.
만일 인간에게도 이 같은 동물의 법칙이 적용된다면 부부는 백년해로하는데 심한 방해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늘 부부라는 것을 확실하게 새기는 섹스가 가능하여 폐경 되기까지는 자유롭고 폐경 후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묘한 이치를 생각해 보면, 만약에 말인데 부부관계가 비정기적이지 않다면 부부로 해로하는데 상당히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심하게 싸운 다음에도 섹스를 하므로서 화가 풀려 부부싸움 칼로 물베기가 되게끔 삭아버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침을 맞는다.
이렇게 독특한 성본능이 없는 동물을 생각해 보면 응당 가정은 망가지게 돼 있다. 이게 동물의 세계다.
하여 일단 새끼를 낳고 나면 부부는 해체되는 것이 대개의 동물이지만 인간은 또 곧 섹스가 가능하기 때문에 부부로 묶이는 밧줄이 단단해 공동육아를 하고 교육에도 동참한다.
동물은 거지반 어미 혼자 육아를 한다. 수컷은 어디로 가 다른 암컷과 또 교미를 해도 역시 또 자취도 없이 떠나버리고 제3의 짝을 만나 번식하고 또 사라진다. 인간은 섹스는 물론 섹스의 인간학이 본능으로 존재하게끔 창조되어 동물과는 다르게 산다.
그렇다면 창조주는 왜 인간에게만 상시적 성생활을 하게 해 주었을까? 성경은 그에 대해 답하는 책이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이며, 무한대로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답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얼굴이 아니라 심성이다. 심성이란 영혼이 행복하도록 창조되었다는 의미다. 즉 육체의 정욕도 중요하나 더 중요한 것은 그로서 부부의 사랑이 이어지도록 창조했다는 뜻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에도 깊은 의미가 있다. 섹스란 본능행위가 아닌 사랑의 행위로 준 선물이라는 의미다.
동물의 교미는 사랑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랑행위가 아니 라고 단정적으로 해도 될 말인지는 부정확하나, 적어도 인간과는 비교되지 못하는 게 바로 돼지 인물보고 잡아먹느냐는 비유 같은 것이다. 사랑해서 사랑의 행위로 교미하는 게 아니라 앞서 말했듯이 힘의 논리이거나 아니면 본능적인 행위로서 여기에 암수 간 사랑하는 성분은 인간과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의 섹스는 사랑없이 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얼굴을 보고 눈을 맞춘 다음에 합의에 의해 섹스에 이른다는 말인데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견해가 있기는 하다만.
술김에 자기도 모르는 육체의 정욕에 따라서라거나, 강제로 추행하는 성폭력의 경우도 있다는 말 인정하지만 이 경우는 인간학이 아니라 동물적 본능행위 쪽의 비중이 더 높다는 것도 알자.
이런 측면에서 인간학이 섹스와 접목된다. 말하자면 인간학적 섹스가 있고 동물성 본능에 따라 사랑 따위는 무시하고 타오르는 성욕대로 강제로 하는 비인간학적 섹스도 실존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