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종순 수필가

눈을 뜨자마자 귀저기를 갈아드리려고 만지다가 그 속으로 손을 넣어본다. 오늘도 축축하다. 오줌을 자주 싸신다. 오줌을 누는 것이 아니고, 본인도 모르 게 싸버리시니 이것은 오줌싸배기다.

 

싸배기란 "똥오줌을 자주 누러 다닌다"는 뜻이다. 사전에는 그렇게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을 싸다’는 ”참지 못하고 정해진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용변을 본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언제부턴지 난 내가 돌보고 있는 65세 치매환자인 언니에게 ‘쌰배기’라고 부르고 있다. 언니는 55세 때쯤부터 치매를 앓고 있었는데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은 것은 57세였다. 2년이나 늦게 알게 된 것이다.

 

언니 본인은 절대 그러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너무도 깔끔했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랬던 언니가 지금은 ‘쌰배기’라고 불러도 웃으면서 받아들인다. 난 그런 언니를 아무리 자주 싸도 힘들지만 좋아하고 사랑한다. 전에는 나를 많이 사랑해주던 지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던 깔끔한 언니였으니까.ㆍ

 

그 언니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같이 지내온 세윌이 42년, 아무도 느껴보지 못한 수많은 일상속의 세월동안 나에게 애틋하고 아프게 느껴지는 고운 정이 많이 쌓여서인지 나는 그 언니가 불쌍하게 보이면서도 무조건 좋은 것이다. 그리고 내 손으로 언니를 보살필 수 있다는 것을 신의 축복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언니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될 그곳까지 보이고 있어도 부끄러운 줄 몰라하신다. 난 그런 언니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잘 나가던 언니가 가련하기 때문이다.

 

55세에 누구보다 먼저 온, 와도 너무너무 빨리 온 치매라는 그 두려운 병이, 한 사람의 인생과 그를 기억하고,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뒤흔들어 놓고, 충격을 받게 하고 말았다.

 

옛날에는 치매를 노망기라고 했다.

 

우리 집안은 종손집안이고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저의 세대까지 삼대가 지금까지 같이 살고있다.

 

어릴 때는 전혀 모르고 치매 걸리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한집에서 살면서 ”우리 종순인 너무 착하고 잘 배웠다“ 라는 칭찬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효자 집안에 효자 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 치매에 걸리셨는데,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께서 할아버지에게 관장을 해주시는 걸 봤었고, 할머니가 치매셨을 때도 엄마는 시장에 가서 필요한 속옷 한 개를 구입하실 때도 할머니 것도 꼭 사오신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매 끼니 때마다 할머니에게 어떤 식사를 원하시는지 상의하고 음식을 준비했다는 말씀을 들으며 컸다. 엄마가 왜 그렇게 여쭈면서 생활을 하셨는지 내가 성장했을 때 들었는데 치매노인이시라도 조금이라도 섭섭치 않게 돌아가실 때까지 최선을 다 해 모시려고 그러셨다는 것이다.

 

아버지도 나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심어주셨다.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치매노인에대한 복지가 잘 되고 있으니 휠체어 한 개나 장애인 콜택시 정도는 필요할 때 마음대로 사용가능 하지만 50년 전엔 우리나라도 경제사정이 열악한 시절이라 양노원이나 병약자를 위한 시설이나 도구가 없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치매에 걸리신 구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병이 나셔서 결국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옆집 리어카를 빌려다가 속에 푹신한 이불깔고 할머니를 리어카에 모시고 보건소까지 다녀오셨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할머니가 가끔 정신이 돌아올 때면 당신의 아들 자랑을 어린 나에게 감동하셨다고 자랑과 칭찬을 해주셨기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집자랑 같지만 저의 여동생도 아주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시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모셨던 것이다.

 

세월이 변하여 핵가족으로 사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어르신을 모시며 살다보니 이어받고 배울 점도 많고, 좋은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모님께서 먼저 쌓으신 인생 경험을 배울 수 있고, 부모님도 자녀들도 외롭지 않을 뿐더러 힘들 때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사는 데서 얻어지는 좋은 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님 앞에선 어린양 부리듯 목청을 높여 말하지만 사실은 ᆢ어린양처럼 높여 말 할 때면 더 행복하고 따스한 감정이 일곤 한다. 핵가족이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사는, 그래서 외로움을 모르고 사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핵가족도 많은 데다가 1인 가정이 늘어난다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산다는 것은 배울점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집 ‘쌰배기 언니’에 이어 부모님 두 분도 차례로 ‘쌰배기’로 변해 갈 것이다. 그래도 부모님을 양노원에 보내지 않고 딸이 모신다는 것. 그 자체로도 행복한 것이다.

 

앞으로 쌰배기 세 분 때문에 난 무척 바빠질 것 같다. 그래도 난 행복하다.

떨어지는 낙숫물은 제 자리에 떨어진다는 말의 뜻을 생각해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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