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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 신고 출근했단 말인가? 총살된 공무원 신발 미스터리
▲ 문희봉 본사주필

미스터리다. 왜 이런 시점에 어업지도선에 탑승했던 사람이 바다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되었는지 미스터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공무원 피살 직후 열린 청와대 관계장관회의에 강경화 외무장관 안 부르고, 이인영 장관은 1시간 지각했고, 대통령은 보이지 않고…. 의문투성이다.

정부는 북한군에 살해된 뒤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 씨에 대해 처음부터 ‘월북설(越北說)’을 주장했다. 주요 근거 중 하나로 “배에 신발을 벗어놓고 사라졌다.”는 점을 내세웠다. ‘실족(失足)이 아니라 신발을 벗고 의도적으로 바다에 뛰어든 것’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홍문표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본지 취재 결과, 사건 발생 17일이 지난 7일 현재까지 ‘이 씨가 벗어놓았다.’는 신발은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어디에도 없었다. 정부가 ‘이 씨가 벗어놓은 신발’이라고 주장한 것은 승선 인원들이 선내에서 비번이거나 업무 이외의 시간에 신던 ‘슬리퍼’였을 뿐이다. 이씨가 ‘무궁화 10호’에 승선할 당시 신고 왔던 구두 또는 운동화, 업무 시간에 신는 안전화는 없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씨가 신발을 벗어놓고 사라졌다.’고 발표,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몰아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달 24일 이 사건 첫 브리핑에서 “이 씨가 어업지도선 이탈 시 본인의 신발을 유기한 점 등으로 미뤄 자진 월북 시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신발을 벗어 놓고 사라졌으니 실족이 아니란 얘기였다. 같은 날 해양수산부는 “슬리퍼를 가지런히 벗어 놓은 것으로 봐서 실족으로 추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로프 더미 속에 파묻힌 슬리퍼 사진도 공개했다.

그러나 동료 선원들은 “슬리퍼를 신고 승선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씨와 같은 배에 있었던 한 선원은 “우리에게는 승선이 곧 출근인데, 슬리퍼 신고 출근하는 공무원이 세상에 어딨느냐?”며 “구두나 운동화, 안전화를 신고 배에 오른다.”고 했다.

안전화는 근무용 신발이다. 배가 흔들려 물건이 떨어지거나 넘어질 때를 대비해 겉이 단단한 안전화를 신는다. 특히 선내 곳곳을 다니는 당직 근무 때는 꼭 착용한다고 한다. 이 씨는 실종 당일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당직 근무였다.

그런데 배에는 이 씨의 안전화는 물론 구두나 운동화가 아예 남아있지 않았다. 홍문표 의원은 7일 “지난달 27일 해경은 이 씨가 탔던 ‘무궁화 10호’의 이 씨 개인 침실에 있던 모든 물품을 가져왔지만, 구두나 안전화 등 승선 당시 신고 다녔다고 볼만한 신발은 없었다고 해양수산부로부터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가 ‘이 씨 것’이라 주장한 갑판 위 슬리퍼 외 또 하나의 슬리퍼 한 켤레가 있었다고 한다.

해경은 이 씨의 침실에서 나온 슬리퍼와 갑판의 슬리퍼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감식 의뢰했고, 이달 초에야 감식 결과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감식 결과를 받기도 전인 지난달 24일 정부는 ‘이 씨가 벗어놓은 신발’이라고 발표했다. 문제는 해경이 감식 결과를 전달받고도 그 결과를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해경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해경 조사에서 무궁화 10호 승선 선원 16명 가운데 누구도 “발견된 슬리퍼는 이씨 것”이라고 증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선원은 조사팀에 “슬리퍼가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누구 것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의문투성이이다.

문희봉 본사 주필  mhb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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