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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글방' 찾아내다!
윤봉길의사기념관(공립박물관) 현지조사 통해 ‘오치서숙’ 역사 고증
▲ 오치서숙 터 현재 사진(빨간 원 안)

[예산/미래 세종일보] 윤두기 기자=예산군은 윤봉길의사가 1919년(12세)에 덕산공립보통학교를 자퇴하고 1921년(14세)에 성삼문의 후손인 유학자 매곡(梅谷) 성주록(成周錄)선생의 문하생으로 사서삼경, 한시, 한학을 공부했던 ‘오치서숙(烏峙書塾)’의 장소를 현지조사와 증언을 통해 고증했다고 5일 밝혔다.

오치서숙의 위치는 본래 예산군 덕산면 둔1리 둔지미 1길에 자리해 있다고 알려져 왔으나, 윤봉길의사기념관(공립박물관)은 윤 의사가 다닌 오치서숙이 둔2리 노곡 16길에 위치해 있다는 내용을 증언을 통해 고증했다.

이번 고증의 증언을 한 맹화섭 선생은 1931년 태어나 17세 때부터 고(故) 성주록 선생의 생존하는 마지막 제자로 윤 의사와 관련된 관련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고 하며, 성주록 선생은 민족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순수 학문만 고집하지 않았고 홍주의병장 김복한의 사상을 높이 숭상해 윤 의사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전해진다.

▲ 오치서숙 과거 사진

맹화섭 선생은 “오치서숙의 본래 자리는 가마고개 인근 맹교원 선생이 거주하던 집”이라고 증언했으며, 윤봉길의사기념관이 해당 위치를 토대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둔2리 노곡 16길에 2016년까지 존재해오던 오치서숙의 모습을 위성사진 자료와 현지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아쉽게도 현재 건축물은 철거돼 윤 의사의 청년시절 추억이 담긴 오치서숙은 터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윤봉길의사기념관 관계자는 “윤 의사의 청년시절 의병과 독립운동사상을 심어준 오치서숙이 갖는 의미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조선후기 유학자 매곡 성주록 선생을 예산군의 윤봉길 의사 관련 인물로 재조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윤봉길의사기념관은 공립박물관 등록 이후 꾸준한 현지조사와 증언을 확보하는 등 윤 의사 관련 자료수집, 전시, 연구에 앞장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맹화섭 선생(1931년생) 매곡 성주록 선생 생존 마지막 제자

 

 

윤두기 기자  sanmuk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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