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영/ 성악가

남한강을 끼고 그림같이 펼쳐진 단양팔경이 우리 가족의 주 무대였다.

단양군수로 부임하던 퇴계 이황 선생이 죽순처럼 힘차게 솟은 봉우리들에 반해 이름을 지었다는 옥순봉부터, 대청마루같은 넓직한 바위 사이 푸른 물 속 조약돌까지 들여다보이는 맑은 상선암, 하선암이 나의 어린 시절 놀이터이다.

해병대 출신인 울 아빠는 수영도 못하는 나를 물에 던지시곤 했고, 나는 살기 위해 버둥거리다가 시골 야매 수영의 달인이 되었다.

아빠가 미션을 주시면 그게 뭐든 이를 악물고 해냈던 나. 계곡물에 던진 자두 강아지처럼 물어오기. 수경만 끼고 들어가 물고기 잡기. 목 좋은 곳에 어항 놓기 등이 다 익을 때까지 양파망 가득 올갱이 잡기.

해병 인명구조대장이었던 나의 슈퍼맨 아빠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달려 나가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삐삐에서는 8282가 울렸다. 때론 흠뻑 젖은 몸으로, 때론 잔뜩 상처 난 몸으로 돌아오셔서는 사람 살리는 일에 흥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강에서 인명사고가 나면 시신을 인양하는 데에 전문업체에서 그 값을 흥정했다고 한다. 참 슬픈 일이 아닌가. 그때마다 인명구조대에서 무료인양 작업을 해 주셨던 것이다.

아빠는 강으로 산으로 말괄량이 딸을 데리고 다니시며 틈틈이 묵직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하지만,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 정복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라는 것.”

이러한 야생의 유년 덕분에 나는 자연을 사랑하는 밝고 겁 없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중년으로 사는 지금 그때의 자신감과 설레임, 생명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과 감사함은 여전히 나의 삶을 지탱하고 관통하는 큰 힘이다.

정말 그렇다. 나의 아빠처럼 자연은 참 따뜻한 품이고 위대한 스승이다.

강제로 입마개를 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당연히 누리던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자연과 벗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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