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
베어지고야 동그랗게 드러난다
나무의 살아온 내력
밤과 낮의 기록이다
선 따라 역사가 공전하는 것을 보면
손잡고 견뎌온 연대에
햇살도 둥글게 응원 보내준 거다
벌레가 잎 다 갉아 먹은 해에도
파고드는 그들에게 제 살 내주는 걸 보면
몸속에 눈물 들어와 사는 걸 보면
무거운 구름도 끌어안은 게 확실하다
몸을 열면 거기에 단단한 눈물들이 촘촘하게
눈사람 만들면서 들키지 않으려던 눈물이다
등 뒤로 멀어지는 널 따라가지 않으려고 참았던 눈물이다
야, 이 미친 세상아
한 번씩 내지르고 싶었던 말들이다
단면에 동그란 흔적 남기고자 하는 뜻은
직선으로 서서 곡선으로 걷고자 하는 이유다
나의 나이테를 포개본다
내 속으로 깊이 파고 내려가면 한 무더기의 주름이 있다
내가 불러 본 이름들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