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 삭개오의 변심(變心)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혼란에 빠져있다.

▲ 심영선 / 오정 장로교회 부목사

세상에는 많은 질병들이 있다. 치료 가능한 질병도 있고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도 있다. 또 몸의 질병도 있고 마음의 질병도 있다.

몸의 질병은 눈에 보이고 그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눈에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마음의 질병은 보이지도 않고 서서히 진행되며 그 증상도 쉽게 들어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러한 특징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물론 본인 스스로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마음의 병중에는 우리의 어머니, 할머님이 많이 앓는 화병이 유명하다. 화가 나도 늘 꾹 참아야만 했던 그녀들의 애처로운 삶이 마음의 병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화병 병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많이 발생했다. 그래서 1995년부터 미국정신학회에서도 화병을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화병(hwa-byung)’ 이라고 등재되어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비롯해 많은 마음의 질병이 육체적 질병에 못지않게 사회적, 개인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마음의 질병은 자신에게 일어난 어떠한 상황 때문에 생길 수도 있고 몸의 병에서 마음의 병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반대로 마음의 병 때문에 몸의 병이 생길 수도 있다.

성경에는 삭개오 라는 사람이 나온다. 성경은 그가 ‘키가 작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많이 작았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은 정확히 얼마나 작은지 말하고 있지 않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는 표준보다 훨씬 키가 작은 왜소증이었을 것이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그는 몸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는 말이다. 장애를 가진 삭개오는 살아오면서 많은 상처와 아픔과 따가운 시선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요즘은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향상되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틀린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대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지금도 장애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심지어 불편한 사람들을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도 그러한데 하물며 장애를 대하는 인식이 부족했던 삭개오가 살던 2천 년 전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떠했을까?

당시에는 장애인들을 죄인을 대하듯 보았고 경멸의 시선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는 사람보기는커녕 경계의 대상이었고 질타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시선 속에서 삭개오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민감한 사춘기의 시절을 보냈다. 이렇게 성장하는 동안 삭개오는 마음에 큰 아픔을 지녔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성장한 그가 세리장이 되었다. 많은 돈을 모았다.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그를 장애인이라고 깔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힘이 되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세리장이라는 권력과 많을 돈을 가지고 있는 그가 무엇인가 만족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자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무 위에 있는 그를 예수님이 보았다. 상처를 가진 삭개오와 예수님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오늘 너의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신다.

그에게 변화의 축복이 내리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삭개오는 뜬금없이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 것임을 공언한다. 이뿐 아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것을 속여서 부당하게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말한다.

당시 세리는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세금을 많이 걷는 것으로 유명하다. 삭개오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기가 부당하게 빼앗은 것의 네 배를 돌려준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놓는 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예수를 만나자 자신을 지켜주던 돈을 버림으로 다시 연약한 장애인이 되었다. 도대체 그는 왜 그랬을까? 예수님을 만나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손 내밀어 주시자 그는 새롭게 태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세리라고, 장애인이라고 멸시했지만 그를 사랑해 주고 함께 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자 그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돈이 자신을 지켜 주는 것이 아님을 알았고 자신은 저주 받은 장애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를 만난 그는 이제 돈에 의지하여 자신의 삶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상처받은 영혼이 아니다. 사랑이 사람을 변화 시킨다. 따뜻함이 마음에 상처를 치유한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 시키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이 계신 것이다.

난쟁이 삭개오의 변심(變心)!

그것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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