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회원들의 눈을 통해본 시각의 변화

인생살이 살다보면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극적인 반전은 개인의 인생에서도 나타나고, 정치인들에게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 극적인 반전인 것이다.

물론 문학작품에도 소설이나 희곡은 물론, 시에서도 기, 승, 전, 결에 의한 전환점이 있는 것이다. 음악에도 있고, 사물놀이에서도 상쇠잡이의 꽹과리 두드리는 소리에 의해 극적인 반전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 작품에는 같은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반전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김정수 화백이나 전은경 화백처럼 예리한 눈초리를 그려 자신이 나타내고자하는 초점에 방점을 찍음으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신윤복은 시대와 지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색을 강조하여 그들의 느낌을 표현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반 고흐가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빛이 더해진 색으로 그리고자 했다면, 신윤복은 곱고 풍부한 색채를 사용하여 풍속화의 장면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래서 그들은 무명화가에서 유명화가로의 반전이 일어났던 것이다.

필자는 김정수 화백의 안내를 받아‘시나브로’ 회원들의 전시회에 여러 차례 들러 그들의 작품을 감상한 적이 있었다.(2020, 6, 4~ 6, 10)

그래서 그들의 작품을 보며 이번에는 강계순 화백, 박영 화백, 강동구 서예가, 차선영 화백, 이영란 화백의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첫 작품 박영 화백이 그린 'Addiction'

▲ 박영 화백의'Addiction'

자연은 낙엽조차 아름다운데 사람이 만든 것은 어찌하여 오염이 될까? 박영 화백이 작품의 제목을 'Addiction'이라 붙인 이유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리라.

사물을 예사로이 보지 않는 작가 박영은 인간에게 쓰이고 버려진 것들과의 이야기를 오염이나 중독으로 소통하고자 했다. 인간들은 탐욕에 중독된 시대를 살고 있으며 중독에는 음란물 중독, 미디어 중독,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등이 있어 이들 중독들에 걸려들면 우리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가게 되는 것이다.

보라, 스치로플 같은 쓰레기로 오염 된 지구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새 생명을. 그는 새 생명을 붉은색의 선인장으로 표현하였다.

붉은색으로 변신한 선인장?

붉은색은 태양과 즐거움, 경사의 상징을 나타내는 색깔이다. 옛날에는 황색과 더불어 붉은색은 황족만 사용할 수 있었던 색상이기 때문에 더욱 귀한 색으로 여겼고, 그래서 중국에서는 돈을 줄 때도 '홍바오' 라는 빨간 봉투에 넣어 건네는 풍습이 있었다. 선인장도 그렇다.

선인장은 황폐한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식용과 약재로도 쓰여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 박영은 오염된 속에서 태어나는 붉은 장미를 그렸을 것이다. 아니 그렇소? 박영 작가님.

다음으로 강동구 작가의 작품으로 넘어가자.

강동구 작가는 서예가다. 이번 작품은 판본체를 이용하여 유자효님의 시조인 ‘가정’이라는 시조를 썼다. 보자, 염홍철 전 대전시장도 월요일의 아침 편지에 활용할 정도로 유명한 시조를.

▲ 강동구의 '가정'

가정(家庭)/ 유자효

저음으로 말할 것, 잔잔하게 웃을 것

햇빛을 가득하게, 음악은 고풍으로

그리고 목숨을 걸고, 그 평화를 지킬 것

‘시나브로’ 회원들의 전시회가 6월4일부터 있었으니까 강동구 작가가 이 작품을 썼을 때는 오월 어느 때쯤이었을 것이다.

가정에서는 유자효 시인처럼, 목소리는 작게, 웃음은 잔잔하게, 그리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걸어야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필자도 치매에 걸리고 뇌수술을 두 차례나 받고도 살아남아 목숨을 연명하는 아내를 위하는 일이라면 목숨을 건다. 모든 가족은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 정도로 끈끈하게 유지 되어야 할 것이다.

왜 판본체를 사용하여 가정의 화목을 강조 했을까?

판본체는 한글을 만든 당시 목판에서 찍어 낸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등에 쓰인 글자꼴로 글자의 중심이 가운데에 있어 좌우 대칭을 이루며 글자의 모양이 사각형인 것이 특징이다. 또한, 가로획과 세로획이 수평, 수직을 이루는데다가 획의 변화가 적고 굵기가 일정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정감을 주기 위한 작가의 배려인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 시조를 전서체나 예서체로 썼다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될 것인가? 고맙다. 여기까지 배려한 강동구 작가의 마음씨가.

차선영 화백의 ‘빛나는 날에 그리움 6’

▲ 차선영 화백의'빛나는 날에 그리움 6'

그는 붉은색의 램프를 그려놓고 ‘빛나는 날에 그리움 6’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램프에 붉은 색을 덧칠하고 또 덧칠한 것으로 보아 서양화에 익숙한 솜씨가 그대로 작품 속에 나타나 있다. 보자. 50년대 과거로 돌아가 우리네 생활 모습을.

법정스님의 글을 보면 아궁이에서 군불이 타는 동안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램프의 등피를 닦아 둔다고 하며, 이제는 밤으로 등불이 정답게 여겨지는 계절. 등잔의 심지를 손질하다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산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맘 때가 되면 감성의 줄이 팽팽하게 조여지고 귀가 아주 밝아진다고 하였다.

그렇게 어렵게 살던 우리 민족이다. 다리 밑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그 시절의 램프. 그러다가 지금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능력으로 인해 우리 민족은 잘 살고 모든 면에서 상위 층에 들어가는 문화 민족으로 반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등잔불을 켜놓고 살고 다리 밑에서 살았어도 그때가 그리운 것이다. 가족끼리 오순 도순하게 정을 나눴기 때문이다.

아, 그때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리운 것이다. 울고 싶다. 그리워서 울고, 외로워서 울고 싶은 것이다.

착가 차선영도 그림을 그리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만납시다. 만나서 차 한 잔 나누며 옛날 얘기 해봅시다.

마지막으로 이영란 화백의 ‘사이좋은.....’

▲ 이영란 화백의 '사이좋은....'

이영란 화백은 등나무의 잎과 잎사귀를 그려 놓고‘사이좋은.....’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그 제목에 여운을 남겼다. 아쉬움 때문일까?

여운이란 어떤 일이 끝나거나 현상이나 시기가 다 한 뒤에 아직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운치를 말하는데 이영란 화백은 연보라색의 꽃과 초록색의 잎이 달린 등나무를 그려 놓고, ‘사이좋은.....’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그 제목에 여운을 남겼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등나무는 홀로서지 않고 다른 나무나 구조물을 타고 오른쪽으로 감아 돈다. 잎은 아카시아처럼 많아 쉼터의 그늘막으로 좋다. 오월에 피어나는 연보랏빛 꽃도 화려해서 사람들이 좋아한다. 더구나 등나무는 꽃과 잎이 사이좋게 어울려야 그늘막 역할도 하고, 쉼터를 만들어주기도 하며 이영란 화백처럼 그림의 소재로도 쓰이게 된다. 그런데 여운을 남긴 이유는 뭘까? 등나무의 꽃과 잎처럼 사이좋은 이웃으로 살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등나무의 꽃과 임의 어울린 모습이 사이좋게 보여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필자의 좁은 식견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번 전시회에서‘시나브로’ 회원들이 사용한 다양한 색채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떤 새들은 짝을 구하기 위해 깃털의 빛깔을 밝게 바꾸기도 하고, 천적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주변과 같은 색으로 위장하는 동물도 있는 것이다.

이영숙 화백의‘나빌레라’에 사용한 색의 조화가 그렇고, 이순덕 화백이 그린‘여정’의 색의 조화로움이 그러하며, 이미영 화백의 ‘엄마 생각’에 쓰인 붉은색이 역시 그러하다.

아쉽다. 회원 68명 전원의 작품을 소개 못하는 것이. 그러나 김정수 화백이 갑자기 어느 날 필자를 불러 여러분을 소개할 반전의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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