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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이젠 국가가 나서야 한다
문희봉(주필·시인)

‘웰다잉’ 이젠 국가가 나서야 한다

▲ 문희봉/칼럼니스트

웰다잉’이라는 얘기가 나온 지도 오래 됐다. ‘웰다잉’은 ‘사는 날까지 아픔 없이, 고통 없이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이다. 그런데 시작 때나 지금이나 별 변화가 없다.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의한 의사결정은 드물고, 호스피스 기관은 기대만큼 늘지 않았다. 광의의 ‘웰다잉’은 법제화조차 되지 못했다. 매일 500명의 국민이 죽어가고 가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그들의 삶과 죽음에 의미와 희망을 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 괴롭다.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는다.

2019년, 대한민국은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아졌다. 29만 명이 출생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사망자는 30만 명이 넘을 것이다. 탄생을 기뻐하는 사람들보다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2023년까지 5년간 국민 166만 명이 죽음에 직면할 것이며, 830만 명의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슬픔을 겪는다. 국민 5명 중 1명은 5년 내 죽음을 맞이하거나 상실의 아픔을 겪는 셈이다.

2020년 1월은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된 지 4년이 되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가 임종한 지 10년이 된다. 그래서 그 사건을 ‘김 할머니 사건’이라 부른다. 평소 본인의 연명치료거부 의사에 근거한 가족의 요청으로 지속돼 오던 것을 법원이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한 판례이다. 2018년 2월 시행부터 본격 실시되면서 연명의료를 결정한 환자가 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약 8만 명, 1년간 약 5만3000명이 결정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사망 예상자 31만여 명의 17%에 해당된다. 상당하다. 언론도 관심이 많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많다. 3명 중 2명은 변함없이 연명치료가 가족들에 의해 결정됐으며, 고착화 되고 있어 문제다. 자기 결정이든, 가족 결정이든 가장 쉬운 방식으로 임종 직전 연명의료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환자 3명 중 1명은 직접 결정했지만, 96%가 임종 직전에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다. 건강할 때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의한 결정은 4%에 불과하다. 충분한 설명과 이해, 합리적 의사에 의해 결정됐다고 볼 수 없다. 강요된 결정이다. 법 1조에 명시된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한 취지가 존중되지 못하고 있다. 늘고 있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마저도 겨우 성인인구의 약 1%만 작성했다. 국민의 46.2%가 의향이 있다. 미국은 전체 인구 36.7%, 노인 인구의 45.6%가 의향을 밝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명의료 결정 과정을 밟지 못하고 사망한 83%의 환자들이다. 2017년 기준 호스피스를 이용한 사망자도 6%에 불과했다. 나머지 77%, 사망자 23만여 명은 연명의료를 계속 받으며 숨진 것인지, 그렇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내년에도 별로 개선되지 않고 반복될 것이라 절망적이다.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병원 입원 시나 응급실 방문 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확인하고 의무기록에 첨부하며, 없는 경우 안내를 받고 싶다면 설명하고, 희망하면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원래 병원은 최상을 희망하되 최악을 대비해야 하는 곳이다. 죽음은 언제든지 올 수 있고, 사전에 대비해 자신의 의사를 밝히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며 정상적인 의료행위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병원들이 반대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부드럽게 설명하는 것은 훈련된 상담기술로 ‘넛지’, 즉 자유주의적 개입이다. 너무 서두른다거나 부담스러워하는 문제는 위기 상담 능력을 갖추고 방안을 찾으려는 병원들과 의사들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이 법은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와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및 그 이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 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연명의료결정법 1조)

이 법은 3가지 선언의 의미가 있다. 첫째, 질병 치료가 불가능해졌을 때 죽어가는 국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겠다.’는 것이다. 둘째,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실패’가 아니라 삶의 ‘완성’으로 승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셋째, 죽음을 ‘환자와 가족’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돌보아야’ 한다는 것은 호스피스 혹은 임종 돌봄을 제공한다는 것이며, ‘삶의 완성’은 웰다잉을 위한 사전돌봄계획을 세우고, 개인의 삶과 죽음을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은 그중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다. 국민의 웰다잉을 ‘사회와 국가’가 책임지기 위해 법을 만든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단지 연명의료 결정만이 아니다. 국민은 웰다잉을 원한다. 의사들도 원한다.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결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권장한 호스피스마저 국민이 이용하기 어렵다. 호스피스가 암 이외에 만성 호흡기 질환, 간경화, 에이즈 등 4개 질환으로 확대됐다고 하나 그 이외 환자들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호스피스 이용자 중 암 환자를 제외하면 3개 질환 이용자는 16명에 불과하다. 질병에 따른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2015년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상급종합병원의 사망 대상 환자 사망 직전 입원일수는 질환별로 비슷하지만, 사망 직전 1인당 건강보험 급여진료비는 만성 간경화, 만성신부전, 뇌졸중, 울혈성 심부전, 만성폐쇄성 폐질환, 파킨슨병, 치매 등이 암보다 훨씬 높았다. 연명의료결정법 통과 당시 국회와 복지부가 말기 환자 확대 범위를 결정하는 과정이 석연치 않다. 호스피스 국민본부가 실시한 대국민 조사에서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 등을 희망하는 국민의 뜻과는 전혀 달랐다.

정부는 장려가 아니라 규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셈이다. 환자들에게 호스피스를 설명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의사와 병원은 비윤리적이다. 환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며, 의사의 선행 원칙에도 어긋난다. 규제해야 할 것은 치료 효과도 없이 처방되는 항암치료나 연명의료다. 생명 연장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끝까지 항암치료를 해 오히려 죽음을 앞당기거나 죽음을 준비할 기회를 빼앗는 병원과 의료진을 규제해야 한다. 환자들은 많은 돈을 들이고도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문희봉 칼럼니스트  mhb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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