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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의 다리(肢)를 절단하는 정부
문희봉 주필/시인

 

한국 교육의 다리(肢)를 절단하는 정부

▲ 문희봉/ 주필, 시인

지금 정부는 한국 교육을 하향 평준화하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외고, 과학고, 자사고 등 특목고를 2025년부터 없애기로 입법 예고했다.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수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데 평균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본래 취지에 맞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현 정부 인사들과 좌파 교육감들은 자사고를 '귀족학교', '고교 입시의 주범'이라고 비판해 왔다. '평등주의 교육'을 주창하는 이들은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사고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으로 내세웠고, 친(親)전교조 좌파 교육감들이 핵심 정책 과제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런 보통교육으로 국가경쟁력이 상승할 것인가? 한심하고 답답한 현실에 가슴이 미어진다. 국가의 교육정책을 이념 성향이나 여론에 따라 밀어붙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정부는 미래 교육 환경에 대비해 일반 교육과 다양한 수월성 교육이 조화되는 시스템을 제시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그런 고민을 전혀 안 하고 교육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 한다.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

한 예를 들어보자. 지금 한국과학교육은 절뚝거리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지난 7월 인공지능 분야 신임 교수를 뽑았다. 그런데 교수들로 구성된 선발위원회는 지원자의 출신 대학도 지도교수도 알 수 없었다. 지원자의 논문에 적힌 소속 기관과 공동 저자 이름을 보고 학교나 지도교수를 유추해야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코미디가 벌어진 건 '인적 사항과 학력 등 개인 신상 정보를 보지 말고 교수를 선발하라.'는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지침 탓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작년 말 KAIST 등 4대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에 하달한 이 지침의 명분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정'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KAIST 이광형 교학 부총장은 "일반 사무직도 아니고 교수·연구원을 뽑는다면 모든 정보를 동원해 수월성을 검증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답답해 했다.

공정과 함께 한국 과학계에 몰아친 또 하나의 정치 바람이 '적폐 청산'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만든 기초과학연구원(IBS)은 해외 학계가 '한국의 노벨상 프로젝트'라며 부러워하는 곳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작년 말 특별 점검을 시작으로 종합 감사, 그리고 합동 감사까지 1년 내내 조사를 벌였다. 김두철 전 원장과 마찰을 빚었던 민주노총 산하 공공연구노조는 작년 7월 이후 지금까지 12차례에 걸쳐 성명 발표와 기자회견 등을 하며 정부 조사를 촉구했고, 결국 김 전 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이공계대 총장과 과학기관장들도 대대적인 감사를 당했고, 상당수가 중도 사퇴했다. 과학계에선 "점령군식 완장 정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 사이 현 정부의 이념들은 과학계에서 하나하나 구현됐다. 정부 출연 연구소들은 비정규직 6,400여 명을 일괄 정규직화하기로 했고, 주 52시간 근무제도 도입했다. 각 연구소들은 낮엔 비(非)연구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전환에 직접 고용까지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고, 밤엔 연구원들이 오후 6시에 대부분 퇴근해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과학계가 적폐 청산, 공정, 정규직화, 주 52시간 같은 정권의 핵심 정책을 실험하는 모르모트(실험용 쥐)가 된 사이 한국 과학의 경쟁력은 퇴보하고 있다. 사회주의 중국은 파격적인 연구비와 주택, 교육 특혜를 내세워 우수 연구자를 끌어모으며, 최상위 1% 과학자 수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2017년 15위였던 한국은 작년 18위에서 올해는 19위로 떨어졌다. 인구가 고작 서울의 절반 정도인 싱가포르(14위)에도 뒤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국 빛낸 사람’으로 뽑힌 젊은 과학자의 월급 200만 원 수준이었다. 그는 연구소 떠나 자영업을 하고 있다. 서울 한 대학에서 생물화학 박사 학위를 딴 A(40) 씨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생물학연구정보센터가 탁월한 논문을 쓴 연구자에게 주는 '한국을 빛낸 사람들'에 선정됐던 유망한 과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2017년 "자영업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과학계를 떠났다. 한 연구기관에서 박사후연구원(포스트닥터·포닥)으로 일할 당시 가장인 그의 급여는 월 200여만 원.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과학계는 돌아보기도 싫다."고 했다. 옛 동료들은 A씨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포닥은 박사 학위를 따고 갓 연구 현장에 뛰어든 연구원들이다. 연구 생산성이 가장 왕성해 과학 선진국에선 연구 현장의 주축이다. "노벨상은 교수가 타지만 그 성과를 좌우하는 건 포닥"이라는 뜻에서 '노벨상은 노벨 감독상'이라는 말까지 있다. '포닥 없는 연구'는 상상도 못 한다. 노벨상 수상자 16명을 배출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분자생물학연구실은 교수 1명에 포닥 8명, 대학원생 2명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포닥에게 최소 연봉 5만 달러를 보장하고 독일은 기혼 포닥이 자녀가 생기면 계약 기간을 늘려 안정적인 연구를 뒷받침한다.

한국 포닥들의 현실은 참담하다. 200만~300만 원에 불과한 월급,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불안정한 신분 등 열악한 처우를 견디다 못해 A씨처럼 연구자의 길을 접거나 해외로 떠나는 이들이 적잖다. 기초과학 분야 학회의 모임인 기초연구연합회는 한 해 배출되는 이공계 박사 4,100여 명 중 1,200여 명이 국외로 나간다고 추산하고 있다. 정부의 현실성 있는 현명한 대처를 바란다.

자원이 충분하지 않는 한국이 세계 경제 대국 10위권에 진입한 것도 수월성 교육의 힘이었다. 우수 두뇌 몇 명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족쇄를 채워 걸음을 못 걷게 한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해주기 바란다.

문희봉 주필/시인  mhb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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