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 천안신문공유-시론

안전이 생명이다

먹는 것 입는 것을 다 합쳐도 생명문제인 안보와 안전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공부가 아무리 중요해도 먹고 자는 것 다음이며 건강이 훨씬 더 중요하듯이 안보문제와 안전문제는 의식주를 뛰어넘는 생사여탈의 문제인데 우리는 안보는 불감증이고 안전은 무시하는데 익숙한 세월을 산다.

게다가 요즘 들리는 소식은 갈수록 흉악무도하여 도무지 어린자녀들 손자손녀들이 살아갈 이세상을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누더기를 만들었는가 싶어 가슴을 칠 지경이다. 어린이들이 무엇을 안다고 이런 세상인줄도 모를 후손들에게 치안문제와 살인 강간문제들 참으로 특단의 묘안을 짜내야 하겠다.

지금 무슨 연속극처럼 줄을 달고 이어져 드러나고 날로 악랄해 지는 인명경시 사건 속출 뉴스 보고 듣기가 무섭다. 그러다보니 근간 전례 없이 신속하게 대부도 토막 살인사건 범죄자 조성호의 얼굴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보니 이웃집 착한 청년처럼 곱상하게 생겼던데 그는 양두구육의 동물성이 본질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간 흉악범죄자의 인권보호는 왜 그렇게 철저했는지 모자를 씌우고도 모자라 아예 아랍인들의 터반보다 더 꽁꽁 싸매는 등 죄인의 얼굴을 양반 댁 규수보다 더 극진히 싸고 돌아 왔는데 차제에 가차 없이 얼굴을 공개하여 죄질 극악자의 대가가 어떤가를 보게 하여 범죄예방에 유익토록 조치하니 잘하는 일이다.

범죄자는 가려주고 덮어주고 죄인의 인권까지 고려에 고려를 더 해 배려수준까지 이르게 되면 김정은을 감싸는 것과 동질이 된다. 그러면 결국 김정은의 손에 우리 생명이 위태로운 것처럼 국내 살인자의 인권보호는 고스란히 국민의 생명 경시로 나타나게 된다.

과거 군에서는 시범케이스에 걸리면 한 대 맞을 걸 몇 대를 맞아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 군인 수십 백 명이 한 대도 맞지 않으면서 대단한 효과로 훈련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인자는 시범케이스로 견본 시범처벌주의로 가야 할 측면이 없지는 않다. 나는 잡히지 않을 것으로 믿고 저지르는 범죄는 이런 살인자 과보호가 연속살인을 불러오는 측면도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한수 더 뜨는 것은 살인의 고의성과 우발성 여부를 너무 지나치게 살핀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것이 전체 형량의 절반을 차지해 20년 형량이 10년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우발에 대한 지나친 배려다. 물론 형법을 만든 이들이 어련히 알아서 살펴 만들었을 줄 알지만 이런 경우는 살인에 90%를 기본으로 하고 정황참작은 10%만 해야 옳았다. 결론인즉 죽인(살인)자인데 죽일 만 했다고 보는 듯한 형량은 향후 범죄예방에 해악요소로 보인다.

요즘 들어 살인은 보통이고 얼마나 극랄하게 사체를 유기했느냐는 쪽으로 시선이 기우는 듯한데 이건 한참 잘못된 것이다. 죽인 건 죽인 건데 어떻게 죽였고 어떻게 유기했느냐에서 후반에 방점이 찍히는 현상은 본질파손이다. 본질은 살인이지 사체 훼손이나 유기가 아닌데도 우리는 지금 유기행위나 토막처리에 더 분노하나 이건 가중처벌 대상일 뿐 살인자체가 밀려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일단 살인자는 너도 죽인다는 관념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사형제 폐지국가라는 자부심을 위해 죽여도 산다는 의식이 굳어버렸다. 잘하는 건지 뭔가 잘못하는 건 아닌지 살펴보자.

1993년~1994년 사이에 벌어진 지존파 살인사건은 납치되었다가 탈출한 이모 여인의 제보로 9월 19일 범인들이 모두 체포됨으로써 일단락된 적이 있다. 재판 결과 검거되기 이틀 전에 조직에 가담한 이경숙을 제외한 두목 김기환을 비롯하여 강동은, 김현양, 문상록, 강문섭, 백병옥 등 지존파 전원이 강도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심과 대법원의 최종판결에서도 1심의 형량이 확정되어 11월 2일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이게 22년 전인데 우리는 그들의 잔악성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며 사형에 처함으로서 피해자는 물론 국민들까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다소나마 보상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 줄줄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걸렸다 하면 강간은 기본이고 반드시 조각을 내버린다. 이래서야 우리 아이들 이제 초 중 고등학생들을 어떻게 기른단 말인가.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단 1초 사이에 사고가 나고 일가족이 사망하는 것처럼, 순간에 우리의 어린이들이 납치되고 성폭행을 당하는 이런 세상을 어떻게 살기에 안심하는 완전 살인 없는 세상을 만들지는 기대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절반으로 절반의 절반으로 줄여가야 한다.

교통사고는 예고가 없다. 일초이초 찰라에 터지는 것이 교통사고이므로 만사불여튼튼하듯 과속하지 말아야 한다면 우리 어린아이들의 안전이 이와 동일하다. 금방 방에서 나간 아이가 순간 사고를 당하고 끌려가고 잡혀가고 실종되고 강간당하고 죽기까지 하는 이런 무서운 세상을 인구가 많다보니 비율상 몇%다하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의식을 깨우고 안전을 생활화 시켜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취할 조치가 있어서 답은 살인자를 소곤소곤 달래고 감싸는 굴절된 인권이 아니라 가차 없이 단호해야 한다. 사형언도 보다 더 무겁고 효과 높은 처벌은 죽이고 살리는 문제와는 달리 무언가 더 좋은 방안을 생각해 보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조성호 얼굴 공개로 무언가를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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