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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44번 버스’ 승객이 될 수 있다
▲ 문희봉 시인,평론가

[칼럼/문희봉  시인,평론가]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말씀이다. 구구절절 나라를 걱정하는 것으로 가득 채웠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이다. 언젠가부터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흑이 아니면 백으로 국론이 갈라졌다.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이다. 요즘 반일감정이 극에 달했다. 개인 간의 싸움도 과거만을 되풀이하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요즘은 옳은 이야기를 해도 ‘친일’이요, ‘토착왜구’로 몰린다. 안타깝다.

일본이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국권을 짓밟은 철천지원수다. 언제까지 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인가? 그들이 사과하도록 설득할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가?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새날을 맞을 수는 정녕 없는 일인가? 일본내의 양심 있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사과하고 같이 가자 한다. 그러나 아베라는 인물은 먹통이다. 그래도 대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와의 교류를 끊으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문제가 있으면 대화로 풀어야 한다. 왜 입이 있고, 귀가 있는가? 두 귀로 듣고 한 입으로 말해야 한다. 설익은 과일은 그냥 먹을 수 없다. 효소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바로 대화다. 대화로 풀리지 않을 일이 없다. 지는 듯 이기는 듯 그렇게 대화로 풀어야 한다. 김동길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나에게 남아 있는 단 하나! 나의 조국 ! 대한민국! 이제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아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조국 대한민국 하나뿐이다. 대한민국이 없으면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구라도 대한민국을 비방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그가 누구이건 한결같이 증오한다. 그가 노조원이건, 교사이건, 교수이건, 그대로 둘 수 없다. 또 경 상도 사람이건, 전라도 사람이건, 대한민국을 헐뜯는 자는 내 원수이고 대한민국 안에 살려둬서는 안 되는 인간이라고 믿는다.

국민의 70% 이상이 같은 생각이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들의 승리를 확신한다! 나도 44번 버스의 방조자는 아닌가? ’버스 44‘는 중국에서 상영된 영화 제목이다. 2011년, 중국에서 어떤 여성 버스 운전기사가 버스를 운행하며, 산길을 넘고 있었는데 양아치 2명이 기사한테 달려들어 성희롱을 했다.

승객들은 모두 모른 척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 남자가 양아치들을 말리다가 심하게 얻어 맞았다. 급기야 양아치들이 버스를 세우고 여성기사를 숲으로 끌고 들어갔다가 한참 뒤 돌아오더니 여성기사는 아까 양아치를 제지했던 중년 남자에게 다짜고짜 내리라고 했다.

중년 남자가 황당해하면서 “아까 날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니까 기사가 소리 지르면서 “ 당신이 내릴 때까지 출발 안 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중년 남자가 안 내리고 버티니 승객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내리고 짐도 던져버렸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했는데 기사는 커브길에서 속도를 가속해서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전원 사망. 중년 남자는 아픈 몸을 이끌고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다가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이 말하길 버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승객이 모두 사망한 사고라고 했다.

멀리 낭떠러지를 바라보니 자신이 타고 왔던 그 44번 버스였다. 그 여성 운전기사는 오직 살 만한 가치가 있던, 유일하게 양아치들의 악행을 제지했던 그 중년 남자를 일부러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서 모른 척 외면했던 승객들을 모두 지옥으로 데리고 갔다.’

이 얘기는 중국에서 일어났던 실화이다. ‘버스 44’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나 몰라라’ 방조하고 있던 손님들이 중년의 아저씨를 버스 밖으로 쫓아낼 때는 모두 적극적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는 버스 안의 방조자는 아닐까 반문해 본다. 다시 한번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침묵의 방조자는 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장관이란 사람들이 주체성이 없다. 심지어 국방장관이란 사람은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한미방어훈련이 계속되는 동안 북한의 김정은은 이틀에 한 번꼴로 미사일을 쐈다. 대통령은 국가수호의 최후 보루이다. 국가통수권자이다. 이에 대한 한마디가 없다. 북한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이게 과연 타당한 말인가? 미사일을 쏜 것에 대해 미국은 제재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어쩜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일본은 우리를 백색국가에서 제외시켰다.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의 영공을 침공했다. 북한은 우리 대통령을 똥치던 몽둥이 취급하면서 ‘이제 너희들(?)하고는 대화하지 않겠다.’ 한다. ‘너희들 앞길이나 잘 챙기라.’ 한다. 사면초가다. 대통령은 무슨 잘못이라도 했는지 북한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못 한다. 핵 앞에 우리는 무릎 꿇린 상황이다. 언제까지 바라만 보고 있을 건가?    그 핵은 정말 우리의 가슴을 향해서는 절대 쏘지 않을 유익한 물건인가? 할 말은 하면서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내야 한다. 위기는 기회다. 2045년까지 대한민국을 세계6대 경제대국으로 만들겠다는 8·15 경축사 내용을 믿으란 말인가? 2045년이면 몇 년 후인데 걱정이다. 오호통재라. 아들딸과 손주들이 불쌍하다. 국운이 바람 앞의 등불이다.

문희봉(시인,평론가)  bsjil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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