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환/킬럼니스트

 

'개천에서 용난다.' 이 말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누가 이 말을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따라서 우리는 개천을 깨끗이 보존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상상력이 풍부한 크리에이터적 발상'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개념에 벗어난 다소 생뚱맞은 표현'이라 볼 수 있을까? 대부분은 그냥 묻혀 대수롭지 않게 한 귀로 듣고 흘려 지나갈 문제지만 굳이 꼬집는다면 한번쯤은 고민해볼 법하다.

위 표현은 '개천'자체가 '어려운 환경'을 표하는 <상징어>이기에, 그 상징어를 '깨끗'이라는 '어렵지 않은 환경' 또는 '좋은 환경'을 표하는 언어와 함께 쓰게 되면 본래의 뜻을 180도 바꿔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서 벗어난 표현에 가깝다.
굳이 뒷말을 풀어본다면 말맛은 없지만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좌절하지 말고..' 의 뻔한 표현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첫 문장에 이런 표현을 썼다. "과거사 문제는 한·일 관계에서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습니다. 때때로 우리를 아프게 찌릅니다." 
사실 무심코 들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아니면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감정도 섞어서 뭔가 한두 단계 승화된 표현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의 '(용이 나는) 개천을 깨끗하게...'처럼 이라고 표현 한다면 이러한 표현은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에서 벗어난 부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낭중지추(囊中之錐), 즉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드러난다.’라는 뜻으로 통상 쓰인다.
주머니속의 송곳이라는 표현 속의 '송곳'은 그냥 우리집에서 쓰는 그 '흔한 송곳'이 아니다.

'흔한 송곳'은 찔렸을 때 아픈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오랜 시절부터 내려온 '주머니 속의 송곳'은 우리를 아프게 하는 송곳이 아니라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의 자격을 지닌 '보배로운 송곳'이다. 따라서 그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어쩌면 우리 갑남을녀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숨은 능력을 가진 인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지적하면 '바쁜 시대에 뭐 이럴 정도까지'라고 비웃음 받거나 '꼰대의 지적'이라 비난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 하나하나를 바로 잡음으로써 <대충대충의 사회>를 바로잡는 게기가 되리라 확신하는 바이다.

우리사회는 좀더 디테일해져야 한다. 대통령부터 많은 이들이 솔선수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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