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한호(전)침 신학대학교 총장(현)국제펜한국본부이사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죽음의 성격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차제에, 논자는 죽음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보았다: 업무 수행 중에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숨지는 것은 순직(殉職),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다가 희생당한 사람은 의사(義士), 전쟁이나 공무 수행 중인 동료나 상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은 국가 유공자, 그리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생애를 바쳐 희생한 죽음은 순국(殉國)으로서 애국지사와 독립투사도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년 전에 대법원은 군 복무 중에 상관의 폭행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병사를 의사자나 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일부 국민의 진정을 받아들여 심의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 의견 대다수가 국가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이 유공자이며,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이 의사자이지 비록 괴롭힘을 당했다 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병사를 의사자나 유공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기운 것과 동시에 부결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한 경우로, 세월호에 승선했다가 어처구니없이 희생된 학생들을 의사자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나, 억울하고 애석한 죽음일지라도 사고사 한 사람을 유공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주검을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간혹 있지만 그와 같은 주장에 밀려서 대의를 그르치면 언제인가 그것을 제자리로 돌릴 때는 더 큰 국론분열과 국력 낭비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사법부는 상식과 사회적 규범을 존중하며 비교적 냉정하게 판단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들이 국가 유공자에 대해 어떤 경제적 지원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는 유공자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공로자, 희생자, 특수 직업 종사자 등에게 베푸는 감면과 면제 조치, 각종 지원금 등의 혜택이 국력에 비해 너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독일은 세계 4대 강국으로서 국토 면적과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나라인데 국가의 1년 예산을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7:6이다. 독일이 7이라면 우리나라가 6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국방비 지출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1년 예산이 이렇게 많은 것은 각종 ‘감면과 혜택’이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전기세가 오르고 유류비가 폭등해도 국민의 약 30퍼센트는 정부가 베푸는 각종 혜택으로 인해 별로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얼마 전에는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일부 국민의 요구가 심상치 않았다. 알고 보니 유공자 중에는 과거 정권의 총리급 고위 관리와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들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국민의 존경을 받는 그들 지도층 인사들이, 나를 5·18 유공자에 넣어주세요. 하고 간청해서 들어갔겠는가.

아마 5·18 희생자 단체가 단체적으로 추천했거나, 혹은 권유에 못 이겨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크고, 그것이 여론을 탄 이 시점에서 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우지 않은 이들은 누구든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수년 전에 감리교회의 몇 학자와 목회자들이 순교의 개념을, 복음 증거 활동 중의 죽음, 분명한 가해자가 있는 죽음(타살),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죽음으로 한정하고 이와 같은 이유로, 여행 중에 배가 침몰해서 죽은 감리교 최초의 재한 미국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의 죽음을 순교가 아닌 순직이라고 해서 주목을 받은 바 있었다.

정치인들이 감리교 한 위원회의 이와 같은 결의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자신들의 거취를 행동에 옮겨야 그들이 부르짖는 혁신이나 개혁이 명분을 얻게 될 것이다. 국가 유공자는 현장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싸운 사람이 되어야지 정책을 만든 사람이 자기가 먼저 수혜자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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