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대전 미술에 빠져들다
  •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22 08:57
  • 댓글 0

 

▲ 김용복 / 극작가, 칼럼니스트

제 1부: 대전 미술에 빠져들다.                                                         

2019 대전미술제-‘대전미술에 물들다’ 마지막 전시회 날. 이영우교수의 팬이자 미술애호가인 정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술가의집 미술전시회에 감상하러 가자고, 반가웠다.

정인이는 내 큰딸과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이고 필자가 주례를 서 준 친딸과 같은 사이이다. 몇 사람에게 문자를 날렸다. 함께 가자고. 그래서 찾아간 곳이 예술가의집 3층 전시실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50여 년 동안 글을 쓴 사람이다. 60~80년대는 수필을 썼고, 91년부터는 희곡을 써서 법무부, 문교부(90년대 당시 명칭), 내무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시민회관, 신탄진. 공주 등에서 공연을 했고 최근에도 해마다 작품을 써서 대전 세종 등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왜 필자의 소개를 장황히 늘어놓는가? 글 쓰는 글쟁이이기에 미술과는 거리가 있다는 변명을 구태여 하기 위해서다.

더구나 그림을 잘 그리는 원로 작가를 미술세계에서는 화가라 하지 않고 화백(畵伯)이라 높여 부르는데 글 쓰는 세계에선 별도로 높여 부르는 말이 없다.

이번 대전미술제는 이영우 대전미협 회장이 대전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250여명의 기성 작가들과 각 대학별로 추천받은 지역의 신진작가30여 명을 불러 함께 전시에 참여시켰다 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작가들이 참여 했으며, 과거 여느 전시보다 수준 높은 전시라는 평을 받고 있고, 신진작가의 작품들도 많이 전시됐다 한다.

신진작가들의 참여. 이들이 20년 30년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화백으로 대우를 받게 될 것이기에 기대가 큰 것이다.

 

이영우 대전미협 회장은 말했다.

“대전미술제에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 30여 명에게 초대전을 열어주어 그들에게 희망의 가교역할을 할 뿐 아니라, 시민과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이 교수는 이어서 “이번 기획전을 통해 예술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예술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도 작가들이 서로간 고찰해 볼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리더다운 격려이다. 리더가 방향키를 확실히 잡고 항해할 때 함께 타고 있는 동료와 후진들은 희망이 있는 것이다.

 

제2부: 필자가 만난 화백들과 그들의 그림세계

 

1, 이영우 화백의 '남과 여'.

그런 이영우 화백이 이번에는 ‘남과여’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인간에게 내재돼 있는 마음은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이고, 겉 마음과 속 마음이 다른 것이다.

여성에게는 ‘안 그런 척 하는 마음’이 매력의 덩어리로 작용하여 남정네의 입맛을 돋구게 되는 것이다.

‘안 그런 척하는 여인의 묘한 마음’ 그 마음이 이영우 화백으로 하여금 그리고 싶은 충동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그래서 여인의 눈동자를 붉은색으로 드러냈을 것이다..

 

2, 송인희 여류화백의 '숲'.  

아쉬웠던 점은 전시회에 참여한 수백 작품들 가운데 참여 작가 어느 분도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행이 청죽(靑竹)을 좋아해서 대[竹]를 그렸다는 송인희 화백을 만날 수 있었다. 대[竹]를 그리되 대가 우거진 숲을 그렸다.

왜 대 숲을 그렸느냐고 묻는 필자에게 그저 대가 좋아서 그렸다는 것이다. 청순하고, 곧으며, 속이 비어있어 청렴하기에 그렸다는 것이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처럼 이중적인 식물은 없을 것이다. 물론 대는 곧다. 그리고 속은 텅 비어 있어 욕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늘 푸른데다가 군집을 이루고 있어 여타의 생물들이 근접을 못하게 한다. 이게 문인들이나 화백들이 그렇게도 예찬하는 대의 겉모습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는 대의 뿌리를 보면 그 모습이 어떠할까?

대의 땅 속 줄기는 땅 위에 보이는 줄기와 달리 속이 알차게 채워져 있으며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빽빽하게 군락을 이루기 때문에 열매 맺는 활엽수나 침엽수, 또는 잡풀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고 그로인해 짐승들도 이곳에서는 살수가 없다.

화가 송인희 작품 ‘숲’을 자세히 보라. 잡초나 열매 맺는 활엽수들이 어디 있으며, 이곳에 살고 있는 날짐승들을 비롯해 기어다니는 길짐승들이 어디 있나.

그래서 그들만의 숲을 이루며 울울창창하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 송인희 화백의 '숲'을 감상하며

 

 

3, 이근희 화백의 '윤회'

전시관을 관람하면서 이근희 화백을 만나게 되었다. ‘윤회’라는 제하의 작품을 전시헀다.

페인트나이프로 작업한 것이 아닌 붓만으로 작업해 그린 그림이라 했다. 이 화백의 말에 의하면 윤회란 불교 교리 가운데 하나로 중생이 죽은 뒤 그 업(業)에 따라서 육도(六道)의 세상에서 생사를 거듭한다는 것을 천명한 사상인데, 화백의 작품 속에는 어린 생명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여섯 가지의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고 죽어 가는 모습이 있는데 이 여섯 가지 모습 모두가 내재돼 있다고 했다. 따라서 이 과정을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하며, 이를 면과 형태로 이어져 작은 공간과 큰 공간으로 표현해 그렸다 한다.

이 화백의 ‘윤회’ 속에는 깊은 통찰력을 가진 자라야 볼 수 있는 깊은 철학이 내재돼 있었다. 어쩌면 작은 공간 속에 그토록 많은 철학을 숨겨 놓을 수 있었을까?

글 쓰는 작가들이 더듬지 못한 세계를 화가들은 부드러운 붓 끝으로 예리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 수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4, 정영복 화백의 '눈'

다음으로 발걸음을 멈춘 곳이 정영복 화백의 ‘눈’ 이었다.

필자는 60년대 초 정화백과 함께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정화백의 작품은 붓놀림에 의한 손재주가 아니라 일곱 가지 색을 띤 무지개 색채를 확연히 드러낸 색채의 조화로움에 있다.

그의 그림에 심취하다보면 빨강색의 석류알 냄새도, 푸른색의 바닷바람 냄새도 풍기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화려 하되 강하고, 강한듯하면서 신앙심에서 우러나는 부드러움이 내재 돼 있는 것이 그 작품의 특색이다.

그의 그림의 소재는 늘 우리 곁에 널려있는 소재들을 택한다. 첫눈이 내리면 첫눈을 그렸고, 복숭아꽃이나 살구꽃 흐드러진 모습을 보면 붓끝으로 생명을 집어넣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마다에는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5, 김배희 화백의 '소고춤'

김배히 화백도 과거에 여고에서 함께 근무 했던 분이다.

그의 작품은 그를 닮아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그 작품의 특색이다. 그가 사람을 그리면 그 그림속의 사람에서 따스한 사람체온이 느껴지고, 바늘로 콕 지르기라도 할양이면 정에 넘치는 빨간 피가 그림에서 쏟아지는 것이다.

그가 자연에서 소재를 포착해 화폭으로 옮기면 지저귀던 새들도 입을 닫는다. 그리고 메시지를 전한다. 새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가 김 화백의 철학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뛰어 노는 인물들을 그려 넣었다. 뛰어 놀되 신명나게 뛰어 노는 소고춤을 추는 풍각쟁이들로 소재를 삼았던 것이다.

소고춤에는 소고놀이를 중심으로 하는 춤과 채상모놀이를 하는 춤이 있는데  전립을 쓰고 뛰노는 것으로 보아 채상모놀이 중심으로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 같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이것도 알아두자. 호남 우도(右道)지방에서는 주로 고깔을 쓰고 추는 소고놀이 춤을 추고, 호남 좌도(左道)지방과 영남·경기 지방에서는 전립에 달린 채상모를 이리저리 돌리며 추는 채상모놀이 춤을 춘다.

김배히 화백의 얘기는 여기서 끝내자. 수십년 사귀어 온 그 이지만 김화백의 그림의 세계를 좁은 식견으로 이리저리 아는체 한다는 것은 그 명성에 먹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 노금선 화백의 '침묵'

그리고 평생 멋을 누리고 사는 이 분, 노금선 화백. 그는 화가이기 전에 시인이요, 시 낭송가이며 세월을 비껴가는 아나운서이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풍미하며 살고 있다. 환언하면, 인생을 멋지게 휩쓸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춘기 소녀의 앳된 목소리였다.

그런 그가 그림을 그린 것이다. ‘침묵’이라는 제하의 겨울철 눈 덮인 산을 그린 것이다. 나무를 그리되 고목이 아닌 나목(裸木)을 그렸다.

무슨 말인가? 잎이 모두 떨어지고 눈까지 내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살아나는 나목.

그는 지금 네 편에게만 행해지는 적폐청산의 세상을 죽음의 세상으로 보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아마츄어 환쟁이가 대 원로들 사이에 끼어 전시회를 한다는 것이 남새스러워서 그랬을까? 주제가 '침묵'으로 정한 것을.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숲을 그리되 보이지 않는 숲을 그렸고, 잡초도 없는 숲을 그렸던 것이다.

그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 온통 나목이었던 것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꿈틀거리고 살아나는 나목. 그때가 오면 남새스러운 환쟁이가 아니라 떳떳하게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화백으로 거듭날 때가 분명히 오리라고 확신하며, 그때까지는 침묵으로 지내자고 스스로 자신에게 다짐하며 붓을 잡았을 것이다.

 

7, 유혜원 화가의 '숨고르기'

다음으로 발을 멈춘 곳이 유혜원화가의 ‘숨고르기’ 앞에서다.

달밤을 그리되 구름 한 점 없는 별이 총총한 밝은 밤을 그렸다. 오히려 별빛에 가려 달빛이 숨고르기를 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노금선 화백처럼 원로 화백들 사이에 끼인 신출내기 화가가 향방을 잡지 못해 숨고르기를 하는 심정을 표현 한 것일까?

아무래도 좋다. 생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때론 서글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그 뭇 사람들의 서글픔과 외로움, 그것을 유혜원 화가는 고독함으로 바라보는 겨울로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달 밝은 겨울밤은 너나없이 고독하다. 보라 왜적과 맞서 싸워 승리로 이끌었던 이순신 장군의 외로움에 대한 고뇌의 순간을.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순신 장군은 적을 맞댄 상황에서 외로워서 고뇌하고, 화가 유혜원은 젊은 화가로 원로들과 마주대하는 상황에서 고뇌하고.

작업을 하는 동안 수없이 엇갈렸던 갈등의 시간, 그리고 힘들었던 순간들과 아팠던 기억 모두를 이 겨울에 덮어 두고 잠시 멈춰 서서 향방을 찾기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은 아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8, 한인수 화백의 '나비' 

한인수 화백은 나비를 그리되 붉은색 나비를 그렸다. 그의 붉은 나비를 보는 순간 20여 년간 나비 그림만 그려오는 대구의 유명화가 최서아가 생각났다.

일찍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여 양 날개를 다른 색으로 칠하여 반쪽인 것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얼마나 남편이 그리웠으면 나비의 양 날개를 그리되 색이 다른 그림을 그렸을까?

그런데 한인수 화백의 붉은나비.

나비는 예로부터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영혼을 상징하는 매개물로써(푸시케)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영매의 역할을 독특히 해온 것이 나비인 것이다.

또한 나비는 이차원의 평면성과 삼차원을 동시에 아우르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거기에 무중력의 운동감이  느껴지는 탈방향의 자유분망함이 느껴지는게 나비인 것이다.

한인수 화백의 작품설명에 의하면 "제그림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미시세계와 같은 작은 안료의  입자들이 추상적으로 집약되어 있습니다.  가히 질료와 형상의 추상적 명제가 입증 될  것만 같지요. 보라색과 주황색 계열의 보색관계를 세필로 병치시켰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병치관계의 착시효과와 깊은 에스프리를 느껴보도록 작업하였습니다."고 하였다.

 

이분들 외에도 김혜선, 민동기, 이재호, 강나루, 송근호, 서재홍, 김옥임,  윤여환 이계길, 백상열 등 인상 깊었던 작품들이 많고, 특히 손경숙 화백의 '나의 마음속 풍경'을 붉은색 바탕으로 하여 이해하기 어렵게 붓을 돌려 그린 그림이나, 송은진 화백 역시 붉은 바탕에 'Blossom'이라 쓴  심사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말인가? 그가 바탕화면에 그려넣은 꽃도 필자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꽃이었다.

내포하는 바가 많은듯하여 발걸음을 여러 차례 되돌렸으나 설명을 듣지 못해 아쉬움만 남겼다. 언젠가는 이들 화백들을 만나 반드시 궁금증을 해결하리라.

 

고맙고 감사하다. 젊은 화가들을 대거 참여시킨 이영우 교수의 대담함도 고맙고, 이 젊은 분들이 있기에 대전문화예술의 발전에 기대되는 것이고, 그 뒤를 잇는 후진들에게 기대하는 바도 큰 것이다.

이해를 구하는 바는 이번에 전시된 서양화, 한국화, 서예, 조각, 그리고 젊은 화가 강근수 강로사를 비롯한 모두의 작품을 게재하지 못하여 아쉬움만 남는다.

그러나 젊은 화가들이여, 서운해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대들의 작품 전시회는 자주 열리게 될 것이고 필자도 10여 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전화 한 통이면 달려갈 것이다. 차 한 잔 나누며 그대들의 작품속으로 유영(遊泳)해 들어가 보자.

 

그리고 입맛에 맞게 대화나누어 보자.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bsjilbo@hanmail.net

<저작권자 © 미래세종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