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문 / 조각가, 수필가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의 해로 갖가지 기념행사가 그날처럼 온 나라에서 열리는 가운데 2월 28일에는 전야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KBS가 주관하는 3.1운동 100주년특집 음악회 ‘100년의 봄’이 독립기념관 겨레의집 광장에서 개최됐다. 

행사는 1, 2부로 나뉘어 약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됐는데 대체로 1부에서는 일반국민대상 음악들로, 2부는 젊은 세대를 위한 음악으로 구성되었고 세계 117개국으로 실시간 중계도 됐다고 한다.

1부는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의 활약상을 담은 감동적인 뮤지컬로 막을 열었다. 이어서 양희은, 알리, 뮤지컬 배우 김소현, 사중창 그룹 포레스텔라 등의 가수들이 ‘사의 찬미’, ‘상록수’, ‘아침이슬’, ‘아름다운 강산’, ‘홀로아리랑’, ‘내나라 내 겨레’ 등을 열창했다. 

2부에서는 국악소녀 송소희 등이 민족의 얼이 깃든 각 지방의 아리랑을 들려줬고, 전 세계인이 부르는 ‘아리랑’ 영상들, 그리고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재현장면 등이 감동을 더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중반부로 가면서 삼천포로 빠졌다. 요란스런 복장에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이상하게 편 손가락을 사타구니로 지르며 뭐라 중얼거리는 힙합이니 랩이니 하는 것들로 무대는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축제라지만 이것이 과연 100년 전 선조들의 독립정신을 되새기는 독립기념음악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지…. 대표적 가족음악프로그램이던 ‘열린음악회’가 최근, 기획 땐 상상도 못하던 음악들의 점령으로 결국 주시청자들이던 기성세대는 철거민들처럼 밀려난 꼴과 다르지 않다. 

K-pop이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건 우리의 위상제고라는 면에서 반길 일이다. 그러나 누울 자리보고 발 뻗으라 했듯 최소한 무대가 어떤 자리인가 쯤은 고려했어야 했다.

기성세대도 축제를 즐길 권리는 있다. 현재 3.1운동을 몸으로 겪은 세대는 전무하지만 다이달로스보다 태양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서 만들어 붙인 날개의 밀납이 녹아 바다로 추락한 이카루스처럼, 지금의 노년세대는 침탈기후반을 겪었거나 그로부터 조금이나마 가까운 시대를 살며 여파라도 경험했기에 젊은 세대에 비해 힘든 시대를 살았다 할 수 있지 않은가? 기념음악회는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어야 했다.

그리고 3.1운동 기념음악회라면 적어도 시대적 배경이 고려됐어야 했다. ‘아침이슬’, ‘내나라 내 겨레’ 등 선곡은 음악 자체로선 나쁘지 않았지만 ‘사의 찬미’를 제외하면 처절하던 그 시절 음악은 전무했다. ‘사의 찬미’마저도 일본유학생 출신 남녀의 사랑타령일 뿐 독립열망이 담긴 음악은 아니다. 

필자라면 적어도 당시의 ‘광복군가’같은 독립투사들이 부르던 음악이거나 민초들의 애환이 담긴 곡목들로 좀 더 본질에 충실했겠다. 이를테면 작사 작곡의 이원수와 홍난파의 친일의혹으로 개운 친 않지만 우리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동요‘고향의 봄’이나 가곡 ‘선구자’ 등을 비롯해 ‘푸른 하늘 은하수~’로 시작되는 ‘반달’, ‘오빠생각’, ‘따오기’, ‘낮에 나온 반달’같은 당시의 동요들,‘눈물 젖은 두만강’, ‘타향살이’, ‘황성옛터’ 같은 나라 잃은 설움을 노래한 대중가요들을 중심에 넣겠다. 독립군들이 그 모습을 나라 잃은 신세에 빗대 눈물로 불렀다는 ‘울밑에선 봉선화’정도는 빠질 수 없지 않는가?

출연가수들도 그렇다. 노장층으로는 대중가수 양희은과 소프라노 조수미가 전부였다. ‘열린 음악회’도 이 정도는 아니다. 이점만으로도 품격 있어야 할 행사를 단순히 젊은 세대를 위한 오락프로그램 정도로 생각한 제작진의 무신경, 무의식이 엿보인다. 솔직히 말해 우리 방송제작자들 젊은 세대 눈치를 너무 보는 것 같다. 시청률 때문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KBS라면 시청률경쟁 말고 방송의 기본인 정도(正道)를 걷기 바란다.

안창호 선생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인터뷰장면에 이어 세계적 디바 조수미 등이 함께 부른, 당시 애국가로 차용해 쓰던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 울렸다. 애국가마저 마련되지 않아 남의 것 빌려 썼다는 사실에 마음이 짠했다. 끝부분에 출연진 일동이 제창한 애국가 장면에서는 참으로 울화가 치밀었다. 

1절 후 간주 중에 난데없이 요상한 복장의 랩 가수가 또 뭐라고 중얼거렸다. 필자는 과문하지만 힙합음악이라는 건 미국에서도 밑바닥음악으로 알고 있다. 그 전형적인 미국의 천박한 힙합을 가장 숭고해야할 우리 애국가에 끼워 넣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태극기에다 그라피티를 갈겨 넣은 것과 뭐가 다른가? 그런 발상이 가능하다는 것부터가 이해불가다. 

이젠 제발 ‘미국 따라하기’ 좀 그만하자. 우리는 ‘대한미국’이 아니라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다. 일제의 강점에 그토록 격분하면서 지금 우리 스스로 문화적 ‘미국강점’을 자초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 볼 일이다. 

이런생각들은 필자가 특별히 반미적이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언필칭 ‘자유’와 ‘개성’을 부르짖는 힙합가수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들이야말로 지나새나 남 흉내 내는 ‘몰개성’의 극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하얗게 노랗게 봄꽃이 필 때다. 100년 전에도 봄꽃은 피었고 봄날은 아름다웠을 것이다. 따사로운 봄빛이 내린 아름다운 이 산하를 이상화 시인이 탄(歎)했듯 우리는 빼앗겼었다. 

그 아름다운 봄빛을 느낄 겨를조차 없이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 바쳐 싸우신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선열들이 계셨기에 우린 오늘 이처럼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인 청년세대는 물론 국민 모두가 아픈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고 나라사랑의 정신을 가슴에 새겨야 겠다. 

잠시나마 불편했다면 변해가는 시대에 적응 못하는 꼰대의 부질없는 넋두리라 여기고 양지 바란다.

저작권자 © 미래세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