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

시인/평론가

어른은 어린이의 도덕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곧잘 하는 나다. 어른이 어른다운 행동을 해야 어린이들이 존경한다. 오늘 아침에도 빨간색 신호에 길을 건너는 어른을 빤히 쳐다보는 초등학교 1~2학년쯤으로 보이는 어린이를 만났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출직 공무원들의 행태는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뻔뻔하다. 삼척동자도 이해할 일을 두고 재판관의 판결이 잘못됐다고 우기는 사람의 행동을 보면 안타깝다. 그래서 항소를 한단다. 슬그머니 화가 난다. 여러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이실직고하지 않는다. 고개도 뻣뻣하다.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런 거짓 보도(?)를 한 신문사나 방송사를 고발한다고도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나 될 수는 없다. 또 아무나 돼서도 안 된다. 특히 정치지도자는 ‘고비용의 지도자’이기에 그렇다. 정치지도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요건은 형안(炯眼)과 총이(聰耳)다. 형안은 글자 그대로 눈 밝음, 밝은 눈이다. 밝은 눈은 사상을 투시하는 눈이지만 정치지도자에겐 무엇보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다.

총이는 귀밝음, 곧 밝은 귀다. 밝은 귀는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귀다. 누구나 귀가 있어 말을 듣는다. 특히 정치지도자는 자기와 다른 비전, 자기와 다른 정책, 심지어 자기를 반대해 맹렬히 비난하고 공격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훈련되지 않은 정치지도자, 오랫동안 준비과정을 거치지 않은 정치지도자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그래서 정상에 오른 지 1년도 못 돼 눈 멀고, 2년도 채 가지 않아서 귀먹어 버린다. 불쌍한 사람이 된다.

나이는 칠을 더할 때마다 빛을 더해가는 옻과 같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하면 나이를 멋있게 먹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성인(聖人)들은 과욕을 부리지 말라고 했다. 모든 것은 과욕에서부터 비롯된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내가 승리해야 하고. 그러나 보니 불법, 편법을 동원한다.

법과 질서를 자기 위주로 해석한다. 남보다 더 가지려 하다 보니 뺏고 싶고, 어깨를 짓밟고 올라가고 싶다. 같이 동반 승진해야 하는데 상대를 눌러놓고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지금까지 쌓아 올린 우정의 탑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세상에는 한 해 두 해 세월이 거듭할수록 매력이 더해지는 사람과 세상이 거듭될수록 매력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매력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오는 게 아닌가? 절차탁마하는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온다.

자신의 내면을 가꾸지 못하는 사람한테서 무슨 매력이라는 선물을 조물주께서 내려주시겠는가? 막 뜯어낸 거즈에 아세톤을 묻히고 세월을 닦아낼 줄 알아야 한다. 가슴이 울렁거려야 한다. 염원과 목표가 명시되어 있어야 하며, 집념과 각오가 서려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야 매력다운 매력을 발산한다.

나이를 먹고 싶지 않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일수록, 세월이 지나갈 때마다 매력의 빛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나이는 해마다 떡국을 먹음으로써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활기차게 사는 사람들한테서는 나이라는 숫자가 가까이 하지 않는다. 얼씬하지 못한다. 시간을 금같이 아껴 사용하는 사람한테서 나이라는 건 하나의 사치에 불과할 뿐이다.

나이를 먹는 것은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다. 한 번 두 번 칠을 거듭할 때마다 빛과 윤기를 더해가는 옻을 보아왔지 않는가? 내 집 안방의 호마이카 칠을 한 장롱은 매일 먼지를 털고 닦아주니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난다.

나이를 곱게 먹은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밝다.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흠잡을 데가 없다. 온몸에서 광채가 난다. 독특한 향을 발산한다. 얼굴에서는 고요하고 편안한 정서가 흐르고, 걸음걸이에서도 위엄을 찾아볼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기회가 적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나이를 거듭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기쁨이 얼마든지 있지 않는가? 나이는 단지 세월이 만들어 쌓아주는 것이 아니다. 경륜과 경험과 내공과 연마로 해서 육신과 정신은 후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어떤 사람의 몸 여기저기엔 빙하가 녹아내린 흔적이 있다. 그러하기에 노인 한 사람이 이 세상 소풍 끝내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 하지 않는가? 늙은 말이 여물만 축내는 게 아니다. 세상 이치를 알고 있기에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위기에 대처하는 번쩍이는 혜안을 갖고 있어 젊은 말들의 본보기가 된다.

평생 이름값 제대로 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이름에는 가치가 부여되고, 가치에는 그것에 걸맞는 가격이 매겨진다. 나이를 거듭하는 기쁨! 그 기쁨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멋진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희열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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