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한호

(전)침례신학대학교 총장

(현)국제펜한국본부이사

1945년 8월 6일, 세계 2차 대전의 막바지에 미 공군 B-29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탄을 투하했다. 이 핵 폭탄으로 히로시마 시민 8만 명이 즉사했고 최종적으로는 20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사망했으며 반경 2키로 내의 모든 생명체가 몰사했다. 히로시마의 비극 3일 후에 나가사키에 또 하나의 핵폭탄이 투하 되었다.

핵무기의 위력을 목격한 세계열강은 잰걸음으로 핵 개발에 나서서, 1949년부터 1962년 사이에 구소련과 프랑스와 영국이 핵실험에 성공했고, 이들 국가에 이어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이 핵보유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제 UN은 무부별한 핵 개발을 방지해야 할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UN안전보장이사회는 1968년 7월에 NPT 즉, <핵확산금지조약>을 안을 통과시켜 많은 잠재적 핵보유국들을 가입시켜따.

그런데, 알다시피 북한은 1985년에 이 조약에 가입했다가 1993년에 김일성[주석]이 돌연 탈퇴를 선언했다. 북한은 그때부터 핵무기 개발에 전력을 다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몇 해 동안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실험하면서 미국 본토를 초토화 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북한이 민생을 외면하고 국가 재정을 쏟아 부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해서 얻은 것이라고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라는 부끄러운 호칭과 ‘예측 불가능한 위험 국가’라는 이름표 밖에 없는 것 같다.

미국과 우방은 우여곡절 끝에 김정은[위원장]을 핵 폐기 협상 테이블에 불러냈으나 여론은 이 회담이 시작할 때 가졌던 큰 기대에 비해 피차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소문난 잔치’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으랴. 이 회담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와 관련해서 2001년 부시행정부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라는 용어를 채택했고, 지난 해(2018) 5월 폼페이오 국무장과은 “영구적이며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PVID)”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최근에는 “최종적이고 충분하며 불가역적 비핵화(FFID)”라는 용어로 표현을 바꾸었다.

‘영구적(permanent)’이 ‘최종적(finally)’으로 바뀌었고, ‘검증 가능한(verifiable)’이 ‘충분한(fully)’으로 바뀌었다. 일견, 같은 표현 같지만 ‘검중 가능한’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조금씩 물러서는 태도가 엿보인다.

이러다가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얻으려는 트럼프 행정부가 성과도 없이 제재만 완화하는 것이 아닌지 염려된다. 또한, 온 세계가 자국의 이익을 제쳐놓고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이 시점에 문제 당사국인 한국은 철도 연결 사업과 남북 교류를 서두르고 있다. 철도가 연결되고 개성공단이 재개되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의 염원이지만 지금 우리가 그것을 서두를 때는 아닐 것이다.

비핵화협상 2년째, 그 동안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면서 우방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북한(김정은 위원장)이 약속한 핵무기 완전 폐기는 모든 핵보유국들의 공통적 이상일 뿐이다. 미국도 소련도 세계 어떤 핵 보유국가도, “우리의 목표는 해무기의 완전 폐기”라고 외칠 수 있고 조약을 채결할 수도 있다.

풍계리 핵 실험장 폭파는 북한이 용도가 끝난 시설을 이용해서 핵 문제 협상의 의지를 표현한 것뿐이다. 북한이 핵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은 경제 봉쇄의 효과인데, 그것이 완화되면 북한은 핵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일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PVID, CVID, 또는 FFID니 하는 것은 핵 문제에 대한 ‘말모이’에 불과하다. 미국이든 UN이든, 핵협상 테이블에 앉는 이는 누구나 북한에 대해 체제 보장이나 외교와 경제 교류 등 타당한 양보를 하되,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는 목표는 반드시 성취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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