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봉 시인/평론가

‘여름의 꽃과 나무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모두 아름답고 건강하다. 그러나 진정한 꽃과 나무는 서서히 시들어가는 가을철에 진가가 드러난다. 얼마나 아름답게 시드는지에 따라 진가가 드러난다.인간도 마찬가지다.’

SK그룹 최종현 회장이 유언으로 남긴 말이다. 읽어볼수록 음미할 가치가 충분하다 생각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체 있는 것들은 여백이 있음으로써 그 울림이 크다. 기타도 그렇고, 북도 그렇다. 악기라는 것들의 대부분이 그렇다. 악기뿐이랴.

파도 일렁이는 넓은 공간을 가로지르며 서서히 움직이는 배 한 척이 있는 바다가 있다. 수평선 너머에서 불현듯 몸체를 드러낸 태양이 바다 위에 한 줄기 긴 빛을 뿜어내며 이글거리는 광채로 천지를 밝히고 있다. 여백 속에 나타나는 장엄한 모습이다.

사랑의 체험은 남의 말을 듣기 위해 필요하고, 고통의 체험은 그 말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한 곡의 노래가 울리기 위해서도 우리 마음속엔 그 노래가 울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질투, 이기심, 같은 것으로 꽉 채워져 있는 마음속엔 아름다운 음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자.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치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소음으로만 들릴 뿐이다. 마찬가지로 고통을 담고자 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은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채울 수 있는 아량과 깊이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고통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겸허하게 하여 자신을 비우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마음속에 빈 공간이 없는 사람에겐 어떤 감동적인 시나 어떤 아름다운 음악도 울림을 줄 수 없다. 마음의 여백이 없는 삭막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잘난 줄 착각하고 용서와 화해에 인색하다.

행복이란 결국 내 마음이 파란색이면 모든 사물이 파란색으로 보이듯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다. 누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끊임없이 깨우쳐야만 하는 과제이다. 마음에 여백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방법을 바꾸어가고, 긍정적으로 살며, 자신에게 활짝 웃음을 보이는 여유를 갖고 있다. 그런 사람의 생활 절반은 맑은 웃음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중국인은 홍콩인을 가장 싫어한다. 그 다음이 한국인이다. 베트남인도 마찬가지다. 돈 조금 있다고 잘난 체하고, 자기네를 업신여기는 한국인을 싫어한다. 왜 한국인이 그런 대접을 받을까? 마음의 여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베트남인들이 조금 바뀌었는데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축구의 박항서 감독 때문이다. 컵이 하나 있으면 거기에 담을 물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많은 물을 쏟아부어 봤자 일정량 이상은 넘쳐 흘러서 버리게 된다. 연잎도 그렇다. 자신이 감당할 만한 빗방울만 받을 뿐이다. 그것들을 받아들일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시늉뿐인 울타리 너머로 건너오던 호박죽 한 그릇이 그립다. 그 호박죽 넘겨주면서 보인 웃음은 눈부신 보석이었다. 그 웃음에서는 아슴한 칸나꽃 향기가 났다.

마음의 여백이 있는 사람에게는 세상을 덮고, 어둠을 덮고, 절망을 덮는 맑은 바람이 생긴다. 산에 오르다 보면 숨이 찬다. 그러나 그 여백이 있는 공간을 품에 안고 있는 산에 오르면 마음은 늘 넉넉해진다. 지금도 모교 박물관에 가면 녹슨 종이 하나 있다. 수업시작과 끝을 알려주던 종이다. 그 넉넉한 여백으로 하여 맑고 청아한 소리를 들려주던 종이다. 지금은 하루종일 할 일이 없어 낮잠만 자고 있다.

마음의 여백이 있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걱정이, 가난이 기생할 공간이 없다. 여백이 없는 사람에게는 별도, 태양도, 달도, 등불도, 등대도, 진달래와 동백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함께 보는 사람이 있어야 더욱 빛난다.

달팽이의 삶에는 여백이 있다. 달팽이의 느린 행진을 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그 느린 행진을 꾸준함으로 보아주고 싶다. 꾸준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고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 우리가 빠르게 빠르게 날아간다고 속도를 자랑하지만 올라야 할 고지를 놓치고 헤매는 때가 많다. 달팽이의 등속에는 여유란 여백의 공간이 있다.

유등천 물 메아리 곁을 따라 ’과앙 광‘ 징소리가 울린다. 버들개지 가지가 노래한다. 유등천에 잠긴 그림자들이 공간을 따라 따라오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들려주는 소리와 모습들로 하여 나의 삶은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온밤을 지새운 그리움, 달빛이 내린 공간이 흔들린다. 유등천은 너그러운 가슴을 가진 어머니 같다.

영혼에 공간이 있으면 가난하거나 초라한 것은 아니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마음은 늘 봄처럼 따뜻하다. 노을이 보여주는 무한한 신비의 극치를 보았는가? 마음의 여백, 공간이 있었기에 그런 환희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이 맑아야 내 몸에 맑은 기운이 찾아든다. 영혼이 자유로워야 삶이 자유롭다. 영혼을 텅 비워야 하늘의 은총이 내 안에 가득 채워진다. 오늘 밤 정갈한 마음으로 전등을 끄고 촛불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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