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수 시인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여성을 사랑해도 당신만 행복하다면 나는 기쁩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을 지낸 샌드라 데이 오코너의 말입니다.

그는 유방암을 앓고 있는 가운데도 법관자리를 지켰는데 남편이 치매를 앓게 되자 대 법관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기억력을 잃고 부인마저 몰라보는 중증에 빠지자 곁에서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은퇴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요양원에서 다른 환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키스를 하며 즐거워하는 장면을 자주 바라보는데도 남편을 미워하거나 그 여인을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여성을 사랑해도 당신만 행복하다면 나는 기쁩니다.” 고 했다합니다.

오늘 유성 모 식당에서 칼럼을 쓰시는 시인이며 희곡작가이신 김용복 님과 시인 월정 이선희 님을 만났습니다. 늘 따뜻한 마음으로 후배들을 다독여 주시는 김용복 님이 먼저 만나자는 요청을 하셨습니다. 사랑 없이는 어려운 일이지요.

두 분을 뵈면서 가정이 무엇이고, 사랑이 무엇이며, 부부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부인을 끔찍이 사랑했던 월정 시인님은 부인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부인을 그리워하며 몹시 괴로워하셨습니다. 그 아픔을 시로 승화시키는 디딤돌을 놓아주신 분이 김용복 작가십니다. 월정 시인님은 아픔을 ‘여보, 어디 있어요?’ 하며 절규하는 시로 표현하셨고, 일 년이 안 되어 시집 ‘여보, 어디 있어요?’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하셨습니다. 가슴 속에 겹겹이 쌓아 두었던 사랑의 그리움을 시로 읊으며 마음을 비우셨던 것입니다. 그 인연으로 두 분께서는 친형제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셨습니다.

오늘 김용복 작가님을 뵈면서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부부관이 조금은 바뀌고 있습니다. ‘부부는 아름다운 인연으로 맺어진 사랑이다.' 그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대성이 아니라 일방적인 베풂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식사가 나오자 부인의 외투를 벗겨 걸어 주시고 의자에 편히 앉아 식사할 수 있도록 챙겨주는 모습에서 '아, 사랑이어라. 행복이어라'를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혹자들은 부인이 치매를 앓고 있기에 그렇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러기에 더 자기희생이 필요하고, 따뜻한 마음속에 사랑의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열정이 있기에 여러 언론사에 칼럼을 쓰고 이웃 모두를 아우르는 사랑을 베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위에는 잉꼬처럼 살갑게 사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왜 살까?' 하는 앙숙인 부부도 가끔 볼 수가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목하게 사는 부부는 모난 곳이 없는 올바른 사람끼리 잘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은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이기려고 하는 이해심 부족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인간이지만 짐승처럼 영역싸움을 부부끼리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부는 싸움은 하더라도 이혼까지는 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 간에 신뢰만 있으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서로 간에 불신에서 오는 갈등이 증폭되어 가정이 파탄 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부부가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입니다. 서로에게 신뢰를 주고 그 바탕에서 서로 배려를 해준다면 가정은, 사회는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수로 접어드신 두 분의 아내 사랑. 젊은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점심에 따뜻한 사랑의 여운이 지금까지 내 가슴 속에서 향기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사랑은 어떤 조건을 내세우면 안 되고, 자신이 베풂의 기쁨을 가질 때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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