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봉 시인/평론가

넉넉한 가방을 가진 사람은 세상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걸 모른다. 난방도 되지 않는 쪽방에서 모진 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노파는 세상 살맛이 안 난다. 골프채만 싣고 가면 알아서 다해주는 큰 가방을 가진 사람은 어지간한 교통사고에는 끄떡도 안 한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돈으로 고치면 되고, 상대방 몇 주 진단 정도야 보험이 알아서 해주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아주 극소수다. 서민들이야 다운계약서가 뭔지? 위장전입이 뭔지도 모르고 산다. 가진 사람 재산은 일 년에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늘어나는데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도 늘 배가 시리다. 이런 땐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조상 원망해봤자 머리만 아플 뿐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자전거 뒤꽁무니에 빈 상자 몇 개 싣고 힘겨운 곡예를 하는 사람이 있다. 언덕길을 손수레에 폐휴지 가득 싣고 오르며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데 고물상에 가면 배춧잎 한 장이나 받을까나.

시간제로 일하는 사람들은 인격적 대우는 고사하고 월 백만 원 수입도 안 된다는 보도도 있다. 한 장의 구겨진 지폐를 벌기 위해 내미는 꼬질꼬질 때묻은 손, 마디마다 기름때가 낀 못박힌 손을 생각하면 심장에 균열이 가는 것처럼 가슴에 진한 아픔이 찾아온다. 피 멍 들던 보릿고개 이야기가 바람 따라 들려온다.

휘발유 값 오르게 되면 없는 사람은 운행횟수를 줄이는 데, 있는 사람은 도로가 확 트였다고 노래하며 운전대를 잡는다. 참 요지경 세상이다.

노력보다 더 나은 자산은 없다. 연습보다 더 나은 실전도 없다. 어디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따로 있다더냐? 모든 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 독한 마음 품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모자람도 미덕일 때가 있다 하지 않는가?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한 유태인이 고명한 랍비를 찾아갔다.

“매사 계획한 것의 절반도 되는 일이 없으니 어떡해야 좋을지 지혜 좀 내려 주십시오.”

라고 했다.

한참 생각한 끝에 랍비는

“뉴욕타임스 연감 1970년 판 930페이지를 찾아 보라. 그곳에 그 지혜가 적혀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곳에는 야구 선수들의 타율이 기록돼 있었다. 유명 선수인 타이콥의 타율이 3할 6푼 7리로 나와 있었다.

"바로 그것이다. 세계 최강의 타자도 3타석 1안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마다 계획의 절반 가까이를 달성한다면 자네는 5할대의 타자가 아닌가."

"만약 모든 야구 선수들의 타율이 10할대라면 무슨 재미로 야구를 하고 또 관중들은 야구 구경을 하겠는가?"

인생도 야구와 같은 것이다. 모자람이 있어야 세상 사는 의욕과 재미를 갖게 되는 법이다. 정말 그렇다. 모자람이 있어야 세상 사는 의욕이 생기고 재미도 생긴다. 하는 족족 안타라면 세상 사는 재미가 있을까? 잘 입고 잘 먹고 잘 자는 사람들은 조상을 잘 둔 덕이라 생각해 두자. 그들이 무슨 편법을 동원해 벼락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두자. 탐욕이란 과연 어디까지가 한계일는지 아둔한 나로서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고졸 신화를 만들어 낸 야구선수들이 좀 많은가? 남들 대학 가서 4년간 훈련할 때 개인 연습으로 신화를 만들어 야구 천재, 홈런왕이 된 선수들이 어디 한둘인가 말이다. 준비가 사람을 완전한 인격체로 만들어준다.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고, 부엉이는 산에서 울어야 한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지나침은 미치지 아니함만 못하다는 뜻이다. 먹는 욕심을 부려 위장에 탈 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과욕은 신물을 거두는 법이다. 자연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지혜를 발휘할 일이다.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은 화타나 편작도 고치지 못한다.

중국 고사에 봉황은 한 번 날아 천 리를 가되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아니하고, 배가 고파 단장(斷腸)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소홀히 생각하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탐낸다. 작은 불도 큰 것을 태울 수 있다. 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이란 것만 잊지 않으련다. 욕심 없는 마음으로 맑은 웃음 머금고 진실한 기쁨 속에서 숨쉬고 싶다.

목련 잎이 벙글고 있다. 연초록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리움이 푸르게 도열해 있다. 꾸부정하게 서 있는 그림자를 핥으며 바람이 휘파람 불며 지나간다.

저작권자 © 미래세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