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그렇지만 음식은 더 그러한 것이 있어 착한 사람이 만들어야 안심하고 먹게 마련이다. 식품업자가 양심불량이라 자기가 만든 걸 자기 자식에게는 먹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과대한 색소와 방부제를 넣어 보기에만 좋게 만들었지 독성이 있는 음식이라면 자식에게는 먹지 말라하고 남에게만 판다는 얘기다.

이런 경우의 대표적인 것이 신문이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의 가슴에 독성이 있고 미움이 있고 스스로 불만이 가득한 사람의 글은 그것이 기사가 됐던 논설 칼럼 사설이든 간에 그 글에는 독성이 있어 사람들의 심정을 상하게 한다.

비사이로세종일보는 이런 점에서 곧고 착한 사람들이 작지만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만들어내는 신문이 되어야 한다는 게 본사의 지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문은 칼칼해야 한다며 누군가를 찌르고 치고 부수고 잘라내는 기사나 논설이 세상을 맑히고 밝힐 신문의 본분이라고들 알던데 실은 아니다.

분명 신문이란 세상의 빛이다. 어두운 구석을 빛처럼 밝히는데 있어서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청소차처럼 쓸어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사명이 신문의 본성이라는 주장 말이다. 그러기 위해 신문들이 앞 다투어 온갖 세상의 더러운 구석을 후비고 쑤셔대 일명 “까대기기사”에 올인하고 또 칼럼의 다른 말이 “칼든 놈”의 약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정직과 착할 것이며 그 대상은 독자 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은 법대로 돌아가 마땅하다는 데 누구도 이의가 없다. 그러나 법은 주먹질 칼질의 또 다른 싸움질이 되기 일쑤다. 또 정의가 강같이 흘러 불의를 제거함에 있어서도 신문이 앞장서야 한다고도 하는데 아니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상은 늘 정의와 불의가 혼재되어 돌아가게 마련이다. 이를 흰 눈처럼 깨끗하게 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답은 없다다. 그러면 그곳은 천국이지 세상이 아니라는 것은 죄악세상이어서 아니라 사람들은 각각 정의의 판단 기준이 다르므로 불의를 정의라고 우겨 결국 법정으로 가게 되어 변호사들만 바빠지게 한다.

근간 촛불집회와 맞불집회로 인하여 만나는 사람들마다 직간접적으로 묻는 말이 어느 쪽이냐는 질문이다. 독자는 촛불인가 맞불 쪽인가? 이때 촛불은 악이고 맞불은 선이며 거꾸로 촛불이 선이고 민심의 정의이며, 맞불은 독이고 불의라고 단정한다면 둘다 틀렸다. 어느 한 쪽에 서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환경과 성장환경은 물로 현실환경 등이 혼재되어 누가 자로 재고 금을 긋기 만만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요는 착한사람이냐 독한 사람이냐는 별개다. 단 착한 사람도 어리석은 경우는 있으나 일단 착한 마음으로 식품을 만들면 독소는 제거되어 건강한 음식이 된다. 신문은 어려운 업종이다. 비사이로세종일보는 착한 신문을 지향하되 대쪽처럼 곧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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